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야 사는 식물

by 남궁인숙


우리는 종종 삶의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아픔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것, 실패는 수치로 여긴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들여다보면, 성장의 시작은 파괴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말처럼,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썩는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피어난다.

씨앗은 땅속에 묻히며 어둠과 습기, 압력을 견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씨앗은 겉껍질이 썩고, 스스로를 해체함으로써 싹을 틔운다.

만약 씨앗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면, 아무리 좋은 흙과 햇빛이 있어도 생명은 움틀 수 없다.

썩음은 곧 죽음을 뜻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와 상처, 좌절을 경험한다.

그것은 '삶의 썩는 과정'이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익숙한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변화를 위한 씨앗이 숨어 있다.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통과할 때,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고 넓은 존재로 성장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한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언명이 아니라, 실존적인 깨달음이다.

성장하려면 과거의 나를 허물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때의 고통은 의미 없는 고통이 아니라, 내면의 밭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결국 용기를 뜻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이 바로 내 안의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고 견뎌낼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실패는 추락이 아니라 비상의 준비다.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처럼 비상을 꿈꾸는 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단순한 실루엣에서 어떤 격정 같은 것을 느꼈다.
푸른 어둠 속에 떠 있는 검은 형체,
심장처럼 붉은 점 하나가 가슴에 박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꿈이거나, 욕망이거나, 상처, 아니면 그것들을 전부 포함한 불꽃일 것이다.

그림 속 이카루스는 추락하고 있지만, 나는 거기서 오히려 '비상(飛上)'을 본다.

한순간이라도 날아올랐다는 것,
그 자체로 찬란하고 존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그런 순간을 꿈꾼다.
모든 무게를 떨치고, 세상이 부여한 이름과 역할을 벗어던지고, 나의 ‘진짜 높이’로 솟구치는 꿈.

비상은 늘 짧다.

그래서 더 뜨겁고, 더 절실하다.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날개는 녹지만, 그리로 향하려는 몸짓만큼은 진실하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작은 이카루스를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지상에 발을 딛고도, 늘 하늘을 보는 존재.
넘어짐과 추락이 두려우면서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날고 싶은,
그런 내면의 한 조각.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처럼 붉은 심장을 안고, 날아오를 꿈을 꾼다.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하는 유일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마침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다.


자기 부정과 고통, 변화의 과정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형태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순환이며, 자연의 이치다.

씨앗이 땅속에 묻혀 썩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그 어둠과 정지 속에 사실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힘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꽃은 씨앗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어났다.'라고 하였다.

또한, 칼 구스타프 융의 '개인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온전해진다'라는 분석심리학 입장도 자아의 일부가 ‘썩고’ 사라져야 더 깊은 통합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이 문장도 이 사상과 맞닿아 있다.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마침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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