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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큐레이터 Dec 14. 2022

어느 날 귀가 들리지 않았다

Chapter 6. 무엇을 위해 일하는 가

입사 5개월 만에 퇴사를 외쳤지만 난 결국 주변 선배들부터 시작하여 상사, 최고책임자까지 모두에게 붙잡혔다. 그때 나왔으면 내 몸 상태가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텐데. 모두가 나를 붙잡으려 할 때 난 붙잡히지 않았지만 한 여자 상무님의 말 때문에 난 조금 더 버텨보기로 한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셨고 내 상황과 감정을 이미 오래전 겪었던 분이셨다. 그분의 끝까지 함께하자는 말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 1년이라도 버텨서 퇴직금이나 받자'


그 이후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한번 그만둔다고 회사를 뒤집어놨다가 다시 다닌다는 직원을 누가 곱게 볼까? 애초에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 없었기에 별 생각도 없었지만 갑자기 어느 과장님이 자리를 마련하더니 나보고 사과를 하랜다. 피해자는 난데 왜 사과를 하지? 가만히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는 죄? 아니 상처받은 건 나라니깐? 


나의 퇴사 선언으로 상처받은 선배들이 많단다. 본인들에게 고민 상담조차 하지 않고 바로 퇴사하겠다고 상급자에게 찾아갔다는 게 이유였다. 애초에 난 고민이 아니라 결심이었는데 왜 상담을 해야 하는지 이해도 안 됐고, 왜 그거로 상처를 받은 건지는 더욱 이해가 안 되었고, 방관자였으면서 마음의 소리를 터 놓길 바란 것도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간에 다시 다니기로 결심했으니,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기 동안 난 일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일처리가 꼼꼼한 직원이었고 고객에게 친절한 직원이었고 성과를 내는 직원이었다. 



여전히 난 그곳에서 외딴섬과 같은 존재였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직원도 생겼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간혹 나를 보는 친구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나를 보고 걱정했다. 


내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려 밥을 먹지 못해 47kg까지 빠졌었고, 피부 알레르기로 매일 피부과를 드나들며 한의원에 몇백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급기야 어느 날 아침에는 귀가 안 들렸다. 


'나는 왜 이러고 살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을 계속 갉아먹으며 살아왔을까?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300만 원? 60세가 넘을 때까지 보장된 정년? 아니면 대기업 네임 밸류? 다 필요 없었다. 나는 이미 불행했고, 매일 하루가 끝나길 바랐으며 내 삶 자체가 끝나길 바랐었다. 


스스로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난 그렇게 22년 5월 퇴사를 하였다. 퇴사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되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한다. 그러나, 그렇게 참았더라면 난 어떤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3년 반이라는 직장생활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그때만큼 돈을 벌고 있진 않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나 답게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과 명성이 아니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나의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꽤나 방황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시기를 사랑한다. 이런 시행착오가 나를 결국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나 스스로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도 나라고, 나 자신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 어떤 사물에도 그 어떤 일에도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도 온전히 애정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국엔 그 과정을 거쳐야만 내 취향을 알 수 있는 거라고. 여전히 의문인 삶을 사느니 차라리 부딪히며 아닌 건 버리는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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