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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피쉬 Mar 22. 2020

여자에게

넌 언제 알았니 네가 여자인 걸

서른 중반 아이 낳고 엄마가 된 후

가 여자구나 깨달았다

뱃속의 점 하나가 부풀어 올라

내 배가 백 살 먹은 거북이 등짝처럼

크고 단단해졌을 때,

거짓말처럼 유두에서 하얀 젖줄기가 나와

자궁 밖에서도 여전히 씨앗 같은

작은 생명을

그의 생을 발아시킬 때,

토록 기이한  체험이

억세고 억센 학습 결과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왔을 때

알았느냐,

아니다

세상이 내게 기대한

이게 전부라는 걸 깨달았을 때다

내게 있는 자궁으로

성스운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완성하도록

나의 건강을 기도하는

세상을 알았을 때다,

마침내 운전을 배우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니

그런 건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더 멀리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딱딱한 곡식과 뻣뻣하고 쓴 풀을  

부드럽게 쪄내는 것

그런 기술이 네겐 있지 않느냐,

그  기술로

네게 돈을 치는 남편과

그 남편과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를

살찌우게 할 수 있지 않느냐

독려했다

 것보다는 글을 쓰고 싶다 말했다

그러라 했다

미소 지으며

지금의 축복된 삶을 기록하라 했다

내가 노벨상이라도 타면

예의 그 미소를 지어줄 것 같은 세상,

하지만 끝끝내 내 글은 읽어볼 것 같지 않은

세상이 내게 여자로 살라고 령할 때

주저앉고 싶은 이를 악문 너의

멋모르고 열심히 달려온 생의 종착지 

이름이 female일 때

그러니까 지금

네가 여자란 

빼도 박도 못하게 실감하고 말았다면

잊어라

잊어도 좋다

확실히 알았다면 이제 지워라

네가 그저 생명의 한 형태라고

사람,

이라고 기억해라 주장해라

긴 세월 인간이 인간에게 애도를 표하며

흘린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그 안에서 퍼올린 한 스푼의 지혜는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늘인 듯 부지런히 씹어먹고


너는 사람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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