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 성당

by 남궁인숙


나의 고향은 ‘만경(萬頃)’, 그곳은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전라북도 김제에 위치한 평야지대로 대한민국의 주요 곡창지대였다. 만경강을 따라 비옥한 평야지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관개농업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관개농업의 발달로 저수지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해 있었다. 여름 방학 때마다 물놀이를 하다가 두세 명의 학생들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저수지에서 물을 대어 농사짓는 데는 유익했지만 학교와 가까워 학생들에게는 물놀이 장소였던 것 같다. 지금은 멋진 호수가 되어 관광지로 탈바꿈되었다고 들었다.


일제 강점기 때 비옥한 평야지대인 만경은 김제, 부안, 고창, 정읍에서 나오는 물자들을 일본인들은 그 당시 나루터였던 만경대교를 지나 군산항으로 곡물을 수탈해 가는 통행로 마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다음은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의 시에 나오는 만경에 대한 표현이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중략)


그곳 만경읍 만경리 334번지에는 작은 성당이 하나 있었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겨울, 언덕바지에 위치해 있는 만경 성당의 성당 유치원에서 수녀님들이 일곱 살 아이가 살고 있는 집들을 방문하면서 유치원에 입학시키라고 홍보를 하고 다녔다.

우리 집에 수녀님들이 찾아왔다. 나는 수녀님들 앞에서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몸을 배배 꼬며 “난 유치원 안 갈 거예요. 난 학교 갈 거예요.”라고 하였다.

육 남매가 있는 집에서 자랐던 나는 언니 오빠들이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학교에 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 당시 종갓집이었던 우리 집은 형편이 좋아졌기에 학문에 목말라하셨던 나의 어머니께서는 막내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일곱 살짜리 막내딸 고집에 그만 포기하셨다.

그리하여 유치원에 입학도 못해보고 나의 고달픈 <학교 인생>은 일곱 살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6년 내내 만경 성당 앞을 지나가야 초등학교를 오고 갈 수 있었다.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성당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마치 난 그 성당 유치원을 졸업한 것처럼 생각하며 학교를 다녔다.

어른이 되어 세계 곳곳을 힘닿을 때까지 누벼보겠다고 다짐하며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나라를 대변하는 유명한 곳은' 성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유럽의 성당들은 그 나라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었고, 위대한 건축가의 건축양식을 알게 해 주고, 종교를 이해하게 하고, 위대한 성인들이 수학하여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장소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웅장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은 성당이었다.

어쩌다가 그 당시에 수녀님들이 지도하였던 성당 유치원에 다녔다면 내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되면서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나의 첫 학교가 될 뻔했던 성당 유치원!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한 남자 동창생은 “만경 성당 근처가 우리 집이었는데 하교 때마다 언덕바지에 있는 성당 앞을 지나가는 얼굴이 하얀 네 뒷모습만 한참씩 바라보았단다.”라고 하면서, 너랑 친구가 하고 싶었는데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잊고 있었던 <만경 성당>을 떠올렸다.


1889년(고종 26), 전라북도에 최초로 전주 성당이 세워졌다. 1894년 동학혁명 이후 가톨릭 선교가 자유로워지면서 지금의 김제시 금산면에 성당을 세운 것이 김제지역 천주교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로 1907년에 김제 수류성당이 설립되었으니 만경 성당은 그 이후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허름한 연초록 양철지붕의 ‘만경 성당’은 어쩌면 대한민국 일제강점기를 대변하는 종교적인 건물이었을 것이다.

천주교인들에게 성지순례 장소로 가끔 찾아지는 만경 성당은 2010년 개보수를 하여 지금은 옛 모습 하나 없는 현대식 건물로 변하였지만 그 당시의 ‘만경 성당’은 나의 유년의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의 장소였다.

아쉽지만 <김제시사편찬위원회>에서 남겨놓은 이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추석이 다가오니 아무도 계시지 않는 나의 고향, 만경, 고향집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