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종일 뭉기적거리다가 어스름이 깔린 저녁이 되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단단히 입고 한강변을 걸었다.
모자와 마스크까지 썼지만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눈이 살짝 덮인 보도블록을 따라 걷는데 핸드폰 진동벨이 울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장갑을 낀 손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툭',
핸드폰이 손에서 빠져나가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움켜쥐려 했지만, 장갑 낀 손은 둔했고, 핸드폰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툭!"
바닥에 부딪힌 소리가 겨울밤의 고요를 깨뜨렸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얼른 허리를 숙였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바닥에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화면이 나를 비웃듯이 '메롱'하면서 비추고 있었다.
'아, 망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터치는 먹통이었고, 화면 중앙에서부터 액정이 까맣게 변해있었다.
'사달이 났구나.'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전원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념무상이다.
'묵은해를 쌈빡하게 제대로 보내는구나~~~~'
'내일부터 새해니까 다행이다.'라고 되뇌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만보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들을 불러서 한숨을 쉬며 깨진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엄마 핸드폰을 떨어뜨렸어요? 작동이 안 되네.. 조심하지......."
아들은 내 핸드폰을 유심히 보더니,
"엄마! 예전에 쓰던 핸드폰 있죠? 그거 찾아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예전 사용했던 핸드폰을 서랍에서
찾아 아들에게 가져다주었다.
"휴일이 길어서 서비스센터는 오픈 안 해요."
"엄마 핸드폰은 바로 수리가 안되니, 유심을 기존 것에 갈아 끼워 줄 테니, 임시로 쓰시고, 금요일에 서비스센터 오픈하면, AS 맡기세요."라고 했다.
공구를 가져와 깨진 핸드폰에서 유심을 꺼내더니 기존 핸드폰에 유심을 갈아 끼워주었다.
유심을 갈아 끼우니 핸드폰을 정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짜슥! 키운 보람 있네."하고 어깨를 '툭'쳤다.
순간 내가 낳았지만 기특하고 든든했다.
뜻밖의 핸드폰 사고를 냈지만, 그 덕분에 뜻밖의 아들의 친절을 경험했다.
깨진 핸드폰 덕분에 엄마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아들! 유튜브가 안되고, 쿠팡도 안되고, 브런치도 안되네, "라고 했다.
아들은 핸드폰을 들고 능숙하게 블루투스로 멜론을 연결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유튜브를 연결하고, 쿠팡에서 물건을 검색할 수 있게 구글과도 연동시켰다.
나는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마치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들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이건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설명했다.
나는 속으로 '그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아들이 대신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는 게 좋았다.
“엄마, 그냥 가만히 있어요. 내가 다 알아서 연결해 줄게요.”
이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뒤로 빼고, 가만히 지켜보는 역할을 하였다.
그날 밤, 깨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다음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하지?'
살면서 지금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지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의지해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들이 핸드폰을 연결해 주는 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도 아들을 도와주면서 내가 기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 이렇게 커버렸구나.....'
'이젠 내가 너에게 의지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구나.'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아쉬운 이 마음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