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 Mar 27. 2024

우리 집 쪼꼬 - 영원히 사랑하는 제 동생입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이른 시간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평소에 용건이 없으면 통화를 하지 않는 남매이기에, 휴대전화 화면에 뜬 동생의 번호를 보며 걱정이 먼저 들었다. 다행히 지하철을 타기 직전이었기에 조용한 곳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어?”라는 말로 전화를 시작했는데, 전화 너머 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쪼꼬가 안 움직여. 쪼꼬가 너무 차가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쏟아지려는 눈물 탓에 눈꺼풀 아래가 시큰하고 아팠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손이 떨려 탈 수가 없었다. 가족의 죽음이었다.


 십 년도 더 전, 가족끼리 오랜만에 외식을 하다가 엄마가 말을 꺼냈다. 우리 남매가 학교에 다니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으니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나와 동생은 밥 먹던 숟가락도 내려놓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너무 좋다고, 얼른 데려오자고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비염이 심했기에, 엄마가 정말로 데려올 작정을 하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쌍수 들고 환영하며 어필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퇴근길에 종이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자그마한 종이상자 안에는 그보다 훨씬 더 자그마한 강아지가 앉아있었다. 낯선 환경이 두려운지 몸을 떨고 있었고, 너무나도 작고 여려 보이는 녀석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차마 손을 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든 강아지들이 그렇겠지만, 그 아이는 아주 작았다. 고등학생이던 내 한 손을 쫙 펼친 것보다도 작았다.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쪼그려 앉은 녀석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말했다. “쪼꼬맣게 생겼으니까, 쪼꼬 어때. 초코 말고 쪼꼬.” 그렇게 우리 집 막내, 내 동생 쪼꼬가 우리 가족에게 왔다.


 아버지는 쪼꼬가 요크셔테리어라고 했지만, 쪼꼬는 다른 요크셔테리어들과는 달랐다. 잘 짖지도 않았고, 겁도 많았다. 그러나 쪼꼬가 어떤 종인 지는 중요치 않았다. 내가 인간이고 쪼꼬가 개인 것도 중요치 않았다. 원래 가족은 서로가 어떤 모습이든 개의치 않고 사랑하는 법이다.




 쪼꼬가 우리 가족이 된 후, 내게는 힘든 일들이 많았다. 학창 시절 따돌림도 당했고,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공부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쪼꼬는 내게 위로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울적할 때면 내 품에 안기는 쪼꼬를 쓰다듬으며 눈가에 고여 그렁거리던 눈물을 닦았다. 이 해맑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동안은 언제고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쪼꼬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하지 않는 행동을 내게만 했다. 얼굴을 핥고 입술을 핥는 것이었다. “쪼꼬랑 뽀뽀하지 마!”라는 엄마의 말에도 나는 쪼꼬를 안고 열심히 굴러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 중 가장 눈물이 많던 내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자주 본 탓에, 자신이 눈물을 닦아주려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뒤, 가장 보고 싶던 가족이 쪼꼬였다. 이렇게 말하면 불효자 같지만, 아버지나 엄마보다 쪼꼬의 온기가 더 그리웠다. 몇 달에 한 번씩 본가에 내려가면, 현관을 열자마자 달려오는 쪼꼬를 안았다. 내게 사랑만 주던, 나도 사랑만 주던 쪼꼬는 나이가 들수록 무거워지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던 가장 크고 효과적이던 치료제였다. 홀로 자취방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엄마나 동생에게 카톡을 보내 쪼꼬는 무얼 하느냐고, 쪼꼬 사진 보내달라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쪼꼬가 그립던 것은 군 복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쌓여 시리도록 하얀 설산을 보며, 눈이 오는 날이면 신나서 뛰어다니던 쪼꼬의 모습을 떠올렸다. 공중전화로 집에다 전화를 걸면, 멀찍이 들리는 쪼꼬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집에 갈 때면, 못 본 지 오래되어 잠시 낯을 가리던 쪼꼬의 모습에서 서운함을 느꼈고, 금세 나를 기억한 듯 혀를 내밀고 달려오는 쪼꼬의 모습에 행복을 느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지낼 때에도 쪼꼬는 내게 행복이었다. 언제나 보고 싶은 가족이었다.




 돌이켜보면 쪼꼬와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산책을 다니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쪼꼬는 우리 가족답게 많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산책을 가자고 조르다가도 막상 나가면 아파트단지를 딱 한 바퀴 돌고 지가 먼저 집으로 가겠다며 현관을 찾아갔다. 그럼에도 후회가 된다. 쪼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가끔 집 근처에서 강아지와 함께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쪼꼬와 걷던 길과 그때의 막연한 행복감이 떠올라 퍽 슬퍼지곤 한다.


