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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덩어리 부상길과 칼 융 분석심리

폭싹 속았수다

by 남궁인숙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최대훈이라는 배우가 있다.

배우 죄대훈이 맡은 역할은 부상길이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남성 권위였던 시대가 지나고, 소통 없는 권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는 세대 변화가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

부상길은 제주도의 도동리 지역의 유지였고, 배의 선장으로 드라마 초반에 애순의 혼처로 등장하면서 드라마 마지막까지 계속적으로 나온다.

오늘날 ‘부정적인 아버지상’의 대명사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캐릭터 설정을 넘어, 가부장적 가치관과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을 지닌 구세대 남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마누라 하나 얻으면 살림이 공짜'라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며, 여성을 ‘노동력’이나 ‘재산’ 정도로 여기는 인식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자신이 ‘당연히 우선’이라는 태도를 가졌으며, 열등감 많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성격으로 마을 선거에 출마하며 표심을 얻기 위해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소문을 퍼뜨리기는 등 온갖 소시민적 처세술을 사용하였다.

자신의 추문이나 위선을 덮으려 하면서도, 남을 통제하려 들었다.

주인공 애순과 그의 처, 영란 등 여성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점점 영향력을 잃었고,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몰락’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애순이나 아내 영란을 대할 때도 공감, 존중, 배려가 아닌 지배와 통제로 반응하면서도 매번 그녀들에게 당하는 장면들은 시청자에게 많은 재미를 주었다.

그런 부상길은 결국 성추문 루머로 계장선거에서 낙선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한 풍자이자, 구시대 권위의 퇴장을 상징하는 인물로 잘 구성되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를 향해 욕하면서도 웃게 되는 배역이었다.


특히 그의 아내, 영란의 성화에 못 이겨 이혼을 당하고, 혼자 남아 빈 집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영란을 바라보면서, 볼멘소리로 "나도 당신 옆에서 추워 얼어 죽는 줄 알았다."라고 크게 내뱉으며 소심하게 복수하던 모습에서 아내를 사랑했던 사랑꾼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신혼 초에 남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드라마 작가가 내 머릿속을 한번 들어갔다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드라마 속 영란처럼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못마땅해했던 나에게 남편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랑 사느라 네 속이 까맣다고 하겠지만, 내 속도 지퍼 열면 까매!"라고 했었다.


볼수록 매력덩어리인 ‘학씨 아저씨’!

얄미운 속물근성의 밉지 않은 캐릭터였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듯하고,

전근대적 아버지상에 대한 풍자이자 반성의 거울이었다.

부상길이 학씨아저씨로 통하는 이유는 드라마 내내 그가 분노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SNS를 통해 밈(meme)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실패한 아버지상이었지만 결코 밉지 않다.

가족들이 모두 곁을 떠나버리고, 노년에 햇반이 효도한다면서, 햇반을 데워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코미디로 포장된 비련의 조연이라고 해야 할까?

부상길의 행동은 웃음도 유발하지만, 그 안에는 비극적 현실이 깔려 있었다.

열등감만 가득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권위는 조롱받고,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무르는 인간이었다.


‘열등감 덩어리 부상길’을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이론과 연결 지어 보면, 그의 행동과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칼 융은 열등감을 단지 개인의 나약함이나 부정적인 성향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성장 동기이자 무의식 속 그림자(Shadow)로 이해하였다.

열등감은 ‘자기(Self)’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원동력이며, 개인의 그림자(Shadow)는 받아들이기 싫은 자기의 부정적 측면이었다.

여기서 부상길은 자신의 학력 부족, 존중받는 태도에 대한 열등감, 권위에 대한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고 자녀에게 투사했다.

'꼴통도 유전이다.'

'공부 안 하면 너도 00처럼 될 거야.'라는 강박적 태도는 자신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과거(그림자)를 자녀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

칼 융은 자아(Ego)가 무의식과 통합되어야 진정한 '자기실현'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부상길은 무의식의 열등감과 대면하지 못해 항상 분노와 강박으로 반응을 보였다.

즉, 그는 자신의 무의식을 직면하지 못하고,

외부 통제(자식 교육, 위신 유지)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였다.

제주 남성이라는 지역 정체성 속에서 그는 사회적·문화적으로 낮게 평가받는다고 느끼며,

그 열등감이 개인적 수준을 넘어선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칼 융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집단 무의식은 개별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부상길의 불안, 억압, 과잉 통제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제주라는 환경에서 형성된 심리적 유산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가슴 한 편에는 그도 이 시대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버지였고, 표현 못한 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꼈을 것이다.

'학씨 아저씨(부상길)’는 단순히 불쾌한 캐릭터 그 이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 아버지상이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작가의 손끝을 통해 탄생한 아버지, 부상길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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