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어린 소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이모님 댁에 꼬박 하루 걸려서 놀러 왔다. 아침부터 이종사촌 언니의 손에 이끌려 김제 만경의 조그만 시골 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익산 역까지 가는데 약 1시간 반이 걸린다.
익산 역(그 당시 이리 역이었다. 폭발사고로 없어지고 지금은 익산 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까지 와서 서울 역을 향해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또다시 대 여섯 시간 걸려야 서울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서울에 살았던 이모님 댁은 보광동이라는 동네였다. 서울 역에서 두 번 버스를 갈아타 가야 이모님 댁에 도착하였다.
빈혈이 심했던 일곱 살 소녀는 차의 기름 냄새에 위장이 뒤틀리고, 얼굴은 하얘지고, 땀은 송골송골 맺히고 낯선 거리에 몸속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음식들을 토해가면서, 겨우 겨우 이모님이 사는 동네에 다다른다. 일곱 살 어린 소녀의 고단한 생애 첫 서울 나들이였다.
서울에 올라온 첫날 밤, 이모님 댁에서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방문을 열고 툇마루에 나와 보니 눈앞에 별천지가 펼쳐져있다.
“와! 불 봐! 이 모!!! “
보광동 비탈진 곳 언덕 꼭대기쯤 위치한 이모님 댁(달동네였던 것 같다)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일곱 살 소녀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태어나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살아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낮에는 지평선만 보이는 평야지대, 유난히 밤이 더욱 캄캄했던 시골에서 살다 온 아이에게 보광동 불빛은 일곱 살 어린 소녀의 눈에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늘날 뷰 차지(view charge)를 주고도 없어서 구입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서울의 야경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곱 살 어린 소녀의 서울 야경의 경험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요즘도 그때 서울에 처음 상경한 촌년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50년 전 어린 소녀의 기억을 더듬어서 래퍼를 위한 가사를 써 본다.
시골에서 친척집에 놀러 온 일곱 살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보광동 어느 달동네,
이모네 집 툇마루에 서서 내려다보았던 서울의 그 화려한 불빛~
서울 첫 상경에 일곱 살 어린 소녀가 가슴 두근거리며 보았던
보광동 어느 달동네,
이모네 집 툇마루에 서서 내려다보았던 서울의 그 화려한 불빛~
그 불빛은 어린 소녀의 꿈이 되었지~
도시는 화려하고 멋지고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곳~
이곳에서 내 꿈을 이루고 살리라 다짐했던 순간이었지~
그것은 일곱 살 어린 소녀의 희망이 되었고 꿈이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