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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16. 2023

같은 공간에 얽힌 시선들

휴스꾸 8월 두 번째 특집 인터뷰 - 셀프 인터뷰 (2)


*이번 특집은 <같은 공간에 얽힌 시선들> 이라는 주제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망이 학교에서 보는 전망과 어딘가 닮은 공간인 ‘낙산’에서 마주한 다양한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셀프 인터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휴스꾸 구성원 각각의 개성이 드러난 짧은 글들과 사진을 따라가 보며 가벼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의 하루에서 마주한 것은?


졔졔 | 어렸을 때 유독 듣기 싫었던 말이 있었어요. ‘취미가 뭐야?’라는 질문이요. 인사와 비슷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그 무엇도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얼렁뚱땅 말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죠. 물론 지금도 특별한 것은 없지만.


며칠 전 낙산에 갔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살면서 두 번째 방문이더군요. 낙산공원과 낙산정을 지나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주민분들이 밖에 나와 앉아 계셨어요. 내밀한 공간에 이방인이 들어가 있는 기분으로, 쭈뼛쭈뼛 그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저에게 말을 거셨어요. 평범한 안부 인사에도 간만에 수다쟁이가 된 것마냥 신나게 답했죠. 그때 문득 느꼈어요. 별스럽지 않은 일들이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보잘 것 없던 일들도 되돌아 생각해 보면 가끔 피식하고 웃게 만들어 주듯이 이제는 그것들을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예전에 어떤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젊은 시절 유학 준비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낙산에 갔었다고. 지금도 습관이 되어 종종 간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흘려들었는데, 그분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걸까요? 보통의 하루가 준 특별한 위로를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자주는 아니지만 낙산에 가서 느껴보려고요.


일상비일상의 틈에서 마주할 소소함을 위해.






글, 사진 | 인터뷰어 졔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지은 | 낙산공원에 가고 있었어요. 이렇게 혼자서 낙산공원에 올라온 건 처음이었네요. 매번 그렇듯 계단을 끝없이 오르면서는 올라오기로 마음먹었던 걸 후회하고, 시원한 물을 가져오지 않은 걸 아쉬워하고, 꼭대기에서 마주할 풍경을 기대했죠. 최근 몇 년 사이 계단을 오르지 못하게 된 우리 개를 품에 안은 채라 몸이 배로 무겁고 뜨끈합니다. 팔다리에 힘을 꼭 주고 발을 뻗으면서는 같은 자리에 쌓인 몇 개의 기억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사그라지길 반복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파란색 여름 원피스, 한겨울에 사먹은 얼음물, 동경했던 풍경들, 가져야겠다 다짐했던 것들. 어두운 색의 나무들과 띄엄띄엄 켜진 가로등 사이로 지금은 멀어지거나 옅어졌거나, 여전히 소중하거나 또는 익숙해진 것들을 뿌옇게 돌아봤어요.


    나서서 운동을 하는 타입은 아니라 낙산공원 근처에 살면서도 여길 자주 올라와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은 꼭 왔던 것 같아요. 처음 낙산공원에 왔던 건 엄마, 아빠와 서울 여행을 왔던 열일곱 즈음의 기억이에요. 그땐 수도권의 대학교에 합격해서 서울에서 살게 되는 게 내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이었어요. 몇 년 후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못 하고 그땐 그저 이 도시가 신기했었죠. 그 다음은 대학교에 합격하고 동대문맨숀에서 일곱 명의 언니들과 살던 스무 살. 당시 사귀던 사람과 낙산공원을 올라서 손을 잡고 노을지는 혜화를 내려다보며 어른이 된 기분에 스스로가 좀 기특했던 것도 같고요. 일몰 시각에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정된 가로등 아래 사랑하는 친구들과 있다 때마침 켜지는 가로등이 마법같다며 행복해하던 스물 하나. 그 다음 해에는 야외 수업을 제안한 드로잉 교수님을 따라 아침 9시부터 낙산을 올라와놓곤 정자에서 잠만 푸지게 잤던 기억. 한참 더 어렸고 이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몰랐고 그래서 용감했던 나를 생각하자 늙은 개와 어두운 밤에 낙산공원을 걷는 이 일이 너무나 소중해졌어요. 그리고 방금 낙산공원까지 올라오며 지났던, 흉악한 오르막길에 위치한 어느 공동주택의 화단 팻말이 떠올랐습니다.

