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르티
그날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마치 베토벤이 안경을 낀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교실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탁 옆에 서서 음악 선생님이 인사말을 하는 순간 목소리에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분명 남자 선생님인데 여자가 말하는 것 같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청아 예술고등학교 ‘마두기 음악 선생님’과 비슷한 목소리를 지녔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면 이런 음악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해요.”라고 하면서 아주 능숙한 피아노 솜씨로 ‘관타나메라’라는 곡을 가르쳐 주었다.
이태리 말인지 프랑스 말인지 알 수 없는 단어에 우리는 한국말로 펜을 꾹꾹 눌러가며 받아 적으면서 목청을 높여 배웠었다. 얼마나 열심히 따라 불렀는지 지금도 가끔 라디오나 카페 등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악을 알려주셨던 베토벤 음악 선생님은 아직도 나에게 ‘관타나메라’로 기억되고 있는 참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라디오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퀄리티가 있는 목소리로 부르는 ‘관타나메라’가 흘러나오니 음악적 앎의 지적 향유를 누리게 해주었던 여고 시절 베토벤 음악 선생님을 기억하게 된다.
나중에 쿠바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관타나메라’라는 곡은 쿠바의 민속음악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 ‘아리랑’처럼 쿠바 사람들이 애국가 다음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는 것을 여행 가이드를 통해 듣게 되었다.
이 음악은 쿠바인들의 영혼과 같으며, 결집을 이루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노래라고 한다. 호세 마르티(Jose Marti)라는 시인의 시(詩)에다 곡을 붙여서 유명해진 노래였다.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가씨(구아 히라 관 타나 메라)’를 뜻한다.
쿠바 동전의 주인공이자 쿠바의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호세 마르티는 쿠바를 침략했던 스페인에 투쟁하며 독립전쟁을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나 스페인 총독에 의해 추방당하고 남미를 돌다가 뉴욕에 정착한 후 혁명군을 모집하여 스페인군에 항쟁하다가 고향 땅인 산티아고의 ‘관타나모’에서 전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로 기억되는 호세 마르티가 세상을 떠난 후 쿠바에서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문학가가 되었으며, 쿠바뿐만이 아니라 남미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민요 ‘관타나메라’를 남겼다고 한다. 일제에 저항한 우리나라 시인 윤동주 시인과 비교하는 게 맞는지 모르지만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4월은 쿠바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이탈리아의 어부 마을 친퀘테레처럼 파스텔톤을 지닌 건물들, 빈티지스러운 골목을 지나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올드카를 타 볼 기회가 있었다. 마치 영화배우처럼 스카프를 두르고 올드카 안에서 마음껏 포즈를 취해 보았다.
거리의 카페마다 들려오는 기타 소리와 흥겨운 노래와 민속춤을 구경하고, 한국에서는 자주 맛볼 수 없었던 쿠바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쿠바가 낳은 유명한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의 음악을 들으면서 전두엽을 통해 아름다운 쿠바를 여행하였다.
여고 시절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관타나메라’를 배우지 않았다면 쿠바 여행이 오래도록 여운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아직은 서양음악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부지불식간에 음악을 들으면서 저절로 음감 발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이집 담 밖에까지 울리도록 큰소리로 ‘관타나메라’를 틀어놓았다.
게으르지도 않고 성질이 고약하지도 않은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 그곳에는 불의가 있다.
- 호세 마르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