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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피쉬 Mar 13. 2020

글도 나이를 먹는다

자라는(잘 하는) 중이면 좋겠다

십 대 시절 나의 글은

나는 소녀 입네 말하고 있었으리라.

내 안에는 철학자도 있다고 신도 있다고

진지한 얼굴도 해 보였겠지.

주머니에 담을 거라곤

낱말 꾸러미밖에 없어서

날이 좋으면  또 날이 흐리면

꺼내어 아무에게나 사랑을 고백했을 아이,

그 아이의 철없는 사랑이

달무리 마냥 문장 주변에 얼룩 거렸다.



이십 대에 내가 쓴 글은 풋풋했으리라.

화자는 자신의 재기와 발랄을 뽐내고 싶어

몸이 달았으리라.

어제의 반성도 오늘의 반성도 못내 명랑하여

콘크리트처럼 맑은 자존감을

활짝 드러내고 웃었겠다.

화장한 티를 숨기지 못하는 스무 살 같은 문장은

오타도 없 매끈매끈한

데굴데굴 굴러갈 줄을 몰

아무에게도 도착하지 못 글밥들

심심해서 제 코를 잡고 뱅뱅 돌았다.



서른 넘어

아줌마가 되고 아이 엄마가 되어

쓰는 글은 차분해지고 말았다.

늘어난 몸무게나 주름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초라해졌다고 한다.

초라해진 것은 나의 육신일까

제 삶을 바라보는 화자의 관점일까.

아,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자니 숨 막혀와

너의  삶을 구경해도  될까?

바다 건너 세상에 관심도 가져보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지.

쪼그라든 자아는 부지런히도 쫒아오고

나는 비장의 무기 아이들을 꺼낸다.

너희들은 잘도 내 정신을 훔쳐가지, 암 암.

밤은 오고, 해가 뜨고, 겨울이 오고,  봄도 오고

나는 포기하고 글을 쓴다.

다시 중학생이 되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글짓기를 시도한다.



아니, 그 답을 미루고 미룬다.

사십이 넘은 나의 글 말해주기를,

나는 조금 더 익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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