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살다 갈 수 있다면

by 남궁인숙

명절을 맞이하여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족 묘지를 방문하였다. 가족묘 앞에 서서 묘비 문에 새겨 놓은 글을 읽자니 아버지께서는 참 깔끔하게 인생을 잘 정리하고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앞으로 몇 년을 살지 모른다면서 인생을 돌아보며

주변정리를 하기로 하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님들의 묘지를 한데 모아 가족묘를 만드시고 후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산소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셨다.



얼마 되지 않지만 자식들에게 남겨줄 재산은 미리 분배하여 아들 둘의 이름으로 나눠놓으시고, 물론 조금은 남겨주셨지만 딸들에게는 인색하셨다.

분배하고 남은 얼마간의 돈은 당신의 병원비와 생활비 등으로 남겨두었다.



가족이 모인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봉투를 내미셨다. 열어보니 A4용지 2매의 묘비에 새길 당신의 일생에 대한 기록과 돈이 들어있었다. 그 돈은 당신이 저 세상으로 가고 나면, 일 년 뒤에 묘지에 비를 세워 새겨 달라는 묘비의 글과 묘비를 세울 때 드는 비용이었다. 돌아가셔도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당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당부하기를 유산으로 물려준 토지는 혹여 라도 팔아야 할 일이 생기거든 지금까지 수년 동안 우리 집 땅을 경작하며, 세경을 주고 있는 토지 관리인에게 팔라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당신을 대신하여 수년간 노고를 아끼지 않았음에 대한 토지 관리인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 당신이 장례를 치를 장례식장에 가서 당신 스스로 장례식장을 예약을 하셨다.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례식장에 가보니 장례식장 사장님은 미리 아버지께서 오셔서 예약을 하셨고, 덧붙이기를 당신 자녀들이 자기를 이곳으로 데려 오거든 많이 부담 주지 말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고 한다.

자식들은 장례를 치르는 비용은 모두 아버지가 남겨놓은 돈으로 치를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만 날을 정해서 가족들이 모여서 가족 묘지에 와서 제사를 지내 달라는 유언과 모일 때마다 드는 비용 또한 남겨주셨다.

그래서일까? 일 년에 한 번은 전국구로 흩어져 있는 우리 가족들은 이 날 만큼은 불평불만 없이 불참자도 없이 여행하듯이 시골에 있는 산소를 다녀온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사주시는 식사까지 제공받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향후 10년간은 가족들이 모이는데 부담이 안 될 만큼의 자금을 비축해 주셨기에 잘 모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현명한 어르신이었는지......

막내딸이 어린이집 원장이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뉴스에서 어린이집 사건이 보도되면 늘 걱정하시던 나의 아버지.

돌아가신 후까지 멋진, 그렇게 멋지게 살다 간 나의 아버지,

나도 아버지처럼 인생을 잘 살다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