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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Dec 29. 2016

두평짜리 소설

19호-멀미와 나

나는 가끔 혼자 고속버스를 탈 때가 있다. 다른 지역으로 갈 때, 기차는 역마다 사람이 타서 조금 불편하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먹는 깨찰빵은 사랑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우리의 과거가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자신도 당황스럽겠지만, 더욱 당황할 사람은 주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알츠하이머병은 환자 자신에게도 큰 아픔이지만 그의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잊어버리는 상처를 준다고 한다.

기억상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참 많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기억을 잃어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기억이 돌아와서 잠시 머물던 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상황 아닐까.

모든 것을 다 잊어도, 단 하나 기억한다면 그건 어떤 것일까. 이름? 가족? 아마, 몸으로 습득한 것은 다 기억하겠지.

차창 밖을 보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만약 일시적 기억 장애로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번호는 뭘까?


"그래, 그거다. 그 번호로 해야겠다."


그 뒤로 나의  비밀번호는 언제나 그것이었다. 휴대폰 번호. 이제 바꿀 때도 됐는데 여전히 그 긴 번호를 질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누르며 출입하고 있다.

어떤 날은 키보드를 두드리듯 빠르게, 어떤 날은 첫사랑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보듯이.


삑, 삑, 삑, 삑...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그런데, 옆집도 꽤나 긴 비밀번호로 출입하는 것 같다. 가끔 저렇게 비밀번호를 틀리기도 하는 걸 보면 좀 짧고 단순한 걸로 바꾸는 게 좋을 텐데.


스탠딩 에그, 여름밤에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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