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닿는 순간들1 - 연인관계
아침의 사무실은 여느 날처럼 분주했다.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 키보드가 규칙적으로 두드려지는 타건음, 전화벨이 불시에 울리다 멎는 리듬. 그 모든 소리가 하나의 기계적 배경음처럼 뒤섞여 있었다. 에어컨 바람은 서류 가장자리를 흔들었고, 책상 위 머그컵에서는 따끈한 커피 향이 은은히 퍼졌다.
그러나 오늘의 공기에는 어쩐지 낯선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민호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지현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했다. 평소라면 활짝 웃으며 "좋은 아침!"을 외쳤을 그가, 오늘은 낮은 목소리로 인사만 툭 던졌다. 어깨를 곧게 펴고 서 있던 자세는 여전했으나, 눈가의 빛은 희미하게 꺼져 있었다. 늘 농담을 던지던 그가 침묵으로 자리를 채우자, 사무실의 공기가 순간 빳빳하게 굳었다.
그가 커피를 내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사무실의 작은 파문이 일었다.
“민호 씨, 청첩장은 언제 나와요?”
누군가 가볍게 던진 질문에 민호는 한순간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결혼, 안 하게 됐어.”
찰나의 정적. 키보드 소리와 전화벨조차 뚝 끊긴 듯했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무슨 일이 있었어…?”
민호는 커피잔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가족끼리 너무 달랐어. 처음엔 서로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을 앞두니까 집안 분위기, 생활 방식, 기대하는 것들이 다 다른 거야. 작은 차이가 쌓이니까 결국 버티질 못했지.”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커피잔을 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동료들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게 사랑했는데….”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민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덧붙였다.
“사랑은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랑이 모든 걸 이겨낼 만큼 단단하지는 못했던 거야. 오히려 결혼 전에 알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몰라.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보단 낫잖아.”
말은 짧았지만, 오래 고민한 흔적이 묻어났다.
지현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오래된 장면들이 하나둘 불려 나왔다.
퇴근길, 여름비가 후두둑 내리던 저녁. 습기가 잔뜩 밴 공기 속에서 아스팔트에서는 특유의 젖은 냄새가 피어올랐다. 지현은 그와 함께 우산을 나란히 쓰고 걸으며 말했다.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 그냥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 화면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응, 알았어요. 근데 잠깐만. 이거 메시지 좀 보내야 돼서.”
엄지손가락이 불빛 속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지현은 마치 자신의 말이 빗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는 요란했지만, 마음속에는 묘한 고요와 씁쓸함이 번졌다.
주말 오후, 카페 창가. 볶은 원두 향이 진하게 감돌고, 창밖에는 느릿한 햇살이 가게 유리창에 기울어져 있었다. 지현은 따뜻한 라떼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우리 다음 달쯤 여행 가는 거 어때요? 바다 보러 가고 싶어요.”
그는 잠시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기울였다.
“좋지요. 근데 그 주에 회사 워크숍이 있을 수도 있어서… 확정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지현의 마음속 어딘가가 싸늘하게 식었다. 창밖에 비친 노을빛은 여전히 따스했으나, 그녀에게는 커피가 갑자기 식은 듯 느껴졌다.
민호의 목소리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했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더라. 다른 게 다 받쳐주지 않으면… 결국 흔들리게 돼.”
창밖에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과 섞이며, 그 빗물은 은빛 실선처럼 부서졌다.
지현은 모니터를 바라보았지만, 마음은 이미 먼 곳으로 흘러가 있었다.
‘우리도 과연 이 차이를 버텨낼 수 있을까…. 사랑만으로 부족하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 관계를 지켜야 할까.’
민호의 담담한 고백은 소음 속에 스며 사라졌지만, 그 잔향은 오래도록 지현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았다.
“사랑은 시작의 힘이 되지만, 함께 살아내는 일에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
□ 마음 궁합 □
궁합은 감정의 열정보다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맞추어 가는가에 달려 있다.
사랑만으로 관계를 지탱할 수 없을 때,
서로 다른 현실을 견디는 힘이 궁합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