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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09. 2023

같은 공간에 얽힌 시선들

휴스꾸 8월 첫 번째 특집 인터뷰 - 셀프 인터뷰 (1)



    

    *이번 특집은 <같은 공간에 얽힌 시선들>이라는 주제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망이 학교에서 보는 전망과 어딘가 닮은 공간인 ‘낙산’에서 마주한 다양한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셀프 인터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휴스꾸 구성원 각각의 개성이 드러난 짧은 글들과 사진을 따라가 보며 가벼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들보다 세 배를 산다는 것

칠칠ㅣ지난달 타계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족은 그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그래도 남들보다 세 배는 살았어." 향년 71세의 나이로 마지막까지 암과 투병하며 산 그는 남들보다 더 조밀한 70년을 살았다는 의미예요. 그는 사는 내내 자신의 삶의 곳곳을 풍족하게 채웠죠.


    그나저나 낙산에서 나는 왜 류이치 사카모토를 떠올릴까요? 그가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던 음악가여서 그런 걸까요. 산에 간다니까 푸릇푸릇함이 먼저 떠오르고, 과거 들은 플레이리스트 중에 그의 뒷모습과 녹음이 잘 어우러진 영상이 떠올라서 그런 걸까요. 어쩌면 내 마음속에 그처럼 짙은 녹색이 잘 어울리는 음악가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 그의 삶 이곳저곳은 음악 단 한 가지로 다채롭게 짜여있겠죠. 그 짜임의 결실이 녹음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난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해요. 당장 어제 먹은 반찬도 마찬가지예요. 치킨텐더, 부추무침, 계란찜, 콩나물무침, 콩나물국을 한 번에 먹으며 유튜브를 봤죠. 무엇 하나 제대로 느낀 게 뭘까요? 내가 먹고 본 것 중에서 내 안에 단단히 쌓이고, 뿌리 박힌 건 뭘까요? 아이러니한 건, 어제 본 유튜브 영상의 주인공은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어요. 밑반찬과 밥, 국을 한 입 한 입 정갈하고 제 입맛에 맞게 조합하며 정말로 ‘맛을 느끼죠.’ 멀티태스킹이 뇌를 파괴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나는 한 번에 하나만, 적어도 두 개만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매일 무언가를 하고, 먹는데 하루 끝에 어느 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아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하루를 무얼로 기억할 건가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대본을 쓸 때 인터넷이 끊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대요.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비슷하게 쓰고 있죠.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은 아이패드로, 화면을 보다, 눈앞 하늘을 보다, 매미 소리를 듣다, 키보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또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네요.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지칠 때가 있나요?


    오타쿠 재난 문자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장르가 논란에 휩싸일 때 귀신같이 조회수가 올라가요. 대부분은 그 대상이나 장르를 좋아하는 일을 멈추는데(이걸 탈퇴라고 하죠), 탈퇴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그것만 안 했어도 나는 너를 오래오래 좋아했을 텐데, 같은 마음이 당연히 들겠죠. 재난 문자는 그런 마음을 담은 문장을 비유한 개념이에요. 그중 세 번째는 이거예요.


    ‘나는 너를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어 협조 좀 해’


    사람마다 이 문장 속 '너'가 다를 거예요. 내겐 항상 '너'가 '나'였던 것 같아요. 아니, '너'의 범위가 타인이라면 항상 '나'였어요. 확실해요. 난 한 번도 나를 타인보다 덜 사랑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우선이었고, 나를 사랑하느라 다른 사람을 향할 뻔했던 사랑을 거둬들이기도 했어요.


    홀로 낙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많은 사람을 봤어요. 대개는 혼자였죠. 그리고 궁금해졌어요. '다들 혼자 맞겠지?'


    난 진짜 혼자 왔거든요. 그냥 낙산을 나 좋을 만큼 즐기고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에요. 떠날 때는 내가 낙산을 다 즐겼을 때죠. 그럼, 다 즐겼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이전에 산이나 그 비슷한 곳을 다녀본 경험에 근거해 알겠죠. 그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기억해야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또 그 비슷한 경험을 쌓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야 해요. 자, 여긴 다른 산인데 이러이러한 게 특징이야. 대충 여기까지 보면 넌 만족하더라. 다음에 비슷한 곳 가면 기억하자…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가끔은 지치긴 해요. 좋아하는 걸 빠짐없이 기억하고 마주할 때마다 득달같이 머리에서 끄집어내서 ‘너 이거 이거 좋아했잖아! 당장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도록 해!’라고 무의식에 행동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좋아함의 기준이 변하잖아요. 그럴 때 나 이제 이거 예전만큼 안 좋아하는데…? 하면 당황스럽죠. 그럼 난 이제 뭘 좋아하는 거지? 새롭게 찾고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해요. 그거 진짜 피곤한 일이거든요.