 

‘화단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습니다. 부디 망치지 말아주세요.’

 

    나는 뭘 정성스레 가꾸어 왔지? 여태껏 내가 나를 너무 망쳐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사이 낙산공원은 여전히도 변해 있어요. 여기엔 몇 년 동안 그대로인 카페가, 여전한 벽화와 성곽이 있고, 여기엔 새로 생긴 난해한 장식물도 막 문을 연 음식점도, 부서진 계단도 있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여전히 반복하게 되는 말들이 있고 여전하게 변한 것들이 있죠. 내가 억지로 끌어안은 것도, 스스로 놓았거나 의도치 않게 놓친 것도 있고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정성스레 대하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다시 개를 안고 계단을 오르는 나로 돌아와서, 나는 이 위에 뭐가 있을지 알면서도 여길 죽어라 올라가고 있어요. 마지막 계단을 밟고 서면 가까운 화단이 가장 먼저 보이겠죠. 여느 공원들과 다를 바 없이 벤치도 있을 테고, 얇은 모래 바닥을 밟고 앞으로 앞으로 걷는 사람들도 몇 있겠죠. 저 건너에서는 낮은 성곽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종로를 제법 멀리까지 전망할 수 있을 거예요. 성곽 앞에 서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겠죠. 나는 이걸 다 알면서도 땀을 내며 계단을 오르고 있어요. 올라오기로 결심한 마음을 후회하면서도 오르고 있어요. 왔던 길을 뒤돌아 내려가야 함을 알면서도 오르고 있고요. 높은 곳에서 개와 걷고 싶으니까, 다시 서울을 내려다보고 싶으니까.


    끝에 뭐가 있을지 알면서도 끝까지 내딛는 마음을 평소에도 지니고 살면 좋을 텐데. 더 이기적인 바람으로는 내일, 다음 달, 혹은 내년과 내후년, 몇십 년 뒤의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미리 알게 된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고 나는 뿌연 곳을 헤매고 걷다가 또 가끔은 달리기도 하며 한 번씩 뒤나 돌아보겠죠. 결국은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어봤죠? 모르겠어요. 그래도 될 거예요.




글, 사진 | 포토 지은








낙산에 담긴 추억이 있나요?


랑 | 낙산으로 오르는 길에, 간판 없는 카페가 있었어요. 컵홀더에는 커다란 눈동자 그림과 함께 ‘동공 카페’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중학생 때니까 적어도 7년 전 일이죠. 그때의 저한테 대학로는 아주 특별했어요. 공연을 보러 서울에 올 때만 잠시 머무는 장소였거든요.



하루는 마침 대학로에 왔으니 낙산 공원도 가보자 하고 올랐는데, 오르막이 끝이 없는 거예요. 그때 낙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동공 카페를 처음 만났어요. 안쪽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고, 그 뒤로 뚫린 창에는 남산을 담고 있던 작은 카페였는데 사장님이 무척 다정하셨어요. 그 이후로 낙산에 가면 꼭 그 카페에 들렀어요. 작은 법칙이 생긴 거죠.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음료를 마셨어요. 그중에서도 유독 자몽주스가 기억에 남아요. 가끔 모든 게 선명한 날이 있잖아요. 자몽청을 어제 새로 담갔다면서 추천하시던 사장님, 맞은편 파스타집에는 사람 넷이 앉아 있었고, 차도를 끼고 걷다가 만난 하늘로 향하는 사람과 강아지 동상.


얼음이 잘그락 부딪히던 소리나, 자몽이 남아서 으깨어 마셨던 것 같이 사소한 것들은 선명한데 막상 나눴던 대화는 흐려요. 사장님의 음성이나, 그날 본 공연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어요. 대학에 와서 다시 그 카페를 찾았는데, 어느새 다른 가게로 바뀌었더라고요. 다른 가게가 들어온지는 한참 되었을 텐데도 묘하게 막연한 기분이었어요. 돌이켜보면 항상 아주 일상적인 일이 그리운 것 같아요.




글, 사진 | 인터뷰어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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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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