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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Sep 17. 2024

융건릉을 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사적,

수원 화성 '융건릉'에 가족들이 석밑에 모여서 산책을 나섰다.

추석이지만 차례를 지내지 않기에 미리 성묘를 다녀온 오라버니는 그래도 명절인데 한 끼는 가족들이 모여서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점심을 먹자고 소집하였다.

우리들은 약속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모여서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저녁까지 먹고 헤어지는 것으로 하고, 많은 식구들이 같이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수윈 화성에 위치한 '융건릉'을 가보기로 하였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사적이었다.

건릉은 1970년 사도세자와 현경왕후를 모신 곳으로 근처에 있는 건릉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되어 '융건릉'이라고 지정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서러운 삶을 살다 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이곳으로 모셔왔다.

사도세자는 지금의 창경궁에서 태어나 돌이 지나자 세자로 책봉된다.

그리고 28세 때 창경궁에서 뒤주에 갇혀서 죽게 되고, 그의 아버지 영조는 죽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다.

 그 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즉위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장헌세자(莊獻世子)'라고 호칭을 바꾼다.

 정조의 어머니 현경왕후는 영의정 집안의 딸로 사도세자의 세자빈이 되었으나 사도세자가 죽자 혜빈이라는 호를 받는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며 궁호가 혜경(惠慶)으로 되었으며, 그녀는 80세에 창경궁에서 죽는다.

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에 있다가 수원도읍 뒤 화성으로 옮겨와 현륭원(顯隆園)이라고 하였다.


 

 심이 깊은 정조는 창의적으로 현륭원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그도 사후에 그의 아버지 옆 건릉에 묻힌다.

고종 때 1899년 고조부였던 장헌세자를 '장조'추대하면서 현륭원이라는 명칭을 '융릉'으로 격상시키게 했다.

 사도세자->장헌세자->장자 호칭이 여러 번 바뀌어 자리 잡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 온 역사 공부에서 뇌에 새겨진 이름은 아직도 비운의 사도세자였다.


 사도세자와 현경왕후를 합장한 '융릉'과 그 옆에 있는 그의 아들 정조와 왕후를 합장한 '건릉'을 합쳐서 '융건릉(隆健陵)'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사적 제206호 문화재가 되었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듣게 되면 오랫동안 각인되고 정리가 되어 좋은 것 같다.



  날씨가 한여름처럼 무더운 탓에 융릉을 한 바퀴 돌고 나와서 건릉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을 모두 꺼려했다.

땀범벅이 된 우리 아들들도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버텼다.

우리는 다음 기회에 융건릉에 와서 건릉을 돌아보기로 하고 융건릉을 나왔다.

추석밑에 와본 융건릉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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