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 안의 주관 세우기 - 귀에 들리는 대로 살지않기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by 류겸

1-3. 귀에 들리는 대로 살지 않기


우리의 귀는 마치 말뚝과 같습니다. 타고 달리는 말(馬)은 어느 말이든지 말뚝에 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뚝은 어떠한 말이라도 걸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말(言)도 귀에 걸립니다. 귀에는 어떠한 말이라도 걸려서 들리는 것입니다. 말뚝과 귀의 차이는 말뚝은 말(馬)에 이끌려가지 않는데, 귀는 말(言)에 들리는 대로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끝없이 많은 소리가 흘러들어옵니다. 좋은 말, 헛된 말, 쓸데없는 말, 때로는 해로운 말까지. 만약 그 모든 소리에 끌려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배가 되고 맙니다. 귀에 들리는 대로 사는 사람은 배가 바람 부는 대로 떠밀려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뭐라 하면 그 말이 전부인 것 같고, 또 다른 누가 다르게 말하면 곧장 흔들립니다. 누군가 “너 잘한다” 하면 금세 들떠 오르고, “그게 뭐 대단하냐”는 말에 바로 꺼져 버립니다.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은 ‘남의 말’이 되어 버립니다.


삶을 주관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귀로 들어오는 것을 곧장 마음에 새기지 말고, 내 안에서 한 번 걸러내야 합니다. 가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주관을 지키는 길입니다.


동양 고전에서도 귀와 말의 힘을 경계했습니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는, “군자는 말에 민첩하지 않고, 행실에 민첩하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에 즉각 반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삶을 증명하라는 뜻이지요.


불교에서는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육근(六根)', 여섯가지 근원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귀는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 수도, 깨끗하게 할 수도 있는 문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귀에 들리는 소리를 곧장 쫓지 말고, 한 번 멈추어 스스로의 안으로 돌려보내는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서양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귀로 들은 말은 사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비슷한 개념을 인지적 여과(cognitive filtering)라고 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전부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뇌는 금세 과부하에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필터를 만들어, 필요한 것만 취하고 불필요한 것은 흘려보냅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소리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에 과도하게 민감하거나,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귀는 열려 있으되, 마음의 문까지 전부 열어둔 상태입니다. 결국 내면의 기준이 사라지고, 세상의 말이 그대로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귀에 들리는 것을 곧장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내 안에 걸름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말은 내 삶의 양식으로 삼고, 헛된 말은 가볍게 흘려보내며, 해로운 말은 마음 깊이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 이 걸름망이 바로 자기 주관입니다.


주관이 선 사람은 같은 말을 들어도 다르게 반응합니다. 칭찬을 들어도 교만하지 않고, 비난을 들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국 귀와 마음 사이에 이 걸름망을 두는 것이 곧 중심을 지키는 길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젊은 시절에는 그리 강단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살이에 능했고, 이익을 따지는 데 민첩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친구 포숙아(鮑叔牙)와 함께 장사를 하다가 이익을 더 가져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포숙아는 그를 탓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중은 가난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능이 있고, 세상을 다스릴 그릇을 지녔다.”


훗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주군을 섬겼습니다. 관중은 제(齊)나라 공자(公子) 규(糾)를, 포숙아는 소공(小公)의 이복동생인 공자 소백(小白)을 보좌했습니다.


두 세력이 다투는 와중에 관중은 소백을 향해 화살을 쏘았고, 소백은 그 화살을 어깨에 맞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소백이 승리하여 제나라의 군주, 즉 환공(桓公)이 되었을 때, 포숙아는 관중을 처형하라는 신하들의 권고 대신 이렇게 건의했습니다.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관중을 등용해야 합니다. 그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때부터 관중은 과거의 모든 사사로움을 버리고,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내부로는 제도를 정비하고, 외부로는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회복시키며 ‘패자(覇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의 치세 아래 제나라는 풍요로웠고, 백성은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정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재상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모함과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관중은 옛날 주군에게 활을 쏘던 자다.”

“이익을 좇던 상인 출신이다.”

“권세를 탐하는 인물이다.”


이런 말들이 궁중을 떠돌았지만, 그는 일절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 하루가 어지럽다. 그러나 내 뜻에 귀 기울이면 천하가 편안하다.”


그는 외부의 소리보다 자기 안의 뜻, 즉 중심의 목소리를 따랐습니다. 그 중심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백성의 안녕’이라는 원대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부흥을 위해 필요하다면 개인의 명예쯤은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세운 법과 제도, ‘관자(管子)’로 이어진 정치철학은 그 중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관중은 제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었고, 제환공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첫 번째 패자가 되었습니다.


관중의 생애는 말의 소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비난에 대응하지 않았고, 헛된 명성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말이 요란할수록 그는 자신의 뜻을 더 깊이 다듬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아니라 ‘나라가 어떻게 서느냐’였습니다. 그 중심이 있었기에 그는 세속의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천하의 질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귀를 막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소리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끝내 자기 주관으로 돌아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귀는 세상의 문입니다. 그러나 그 문이 곧장 마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귀는 열려 있어야 하지만, 마음은 지켜야 합니다. 귀로는 세상을 듣되, 마음으로는 내 삶의 길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귀에 들리는 대로 살지 않는 길입니다.


♣ 마음 연습

세상에는 끝없이 말이 흘러옵니다.

그 말들은 우리를 흔들고, 때로는 우리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모든 소리를 다 품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들려오는 말 앞에서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그 말이 나를 세우는 말인지, 흔드는 말인지

조용히 가려보십시오.

귀는 세상과 이어져 있지만, 마음은 나를 지키는 자리입니다.

귀로 듣되, 마음으로는 중심을 지키는 것 ―

그것이 귀에 들리는 대로 살지 않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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