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 안의 주관 세우기 - 내 마음을 주관으로 삼기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by 류겸

1-2. 내 마음을 주관으로 삼기


세상에는 수많은 의견과 판단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또 다른 누구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그 모든 소리를 다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내 삶의 방향은 남의 손에 맡겨지고 맙니다. 그렇기에 끝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입니다.

중심을 세운다는 것은, 외부의 소리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이 듣되, 마지막 선택은 내 마음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이 내 삶의 주관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좋은 소리도, 때로는 쓴소리도 결국은 “내 마음”이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걸러내야 합니다.

주관이 있는 사람은 외부의 소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설령 남들이 비난하더라도, 내 중심이 단단하다면 오히려 담담히 받아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관이 없는 사람은 남의 말에 따라 웃고 울며, 결국 자기 삶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 답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바로 내 마음입니다.


주관이 있다는 것은 외부의 소리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이 듣되, 마지막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의 선택이 결국 인생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이 내 삶의 주관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도를 좇을 뿐, 남의 말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군자의 길이란 주관을 세운 삶이었습니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되, 귀를 닫지 않고 필요한 것을 취하는 태도. 그것이 곧 주관입니다.

주관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의 말에 따라 웃고 울며 살아갑니다. 오늘은 칭찬을 듣고 하늘을 나는 듯하지만, 내일은 비난을 듣고 곧장 무너집니다. 결국 자기 삶을 스스로 이끌 힘을 잃어버립니다. 중심이 선 사람은 듣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말을 곧장 믿지 않습니다. 그 말이 진리에 맞는가, 내 양심에 부합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타인의 의견’은 ‘나의 지혜’로 바뀝니다.

반대로 주관이 없는 사람은 외부의 말이 곧 자신의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말에 감탄하고,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을 바꿉니다. 결국 자기의 기준이 사라져, 세상의 소리에 따라 이리저리 휘청이는 삶이 되고 맙니다.


역사 속에는 이런 예가 적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로마 황제 네로는 주관을 잃은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탁월한 스승 세네카를 두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말과 궁중의 아첨에 쉽게 흔들렸습니다.

세네카는 그에게 “진정한 통치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절제로부터 시작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네로는 권력의 유혹에 사로잡혔고,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점점 자신의 판단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는 예술을 사랑했지만, 비판을 듣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황제께서 연주하는 음악은 신의 소리입니다.”라는 아첨에 도취되어 결국 정치도, 예술도 모두 허영의 장난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세네카는 제자의 타락을 막지 못했고, 끝내 네로의 명령으로 자결을 명받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내 뜻에 따라 죽는다. 그것이 나의 평온이다.” 스승 세네카는 죽음 앞에서도 주관을 잃지 않았고, 제자는 세상의 말에 휩쓸려 결국 자신을 잃었습니다.

이 대비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주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소리에 따라 흘러가지만, 자기 신념을 붙잡은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관이란 외부의 말보다 내 안의 기준을 더 깊이 믿는 힘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남의 말이나 강요에 의해 움직일 때는, 아무리 좋은 결과가 있어도 쉽게 불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인간의 내면에는 세 가지 기본 욕구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 ―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인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 즉 ‘내 마음이 내 삶을 이끈다’는 감정입니다. 이 자율성이 바로 주관의 근본입니다. 주관이 단단할수록 사람은 더 평온하고, 주관이 흔들릴수록 불안해집니다.

내 마음이 삶의 주관이 된다는 것은,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마지막 판단의 권한을 나 스스로에게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결정적 삶의 핵심입니다.


주관이 있는 사람은 외부의 비난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중심이 단단하기에 담담히 받아낼 수 있습니다. 주관 없는 사람은 외부의 소리에 따라 흔들리며, 결국 자기 삶을 잃어버립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장 큰 위험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The Sickness unto Death)』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너무도 조용히 일어나,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가 버린다. 다른 어떤 상실도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또 그는 『군중은 진리가 아니다(The Crowd is Untruth)』라는 글에서 단호히 말했습니다. “군중은 그 개념 자체가 곧 진리가 아니다.” 그의 말은 다수가 옳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입니다. 결국 키에르케고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군중의 소리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말고, 끝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는 뜻입니다. 군중의 말은 언제나 요란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조용한 곳에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자기 마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 답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바로 내 마음입니다.


동양의 고전에서도 같은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용(中庸)』에는 “성(誠)은 하늘의 도요, 성(誠)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은 단순히 부지런하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상태’ ― 즉 내 마음이 내 삶의 주관이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외부의 기대나 세상의 판단에 맞추느라 마음을 속이는 순간, 인간은 자신과 멀어집니다. 결국 중심이란, 자신에게 정직할 용기이기도 합니다.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입니다. 오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그 선택의 순간마다 내 마음이 주관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외부의 소리가 아무리 크더라도, 마지막 판단의 권한을 나 자신에게 두는 것 ― 그것이 바로 자기 결정적 삶이며, 주관이 있는 삶입니다.

주관이 있는 사람은 외부의 비난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의 중심은 바람 앞의 촛불이 아니라, 돌기둥처럼 단단합니다. 반대로 주관이 없는 사람은 외부의 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은 언제나 많은 목소리로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 소리 속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 나 자신에게서 들려오는 그 한마디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선택은 진짜 나의 뜻인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 마음 연습

세상의 말은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칭찬하고, 누군가는 나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뭐라 하든,

내 마음이 내 삶의 주인임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선택이 오롯이 당신의 뜻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그것은 이미 값진 삶의 한 걸음입니다.

남의 기준으로 흔들리지 말고,

조용히 당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 목소리가 당신의 방향이자, 당신의 주관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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