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나이를 먹는다
자라는(잘 하는) 중이면 좋겠다
십 대 시절 나의 글은
나는 소녀 입네 말하고 있었으리라.
내 안에는 철학자도 있다고 신도 있다고
진지한 얼굴도 해 보였겠지.
빈 주머니에 담을 거라곤
낱말 꾸러미밖에 없어서
날이 좋으면 또 날이 흐리면
꺼내어 아무에게나 사랑을 고백했을 아이,
그 아이의 철없는 사랑이
달무리 마냥 문장 주변에 얼룩 거렸다.
이십 대에 내가 쓴 글은 풋풋했으리라.
화자는 자신의 재기와 발랄을 뽐내고 싶어
몸이 달았으리라.
어제의 반성도 오늘의 반성도 못내 명랑하여
콘크리트처럼 맑은 자존감을
활짝 드러내고 웃었겠다.
화장한 티를 숨기지 못하는 스무 살 같은 문장은
오타도 없고 매끈매끈한데
데굴데굴 굴러갈 줄을 몰라
아무에게도 도착하지 못한 글밥들은
심심해서 제 코를 잡고 뱅뱅 돌았다지.
서른 넘어
아줌마가 되고 아이 엄마가 되어
쓰는 글은 차분해지고 말았다.
늘어난 몸무게나 주름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초라해졌다고 한다.
초라해진 것은 나의 육신일까
제 삶을 바라보는 화자의 관점일까.
아,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자니 숨이 막혀와
너의 삶을 구경해도 될까?
바다 건너 세상에 관심도 가져보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지.
쪼그라든 자아는 부지런히도 쫒아오고
나는 비장의 무기 아이들을 꺼낸다.
너희들은 잘도 내 정신을 훔쳐가지, 암 암.
밤은 오고, 해가 뜨고, 겨울이 오고, 봄도 오고
나는 포기하고 글을 쓴다.
다시 중학생이 되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글짓기를 시도한다.
아니, 그 답을 미루고 미룬다.
사십이 넘은 나의 글이 말해주기를,
나는 조금 더 익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