 어린 시절 겁이 많긴 했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늘 활기차고 씩씩하던 쪼꼬는 나이가 들며 많이 아팠다. 어느 명절, 가족과 함께 방문한 시골집에서 쪼꼬는 헐떡거리며 쓰러졌다. 낯선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 탓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연휴였기에 문을 연 동물병원을 찾기도 힘들었고, 간신히 찾은 병원에서 치료를 하며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복수가 차서 고비를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전화 너머로 들으며 한참을 울었다. 하필 아르바이트 탓에 내가 고향에 내려가지 못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신앙심에 기대어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쪼꼬는 씩씩하게 이겨냈다. 한참 동안 병원신세를 졌지만, 그래도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지는 않았다. 조금만 뛰어도 헐떡거렸으며, 매일 먹기 싫어하는 약을 먹여야만 했다. 몸에 전체적으로 무리가 갔던 탓인지 아프기 전보다 점프력도 떨어져 쉽게 오르던 소파에 뛰어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감사했다. 영영 떠날 뻔했던 가족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알 수 없는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올렸다. 털의 윤기가 바래고 원래도 작던 몸이 수척해져 더 작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쪼꼬를 안고 온기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쪼꼬가 아픈 뒤로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그래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남은 시간들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섞인, 입으로는 옅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가는 눈물이 흐를 것처럼 시큰해지는 감정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안타까웠던 것이 쪼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내려가지 못할 때, 문득 쪼꼬가 너무 보고 싶어 얼마 없는 돈으로 버스표를 끊고 집으로 간 적도 있다. 언제고 쪼꼬가 떠날 수 있음에 두려웠고, 아직은 이별의 순간이 오지 않기에 그 짧은 시간들도 소중했다.


 쪼꼬가 세상을 떠났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은 날, 결국 그날이 와버렸구나 싶었다. 언제고 올 수 있는 이별이었고, 언젠가 올 것이라 짐작하던 작별이었다. 준비되었다면 준비됐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결코 덤덤하거나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전화로는 애써 엄마와 동생을 달래며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사람으로 치면 할아버지가 되었을 나이까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했으니 행복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쪼꼬보다 두 배는 큰 베개를 안고 울었고, 켜지도 않은 TV 앞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보다 울었다. 가족의 죽음은, 10년 넘게 함께해 온 시간만큼 무거웠다. 많은 추억만큼 큰 아픔이 밀려왔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쪼꼬를 그리워한다. 모두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은 다른 아이를 가족으로 들이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동생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여전히 쪼꼬의 사진이 있고, 내 자취방 책장에는 쪼꼬의 모습이 담긴 작은 액자가 올려져 있다. 다른 것들은 모두 정리했지만, 쪼꼬가 가장 좋아하던, 누르면 삑삑 소리가 나던 닭다리 모양의 장난감은 도저히 없앨 수 없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TV에서 요크셔테리어가 나오면 쪼꼬를 닮았다며 이야기하고 가족과 작별한 다른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저릿하게 조여 온다. 헤어진 지 4년이 되었지만, 쪼꼬의 자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커다랗게 남아있다.




 쪼꼬는 하얀 천에 곱게 싸여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화장됐다. 우리 가족은 쪼꼬를 쉽게 분해된다는 친환경 성분의 항아리에 담아 곱게 묻었다. 쪼꼬의 무덤에는 국화를 심었다. 귀찮은 것을 질색해서 청소도, 빨래도 하지 않는 동생은 여전히 쪼꼬 무덤의 국화에 꼬박꼬박 물을 주고, 잘 있는지 살핀다고 한다. 쪼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가을이 되면, 쪼꼬의 무덤에는 노란 국화가 만개한다. 우리 가족은 그 국화를 보며 쪼꼬가 활짝 웃는 것 같다고 말한다. 쪼꼬맣게 태어나 이름도 쪼꼬였던 우리 집 막내는 제 몸보다 큰 국화다발로 남은 가족들에게 웃음을 준다.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죽음 뒤에 다른 세상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혼자 떠나 심심할 쪼꼬를 다시 만나 후회했던 만큼 더 많이 안아주고 함께 걸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쓰다듬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감정은 유한하다고들 말하지만, 어떤 사랑은 유한하지 않다.

이전 18화 MZ -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