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1024호 이야기(번외인 듯 번외 아닌 번외 같은)
안녕? 나는 아느야. 사람들은 나를 1024호라고 불러.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 따로 있단다. 너도 나를 '아느'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나는 작은 원룸이라 친구가 많이 없어. 사람들은 내 친구를 책상, 침대, 가스레인지, 옷장, 좌변기, 신발장 등으로 부르지.
아, 참.... '누누' 그러니까 13개월 전까지 있던 침대는 새 주인이 오면서 이사 갔어. 얘는 나하고 10여 년을 함께 했단다. 누누가 이사 갈 줄은 몰랐어. 평생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난 이사할 수가 없으니까 그때 좀 슬펐어.
새 주인은 좁은 집에 왔으면서 내가 너무 좁다고 투덜거리더라고. 방을 잘 치우면 조금 낫지 않겠니 하고 말해 주고 싶지만 참았어. 이전 주인들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왜냐면 이 세입자도 열심히 사는 도시 사람 중에 하나니까. 머, 함께 회사에 가지는 않았지만 새벽부터 출근하고 밤늦게야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가끔은 종일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이 세입자(편의상 '나무'라고 부를게.) 나무와 함께 나에게 온 치자꽃 화분이 걱정하곤 해. '치자'는 나무를 아끼거든. 그래도 그럴 때마다 난 잎이 다 시들시들할 정도로 걱정하는 치자가 철야하는 나무보다 더 안쓰러워. 다행히 나무도 치자를 사랑하는 것 같아. 돌아오면 항상 치자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거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치자가 자랑하기를, 요즘은 바빠서 그렇지만 전에는 나무가 치자에게 노래도 불러줬대. 나는 그저 그러냐고 했지만 다른 화분들(허브와 다육이 종류야.) 일육이부터 육육이와 허브 자매는 조금 부러운 눈치야. 하지만 치자가 가장 덩치가 큰 만큼 잘 챙겨주고 늘 씩씩하게 자라나서 나무가 없을 때는 치자 쟁탈전이 벌어지지. 특히 허브 언니는 장미향을 치자에게 뿌려 주고, 햇빛 더 받게 팔을 좀 들어주고, 머리칼을 정리하고는 하는 모습이 퍽 재미있어.
참, 나무는 나갈 때 불을 안 끄고 가. 언젠가 나무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걸 들으니까 캄캄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래. 나무는 겁이 많은가 봐. 겁쟁이. 하하. 근데 그걸 들키기 싫은지 외로워서 그런다고 거짓말하더라고. 우리 나무, 조금 귀엽지?
-너도 얘기 좀 해 봐. 넌 요즘 어때?
배경음악: 권영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