brunch

우이령에서 오봉을 보다

by 남궁인숙

우이령 초입의 공기는 묘하게

가을과 겨울 사이에 걸쳐 있었다.

나뭇가지는 마른 잎이 하나 들 달려

앙상했다.

땅에서는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기 위한

고목이 몸을 가볍게 만들면서 숨을 고른다.

바닥의 낙엽은 마르고, 부서져 발밑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조차 산에서는 자연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에 들어온 것은

안내판이다.

‘우이령에서 보이는 오봉의 유래.’였다.

한 마을 사람들이 원님 딸에게 장가를

가기 위해서 산 능선의 바위를 오봉에 던져

올렸다는 전설이다.

그리고 화강암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만들어낸 ‘토르(tor)’라는 지형이 생겨났다.

문장을 읽고 나서 주변의 거대한 바위를

다시 보니, 시간이라는 조각가가 얼마나

성실한지 새삼 느껴졌다.



조금 더 올라서자 반바지 차림의 러너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뛰는 사람들의 등은 모두 다른 삶의

속도를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목표를 향해,

누군가는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단지 뛰는 행위 자체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산에서는 빠르기와 느리기가 의미를 잃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남궁인숙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아이들의 눈빛에서 질문을 읽고, 그들의 침묵에서 마음의 언어를 듣고, 어린이집 현장에서의 시간과 심리학의 통찰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여행을 통해 예술을 해석합니다.

32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0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