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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02. 2023

궤적을 아는 사람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지은



* 한만호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무엇이 한만호라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나요?


    하나로 정리하기 힘든 거 같아요. 입시를 할 때는 목표가 있어서 했다기보다는 남들보다 잘하고 싶었어요. 당장 옆에 있는 애보다 잘하고 싶었고, 쟤가 나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지금 정도의 등수를 유지했으면 좋겠고. 그런 것 때문에 했는데 대학교 와서는 진짜 내가 옷을 잘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한 것도 있고, 그냥 재밌어서 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상황마다 다른 거 같기도 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거나 사람들이 괜찮다는 곳은 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요즘은 저만의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그래서 좋다고 하든 별로라고 하든 다양한 공간을 가보기도 하고, 뭘 사거나 배우러 다니는 거 같아요.





 

지금 본인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면?


    불확실. 그런데 이건 지금뿐만 아니라 항상 이럴 거 같아요. 아직 확실하게 이뤄낸 것도 없고, 확실한 걸 바라보면서 살지도 않았던 거 같거든요. 사람들이 계속 물어봐요. 앞으로 뭐 할 거냐, 요즘 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바쁘냐, 이런 걸 많이 물어보는데 딱히 답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지금 하는 것들이 어떻게 되겠다, 확실해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미래에 꼭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다기보다는, 지금은 불확실해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커요. 어떻게 끝맺음이 지어질지 모르는 일만 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해서 불확실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불확실해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항상 불안한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고민을 엄청 많이 하는 성격이었어요. 지금도 많이 하긴 하지만, 오히려 불확실한 일은 큰 고민하지 않고 실행하게 되는 거 같아요. 확실한 건 오히려 견디기 힘들거나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건 저도 모르니까요.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말자, 라는 생각으로 그만큼 더 기대하면서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취향의 차원으로


    제가 되게 다양한 걸 자주 보고, 해봐요. 뭐 좋다면 바로 가서 이것저것 보고 듣고,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또, SNS를 하다 보면 많은 걸 접하잖아요. 정보도 엄청 빠르게 얻을 수 있고요. 그럼 조금만 마음에 들면 정보를 얻고 잠깐 좋아했다가, 싫어지면 그냥 안 보면 돼요. 그런 식으로 사랑에 빨리 빠지고, 빨리 빠져나오는데 SNS를 자주 하다 보니까 그 텀이 짧아요. 예를 들어 어떤 배우를 좋아하게 됐어요. 근데 그 배우가 옷을 잘 입으면 그 옷이 뭔지, 브랜드가 궁금해요. 그러다 그 브랜드도 좋아하게 되고, 그 브랜드의 행사에 어떤 가수가 나오면 그 가수도 한번 들어보고. 이런 식으로 이어지면서 좋아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계속 그렇게만 하다 보니까 누군가 저한테 ‘너 뭐 좋아해?’라고 물어봤을 때, 딱 대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나 이거 진짜 좋아해, 라고 말하기 어렵고, 그걸 심지어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겉핥기 정도로만 아는 것 같고.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제가 임진모 씨처럼 막 글 쓰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요. 알 수 있는 선까지 알되, 그냥 가볍게 좋아하는 정도인 거지. 그래도 예전에는 얕게라도 다양한 분야를 알고, 좋아하는 게 경쟁력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한 분야 한 분야 딥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이게 과연 경쟁력이 될까, 하는 생각에 이제 내가 확고하게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런 것들을 단단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만의 취향을 찾아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잡혀가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세계를 향해


    중학생 때, 아이린이라는 모델을 좋아하면서 모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카페를 들어갔는데 거기는 모델들이 이번 시즌에 몇 개의 쇼나 커버, 캠페인을 했는지 같은 걸 다 정리해 둬요. 그럼 저는 그 정보를 하나씩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모델이 어떤 쇼에 서나 확인도 하고 싶고, 그 쇼 디자이너는 어떤 모델을 쓰나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때 옷에도 관심이 많아졌지만 비즈니스 자체에 흥미가 생겼어요.


    원래는 사회교사가 꿈이었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제가 사회교사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2학년 때, 패션이 너무 좋은 거죠. 패션쇼뿐만 아니라 쇼와 연계된 세일즈도 흥미로웠고 캡슐 컬렉션이 나오는 거나 이번에 디렉터가 누가 되고 어떤 회사가 인수되는지, 이런 게 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부모님이 사실 별로 신경을 안 쓰셨어요. 대신 분야를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패션 비즈니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찾아봤던 것 같아요. <Vogue Runway>에는 사진이랑 리뷰 정도만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분석적인 이야기가 보고 싶었어요. 거기 있는 건 거의 다 쇼 노트 기반으로 작성이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날카로운 시선이나, 비즈니스적인 채널에서 다룬 게 보고 싶어서 찾아봤죠. <Business of Fashion>이라는 해외 저널에서 관심 있는 주제들을 스크랩하면서 많이 봤어요. Vanessa Friedman, Robin Givhan, 아니면 Cathy Horyn 같은 사람들이 날카롭게 기사를 써요. 그런 걸 고등학교 때 찾아보면서 대학도 의상학과로 오게 됐어요.




 


유연하되 흔들리지 않도록


    100이 되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감성적이면서도 크게 동요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항상 50이나, 그 선에서 유지하려고 해요. 너무 벅차오르거나 센티해지면 사람이 과해 보이더라고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작업물을 내거나 글을 쓸 때도 감정에 휘둘려서 쓰면 별로 예쁘지 않아요. 그렇다고 너무 무미건조하게 살면 분명히 사람의 감정이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런 면을 놓치게 되잖아요. 지금 제가 하는 분야를 그렇게 대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 중간을 잘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전 행복해요, 인터뷰하는 지금도 행복하고. 그런데 그 행복을 너무 과하게 표현하지는 않으려고 하는 거죠. 분명히 감정을 크게 표현해서 좋은 사람이 있겠지만 저 스스로 그런 사람이 아닌 거 같고, 체력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어요.


    차분해진 거 같아요. 싫지는 않아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이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에 있어서 무언가를 계속해 나갈 때 안정되지 않으면 빨리 그만두게 되거든요. 사람 간의 관계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사람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너무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면 관계가 빨리 끊길 거 같아요. 그렇구나, 그런 거지, 이렇게 말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느껴지고 저도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정말 못 넘어갈 부분이 있으면 말을 하지만요.






채워지는 순간


    러닝할 때, 숨차게 뛰어서 목표하는 곳에 딱 갔을 때.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아요. 고등학생 때는 힘들면 가끔 밤에 광화문까지 걸어가는 걸 좋아했어요. 집이 홍제라 부암동만 넘어가면 돼서 가깝거든요. 강북에는 생각보다 빌딩 높은 데가 많이 없어요. 대부분 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광화문에 오면 빌딩들이 쫙 펼쳐져 있잖아요. 특히 광화문 앞에서 광장을 딱 바라봤을 때, 빌딩들이 높게 세워져 있는 그 모습을 보거나 씨네큐브랑 LG빌딩이 있는 곳부터 광화문까지 쭉 걷다가 버스 타고 집에 갈 때, 그때 살아있다,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지은

2023.07.14 만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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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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