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담론이 활발하게 이어지는 시대다. 특정 시대와 환경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질적 정서와 행동양상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최근 가장 큰 유행어로 등극한 ‘MZ세대’라는 규정짓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넓은 연령층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전까지 제시되었던 86세대나 X세대 등과 같이 무수한 이들의 사고를 관통하는 정치사회적, 이념적, 문화적 정서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MZ라는 용어가 문화시장에서 ‘젊은이’ 내지 ‘청년’을 조금 참신하게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나 유행어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단어가 전 국민적 유행어처럼 사용된 요인은 “요즘 MZ세대라는 것들은 말야~”라고 시작하는 말로 최근의 젊은이들을 비하하거나 왜곡되게 바라보는 데에 무척 편리하게 사용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또래보다는 부모 내지는 삼촌뻘인 선배들과 주로 어울려왔다. 일의 특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경험과 나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세대에 대해 궁금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야근을 하기 싫어한다거나, 아낄 줄 모르고 돈을 펑펑 쓰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등의 MZ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대표적이다.
그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말하는 MZ가 내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의 모습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커피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다 언급이라도 되면 나는 ‘도대체 그런 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냐’며 짜증을 내곤 한다. 함께 있는 이들은 그런 내 반응을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MZ의 모습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면, 도대체 너희 세대는 어떤 세대냐’고 묻고는 한다. 나는 그런 질문에 한 문장으로 말하면 ‘엄마 말을 가장 잘 들은 세대’라고 답한다.
우리 세대는 산업화가 충분히 이뤄진 뒤에 태어나, IMF를 극복한 뒤에야 학교에 입학했다. 보편적인 가치나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담론이 어느 정도 숙성된 시대였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주변의 눈치에 기가 죽을지언정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비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려받은 교복과 새로 재단한 교복의 때깔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절망적 상황에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야 해서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투영된 우리 부모들의 마음은 거의 비슷했다. “다른 건 엄마(아빠)가 다 해줄 테니, 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니 공부만 열심히 잘해라.” 그건 가난 탓에 대학에도 가지 못했거나 이른 나이부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흘렸던 눈물과 땀의 흔적일 수도 있고, 본인들이 겪어온 사회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것이 더 우월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사회의 인식에 철저히 동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이 자신보다는 힘들지 않기를 바랐고,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기를 바랐다.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겠다는 사랑과 책임감의 발로였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드물다. 자신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아는 아이도 드물다. 더 이상 신분 상승을 위해 부모가 소를 팔아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는 ‘우골탑’이나 자신이 출세해야 일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던 ‘개천에서 난 용’의 시대가 아니었다. 가야 한다니 학교에 갔고, 어른들이 시키니까 숙제를 했으며, 부모님이 큰돈을 지불했다고 하니 보내는 대로 영어나 수학,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에 갔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에는 특히 돈과 정성이 모두 많이 들어간다. 혼자 살았다면 한 달 생활비로도 충분했을 돈이 아이들 학원 두어 곳을 보내면 쉽게 나갔다. 여가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들이 어린 시절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선택한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돈을 아끼고 쪼개며 자신들이 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든 시키고자 했다.
부모는 고생하고 마음을 쓰며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아이들은 부모가 해야 한다고 하니 하기 싫은 공부를 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으면 부모는 만족했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으면 만족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안심했다. 그것이 서로의 삶에 정말 도움이 되고 행복한 일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고생과 수고로움을 자처했다. 남들이 그렇다니 다 그런 것인 줄 알았고, 남들이 다 하는데 나와 우리 가족만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험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현재 어느 정도의 학습상태인지 확인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되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험에서 받는 좋은 점수가 목표가 되어버리니 여건이나 상황 또는 아이들의 수준은 고려되지 않았다. 스스로 사고하고 깊이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문제집을 풀었고, 빨간 볼펜으로 쭉 그어진 오답을 시험 실전에서 다시 틀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할 뿐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때,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국어나 국사처럼 좋아하던 과목에서는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수학이나 과학에서 평균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각 과목별 성적의 평균을 내어 400명가량 되던 같은 학년 아이들을 등수로 나열하면, 뒤에 있는 아이들보다 앞에 있는 아이들이 반도 되지 않았던, 굳이 말하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만족하지 않았다. 식사를 준비하다 말고 성질을 내며 친구(친구처럼 지내던 다른 학부모였을 수도 있다)에게 전화를 걸어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성은 높았고, 내게 들으라는 듯 짜증을 냈다. 허구한 날 책만 읽더니, 수학 점수가 형편없다며 전화기 속 상대방에게 하소연했다. 슬펐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 멍하니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느라 수학 공부를 하지 않아 엄마가 저렇게 속상한가 싶어 책도 읽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시험을 본 날엔 집에 가서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도, 성적표에 ‘1등’이라고 적히지 않는 한 더 많은 노력을 요구받았다. 아니, 어쩌면 전교 1등도 다음 시험에서 다시 같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을지 모른다. 학교는 친구들과 만나 놀고 즐기던 공간에서 삭막한 경쟁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자연스레 경쟁심은 심해졌고,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기도 했다.
아직 학교에서의 체벌이 자유롭던 그 시절에, 영어 단어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대로 엉덩이를 맞은 뒤 자리로 돌아갈 때,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아 자리에 앉아 교탁 앞에서 매 맞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 짓는 같은 반 아이를 보며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경험은 모두의 머릿속에 “다른 건 우리가 다 해결할 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던 부모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각인시켰다. 입시 이후의 삶은 크게 고려치 않았다. 공부만 열심히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은 학교에 다닐 때뿐 아니라, 서른 즈음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 세대의 세계관 한편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충분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환경과 여건이 다를 수 있고, 약자와 소수자가 존재하는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거세게 반발하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 생각한다.
엄마 말을 잘 들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엄마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은 너무나도 많다. 시험이라는 절대적이고 단순한 기준이 없는 세상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일은 잦아졌다. 나의 생존이 우선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의 위에 서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런 아이들을 성인으로 만들어낸 부모들도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어 이전처럼 정력적이지 못하고, 아이들을 기를 때 했던 말처럼 모든 걸 해결해 줄 힘도 능력도 없다. 그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들도 그저 그 윗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가족들에게 제공하며, 밥은 굶지 않게 해 줄 수 있었을 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로 구분하고 구분 지어지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MZ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결국 요즘 말하는 MZ세대의 특징이라는 것들은 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또 만들었을 뿐이다. 더 이상의 경쟁이 싫어 여유를 찾으려 노력하고,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삶이 나아지지 않으니 부동산이나 코인에 관심을 갖는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성공이 중요하다 배웠기에 사소한 피해도 참지 않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게 됐을 뿐이다.
그러니 싸잡아 욕하지들 마시라. 5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한 데 묶어 꼰대세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나. 결국 같이 만든 세상이고, 세대다. 차라리 그냥 단단히 잘못된 세상이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고 지금까지 무엇이 잘못됐고 왜 잘못됐는지 같이 고민해 보자 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어휴. MZ가 어쩌고- 하는 말에 또 발끈해서 핏대 올려 한참을 떠들어버리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