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을 품은 창덕궁

창덕궁 1

by 남궁인숙

이른 아침, 창덕궁 매표소 앞에 33기 유아숲교육지도사들이 모였다.

오늘은 워크숍이 있는 날이다.

궁궐 안의 봄을 느끼고자 이루어진 일정이었다.

육군소령으로 제대하고, 태능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하는 33기 유아숲교육지도사 회장을 맡고 있는 분이 궁궐 해설사로 봉사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침, 창덕궁은 봄의 전령사들이 도착하여 창덕궁의 멋을 뽐내고 있었다.

홍매화, 미선나무꽃, 매화꽃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미선나무꽃도 처음 보는 꽃이었다.

창덕궁의 멋진 해설과 함께 진액만 골라서 들려주었기 때문에 아주 유익하였다.

궁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창덕궁을 빠른 걸음으로 만 이천보를 횡단하고 나니 해설이 끝났다.

해설사님의 정제된 말투와 군더더기 없는 설명, 때론 유머를 곁들인 이야기 속에 궁궐은 더 이상 ‘옛 건물’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

시간부족으로 가보지 못한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후원(비원)이었다.

해설사님은 앞으로 '비원'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비원’이라는 말 대신 ‘후원’이라 부르라는 말은, 언어에 깃든 역사적 상처를 되짚어보게 했다.

단어 하나에도 의도가 담길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창덕궁에서 들은 해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후원이 단순한 왕실의 정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자 했던 조선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궁궐에 대한 해설을 그렇게 맛깔나게 잘하던지 감탄스러웠다.



창덕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년)에 재건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설계도면과 기록을 참고하여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였다.

특히, 1830년경에 그려진 '동궐도(東闕圖)'는 창덕궁의 건물 배치와 형태를 상세히 전하는 귀중한 자료로, 궁궐의 역사와 건축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주요 이유는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독특한 건축 배치와 조경 때문이었다.

다른 궁궐이 좌우 대칭의 일직선상 배치를 따르는 반면, 창덕궁은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비정형적인 배치를 보여주었다.

또한,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연못과 정자 등을 배치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극대화하였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지만, 설계도면이 있어서 완벽하게 재현된 건물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서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궐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국가문화유산 포털에 들어가 보면 좀 더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연못 하나, 정자 하나에도 그 이름과 위치, 배치에 담긴 뜻이 놀라웠고, 특히 ‘애련정’이라는 정자에 담긴 애련(愛蓮)의 정신 '흙탕물에서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 연꽃처럼 살아가고자 했던 선비의 마음'은 곧 우리의 삶에도 통하는 울림을 주었다.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꼭 그곳에서 조용히 앉아 사색에 잠기고 싶었지만, 후원 입장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해설사님은 '역사는 늘 그 자리에 있으니 언제든지 다시 오면 된다.'라고 했다.



점심으로 곁들인 탁주 한 사발은 꿀맛이었다.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점심 식사 후 이어진 '경인미술관 투어'는 또 다른 감성의 전환점이었다.

정적인 궁궐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또 다른 예술의 세계가 펼쳐졌다.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람의 마음에 말을 거는 법이다.

특히 세라믹 공예전에서 만난 도예 작품은, 창덕궁의 기와지붕 곡선을 떠오르게 하며,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정성을 들인 신진 작가들의 손길, 붓질 그리고 사진작가의 소중한 순간 포착,

하나하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하루가 스러진다.



미술관을 나와 ‘개성만두집’ 앞을 지나며, 긴 줄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갔다.

미술관 앞 '개성만두집'은 왜 하루 종일 줄을 서는지 다음에 꼭 그곳에 가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줄지 않는 고객들의 행렬에 미슐랭집임을 알게 되었다.

역사 공부와 대비된 너무 단순한 호기심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