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로덴드론(Clerodendrum)
여름이 되면, 테라스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붉은 피를 머금은 꽃 하나가 핀다.
이름부터 낯선 '클레로덴드론(Clerodendrum)'.
흰색 꽃받침 안에 숨어든 진홍의 꽃잎은,
마치 무언가 말을 하려다 꾹 삼킨 듯한 입술을 닮았다.
사람들은 이 식물을 ‘피 흘리는 심장(Bleeding Heart)’이라 부른다.
가슴 깊은 곳에 맺힌 수많은 말을 '꽃'으로 피운 것만 같다.
나는 이 꽃 앞에서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보색대비의 매력적인 꽃의 색깔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먼저 눈길이 머무는 건,
서로 다른 색이 어울려 하나의 풍경이 되는
그 '조화로움' 때문이다.
서로 닮지 않은 색인데,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게 신기하다.
너무 달라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 다름이 오히려 더 또렷한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우연히 브런치 식당에 갔다가 인테리어 소품으로 장식된 화분을 보고서 꽃이 예쁘다면서 친구가 좋아했다.
부르기가 쉽지 않은 꽃이름이다.
'클레로덴드론(Clerodendrum)'의 꽃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Kleros (κλῆρος)는 '운명(fate)' 또는 '신의 뜻'
Dendron (δένδρον)은 '나무(tree)'라는 뜻으로, 이 둘이 합쳐져 '운명의 나무' 혹은 '신의 뜻을 지닌 나무'라는 뜻이 된다.
'클레로덴드론'은 옛날부터 약초로 사용되었으며,
질병 치료나 건강과 관련된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에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이름에 반영된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에게서 처음엔 낯설고 어색함을 느끼지만,
그 다름이 때로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노랗고,
누군가는 보라색이고,
또 누군가는 짙은 초록빛 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색이 더 예쁘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얼마나 더 '깊은 풍경'이 되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오늘 이 꽃 앞에서 잠시 멈추어
조용히 바라보며,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과
그 어울림이 얼마나 고요한 힘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조용히 피워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기엔 아직 부끄럽고,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기 어려운 마음이 있다.
그럴 때마다 클레로덴드론은 묵묵히 자신의 색으로 나를 위로한다.
덩굴을 타고 오르며 꽃을 피우는 그 끈질긴 생은
마치 상처를 딛고 피어난 이야기 같다.
흙을 만나고,
햇빛을 머금고,
비바람 속에서도 절대 잊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사람도 때로는 이 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가슴 한편에 '피 흘리는 심장'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아픔은 가끔씩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상처는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으로 피워낼 수 있는
'삶의 흔적'이라는 걸
이 꽃은 매년 잊지 않고 가르쳐 준다.
올여름,
나는 '클레로덴드론'과 함께
조용히 그러나 찬란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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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꽃〉
– 클레로덴드론에게 부르는 노래 -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조용히 피어나는 하얀 꽃 위에
말 못 한 마음이 붉게 물들었죠
햇살을 피해 숨어있던 사랑이
당신을 향해 다시 피어난 거예요
후렴
피 흘리는 꽃이 되어
가슴속 이야길 말해요
아프고도 예뻤던 그날을
잊지 못해 잎새에 새겨요
그대여, 나의 마음을 알아줘요
이건, 숨기지 못한 그리움이죠
2절
덩굴처럼 얽혀버린 기억에
가끔은 멀어지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그대 향한 맘은 여전히 피어나요
피 흘리는 꽃이 되어
조용히 당신을 불러요
눈물 같던 그 말을 못 한 채
오늘도 이 자리에서 기다려요
그대여, 나의 계절은 그대예요
지금도 당신을 피워내요
아물지 않는 이 마음
꽃이 되어 바람을 타고
그대 곁에 조용히
닿을 수 있다면...
피 흘리는 심장이
당신을 품고 웃어요
슬픔도 사랑도 다 안고
붉은 꽃잎처럼
나 여기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