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를 한 채, 순례길에 서다

by 남궁인숙

친구 혜영이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호스트패밀리에게 많은 것을 신세를 졌다.

펜실베이니아의 어느 집,

낯선 땅에서 그녀를 가족처럼 받아주던

언니가 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언니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고 했다.

혜영이는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고 했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며칠 전에 순례길을

향해 떠났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궁금함에 마음이 쓰이던 참이었다.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


순례 첫날.

'7kg 배낭에 물 1리터, 과일 가방까지 들고

길을 나선 지 두 시간 만에 사고가 다.

인류애가 충만한 언니는 길에 떨어진

비닐을 보며, 다른 사람이 밟다가

넘어진다고 그 비닐을 치우다가 넘어졌어.

다른 사람이 넘어질까 봐,

그 작은 선의를 행동으로 옮기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어.

안경은 깨지고,

손목과 손가락이 부러졌단다.'


이틀째.

'병원에서 양팔 전체에 깁스를 했고,

손가락까지 단단히 고정된 상태야.

순간 내 입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저절로 흘러나왔어.'



'공항에서 난 알아봤어야 해.

언니는 무겁고 긴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남편이 직접 만들어 줬대.

1미터 50센티나 되는 꽤나 투박한 지팡이.

그때는 그저

“순례길이라 준비를 단단히 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지팡이는 어쩌면 지금의 고난을 상징하는

물건 같아.

무겁고, 단단하고,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요즘 스마트한 등산지팡이가 얼마나

많은데 나무를 깎아서 가지고 오니."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예견된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을까.

그런데도 그 언니는 지금 양쪽 팔과

손가락까지 깁스를 했는데 “계속 갈 거야.”

라고 했다고 한다.

짐은 부치고, 다시 순례길을 걷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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