    이때 필요한 건 나 자신과의 적절한 협조예요. 모든 주체가 '나'잖아요. 기대하고, 좋아하고, 예상하고, 반응하고, 살펴보고, 챙겨주고, 타협하는 모든 행위의 주체요. 생각보다 덜 좋아해도 그럴 수 있지. 더 좋아하면 오히려 좋아! 등등, 너그러운 마음씨가 필요해요.


    그럼 이제 이 너그러운 마음씨는 어떻게 싹 틔우나. 큰 요령이 필요할까요? 지금 걷는 낙산을 나 좋아할 만큼 즐기고, 다음에 더 즐기면 좋겠다, 라며 후련하게 하산하면 되는 거죠.


    한 발자국이 만드는 나 자신, 오래오래 사랑하자구요.





글, 사진ㅣ인터뷰어 칠칠








어떤 인터뷰어가 되고 싶나요?

해수ㅣ오랫동안 한자리에 있는 것들은 모든 걸 듣고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낙산의 성곽처럼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해요. 친구와 걸으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한눈에 펼쳐지는 경치를 보며 좋다고 속삭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다짐하기도 하죠. 낙산은 이런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런 사람이고 싶은 거 같아요.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내 이야기가 오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어요.


    

    필연적으로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돼요. 이야기한다는 건 보통 듣는 상대가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좋은 질문을 하는 것도 인터뷰어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지만, 듣기가 대화의 중심이라는 걸 휴스꾸를 통해 느끼고 있어요.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인터뷰이에게는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겉만 맴도는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 서로 대화에 집중하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게 느껴지면 좀 더 깊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가장 정확한 언어를 찾아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요.


    

    들음으로써 말할 수 있다는 걸 느껴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이야기가 계속 듣고 싶다는 메시지가, 발화하지 않아도 전해졌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어로서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 제가 말하는 입장일 때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대화는 둘러싼 공간의 밀도나 대화의 농도를 다르게 해요. 딱 기분 좋을 만큼 바꿔놓는달까요. 너무나 귀한 순간이에요. 귀하고 소중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다만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요. 생각하면 아득할 만큼 큰 모습이지만 잊지 않고 자꾸자꾸 이런 방향으로 다듬어 나가고 싶어요.





글, 사진ㅣ인터뷰어 해수








장소의 매력이란?


경청ㅣ사람과 달리 장소는 불변한다고 생각해요. 세월이 지나 장소의 겉모습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닌 경험과 기억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장소 특유의 분위기와 특징도 변하지 않고 남으니까요. 장소를 거쳐가고 그곳에서 나름대로의 경험을 쌓는 사람들은 많고 다양합니다. 그러나 장소는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 변화무쌍하지 않아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시간의 빠른 흐름 속에서 날 구성하는 요소들이 변화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같은 기대를 품고 같은 장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이국적인 장소란?

    이국적 감흥은 보는 이의 시선 속에서 발생합니다. 얼마 전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후쿠오카 소도시들을 탐험하며 눈앞에 펼쳐진 색다른 자연경관을 만끽했습니다. 도시로 돌아와서는 텐진의 나카스 강 주변 유흥거리를 걸었어요. 술집과 포차들 사이를 걷다 보니 여기가 과연 신촌 거리인지 텐진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소의 이국적인 감흥과 색다름에 매료되는 것은 보는 이의 시선이 결정한다는 일임을 알게 되었어요. 여행을 다녀와서는 내가 사는 동네와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전보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지를 작성하기 위해 얼마 전, 낙산공원을 방문했어요. 공원 출입구에 위치한 정자에 앉아 이곳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상상했습니다. 언덕길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외국인들이 이화동 벽화마을로 가는 길을 물어왔고, 길을 검색했다가 이화동 곳곳에 그려져 있던 알록달록한 벽화는 현재 거의 모두 지워진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나에겐 익숙하고 단조로운 풍경도 관광객들의 시선 속에서는 이색 장소가 됩니다. 같은 장소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을 가져요. 사라져 가는 장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저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더 열린 시선으로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습니다.





글, 사진ㅣ인터뷰어 경청



휴스꾸 8월 첫 번째 특집 인터뷰 : 같은 공간에 얽힌 시선들 (1)

2023.08. 휴스꾸 운영진 칠칠, 해수,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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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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