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짜리 소설

7호-민은 왜 옷을 잘 입는가

by 벼리

민은 옷을 잘 입었다.

대학생 때 민이 청남방을 입으면 그 다음날 여자애 몇몇이 청남방을 입고 와서 우리 과 강의실을 푸르게 물들였다.

민이 검은색 블루종에 검정 워커를 맞춰 코디한 다음날에는 남자애 몇몇이 블루종을 입고 검정 워커를 신고 오는 바람에 동아리실이 검게 물들었다.

카키색 야상에 회색 카디건을 입으면 그 며칠 뒤 꼭 그렇게 따라 입는 친구가 있었는데, 민이 야상에 원피스를 입은 날 이후에는 또 그렇게 따라 입을 정도였다.

그런 여학생들 덕분에 나도 알게 됐다. 그렇게 입어서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 민이 입어서 예뻐 보인다는 걸.

민을 칭찬하고 싶어서 일부러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옷을 잘 입느냐고.

"내가? 하하. 에이, 농담도. 난 그냥 옷장에 있는 거 막 입고 나오는 거야. 빨래할 거나 아직 덜 마른 건 못 입으니까, 깨끗한 옷 중에서 아무거나 걸치는 건데 무슨 말이야. 남들이 비웃겠다, 야."

민의 무심한 말과는 다르게 새침떼기 같은 친구들도 민이 입은 옷이 어느 브랜드 것인지, 가격대는 얼마인지 궁금해했다.

"아, 이거 쇼핑몰 '마녀냥'에서 산 거야. 난 검은색이 품절이라 녹색 샀는데, 지금은 검은색도 있더라. 에이, 좀 기다렸다가 검은색 살걸."

민의 대답이 있은 며칠 뒤, 민이 헐값에 샀던 녹색 티를 따라 산 여자들과 친구녀석들이 우리 과 강의실과 과방을 물들였다. 민이 추천한 검은색 티를 같이 산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녹색으로, 검은색으로 물든 서로를 보며 '뭐야, 얘도 샀어? 치, 민이 입었을 때는 괜찮더만.' 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러다가 민이 입고 온 민트색 남방을 봤을 때는 우리 과 동기 과반수가(다음 학기에 교수님 중 한 분도 그 옷을 입고 오셨다.) 그 옷을 공동구매한 일도 있었다.

후에 알게 되었다. 민은 만 원짜리 옷이든 십만 원짜리 옷이든 손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곱게 해서 입는다는 걸. 왜 수고스럽게 그렇게 입느냐고 물었을 때 민이 말했다.

"가격은 옷을 살 때뿐이야. 입어 봐야 진가를 아는 법이지. 그리고 명품은 그걸 지닌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는 것 같아.... 머 그렇다고 명품이 싫은 건 아냐. 하하."

나는 민의 옷을 따라 입지는 않았다. (민처럼 옷을 잘 입고 싶은) 여자애들은 민과 같은 날에 같은 옷을 입고 오는 일이 없도록 애썼지만, 남자애들은 반대로 애썼다.

사실 나도 민이 입은 옷 중 하나를 샀었지만 입지는 않았다. 입으면 왠지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았다. 그러나 나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다만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민에게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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