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경청 / 포토그래퍼 구름, 달래
*오뎅바 사장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오뎅바를 영업하신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요?
2006년 3월 31일부터 영업했어요. 이 자리가 우리 집에서도 가까웠고 상권 조사하다 보니 이 집이 목도 좋더라고요. 또 어른들 상대하는 술집은 무서워서 못 하겠는데, 그때 딱 마침 이 집이 비어 있었고 또 권리금도 없었어요.
내가 이거 열 때는 오뎅바가 붐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간판을 새로 고치면 또 돈이 들어가니까 그대로 쓰고, 메뉴는 더 다양하게 추가했죠. 저희 가게 메인은 어묵이고, 사이드로는 계란말이, 또 생선구이가 대표예요. 여기 주변 다른 사장님들도 우리 집에 오셔서 많이들 드세요. 제가 늦게까지 영업하니까 일찍 문 닫는 사장님들이 이 집에 오시는 거지.
2006년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직장생활을 했었죠. 남들처럼 월급 받고, 남들 쉴 때 나도 쉬고, 그랬어요. 그때는 주 6일 근무였으니까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하고. 지금은 자영업이다 보니 쉴 날이 시험 기간에 한 번, 아니면 방학에 한 번,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한 번이에요. 거의 휴무가 없죠. 쉬어도 여기 나와서 쉬는 게 마음 편하더라고요.
학교 졸업하고 서울 와서 직장 생활했으니까. 1982년 프로야구 생긴 해에 올라왔어요. 40년도 넘었지. 어차피 그때는 여자들은 결혼할 때쯤 거의 다 직장을 그만두는 분위기였어요. 지금은 직장인 시절보다 큰돈은 못 벌어도 마음은 편하죠. 어른들 상대하면 엄청 스트레스받거든요. 근데 학생들은 어떨 때 보면 자식 같고, 편해요.
술집 일을 시작할 때 무섭진 않으셨어요?
저희 가게는 젊은 사람들 상대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초반에는 좀 난폭한 학생들이 많았던 거 같아. 같은 테이블에서 싸우기도 하고 가게 문도 부서지고, 밖에서 돌 던지고 싸우고. 음식이 맛이 있냐 없느냐를 평가받기도 하는 점이 힘든 거지, 이제는 학생들이 순해서 일할 땐 힘든 거 없어요. 학생들이 다 알아서 갖다 먹고 난 나중에 계산할 때 확인만 하면 되니까.
근데 갈수록 젊은 사람들이 술을 덜 먹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테이블 회전도 여러 번 됐는데, 지금은 딱 한 번씩 오고 끝이에요. 10시나 11시, 막차 시간 되면 다들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뒤로는 손님들이 잘 안 들어오지. 옛날에는 전화 와서 자리 있냐 물어보고, 단체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열기가 많이 죽었어요.
옛날에는 학생들이 1, 2, 3차로 술집을 옮겨 다녔잖아. 요즘은 막차 타는 학생들이 더 많고, 그런 게 없는 것 같아. 요즘은 노래방도 잘 안 가죠? 옛날에는 새벽 4시에도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랬어. 지금은 11시 넘으면 조용해져서 젊은 거리 같지 않아요.
학생들이면 술 먹고 많이들 실수하잖아요.
맞아요. 특히 신학기 3월에. 테이블 새로 바꾼 지 며칠 안 됐는데 여기다가 다 토해놓고 음식 냄비에다 다 토해요. 그러면 그릇들 다 버려야 해요. 그게 학생들 오는 술집의 고충이라면 고충이죠.
만약 2006년으로 돌아가신다면 다시 오뎅바를 차리실 것 같나요?
많이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해볼 것 같아. 여기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매일 보니까, 내가 공부를 많이 못 했던 게 한이 돼요. 나는 선생님이 하고 싶었어요. 제가 한문을 잘 알거든요. 그런 것들을 잠시 잊었었는데, 학교 앞에서 이렇게 보니까 또 떠오르네요.
영업 면에서 기대하시는 것, 아니면 사적으로 기대하시는 미래에 대해 들려주세요.
저한테는 이 영업이 사적인 거예요. 내가 나이도 있고, 경기도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고 해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내가 하고 싶어도 경기가 안 좋아져서 실적이 없으면 못 하는 거니까, 경기가 빨리 회복됐으면 해요.
코로나 때도 성균관대 학생들이 많이 오던가요?
저희는 거의 성대생 위주로 영업하긴 하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영업시간이 제한되니까 그땐 거의 놀다 가는 날이 많았어요. 근데 그렇다고 또 문을 닫을 수는 없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가겟세를 밀려본 적이 없었고 항상 미리 입금하곤 했었는데, 코로나 때는 가겟세를 밀렸어요. 그때는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주인은 1원도 안 깎아주고, 무서웠죠.
근데 그렇게 힘들 때, 어떤 졸업생이 나한테 힘내시라고 돈을 보내줬어요. 또 ‘비즈 볼’ 학생들 중 한 명인데, 오랜만에 가게에 와서는 나한테 뭐가 드시고 싶냐 그러길래, 피자 먹고 싶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어떻게 해서든 피자 구해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시간도 11시가 넘어서 근처에 연 피자 가게도 없었을 텐데 피자를 사 온 거야.
저번에 생일 때도 축하 연락을 받았어요. 다음번에 갈 때 피자 또 사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너무 기억에 남는데, 학생들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게 고마웠죠. 그리고 또 2009년, 기아가 우승한 해에 학생들과 야구장에 놀러 간 일도 기억에 남네요.
학생들이랑 친해지는 이모님의 비결이 뭔가요?
저도 다른 곳이면 애들 못 따라가죠. 근데 제가 야구를 좀 알아서 학생들과 소통이 돼요. 여기 이 트로피는 성대 농구 동아리에서 놓고 간 거예요. ‘프렌즈’라고. 중동은 ‘농성회’고, 이거는 소모임 농구 동아리예요. 근데 난 실력은 오히려 여기 ‘프렌즈’가 더 나은 거 같아. (웃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여기서 오래 장사하다 보니까 학교와 학생들에 대해 잘 알죠.
영업하실 때 다잡으시는 마음가짐이 있으세요?
제가 성대 앞에서 영업하니까, 학생들 모두 잘 돼서 오면 좋죠. 그리고 저와 계속 연이 이어지는 것도 좋고. 결혼식 할 때 연락이 오는 학생들도 있어요. 특히 ‘비즈 볼’. 내가 ‘비즈 볼’ 결혼식에 많이 갔지. 졸업생들이 우리 가게를 많이 오는데, 어떤 학생들은 여기 와서 청첩장을 돌리거든요.
엊그제도 중국 주재원으로 간 졸업생이 한국에 와서 같이 밥을 먹었어요. 또 다른 학생은 3월 23일 결혼식 한다고 얘기해 줘서 그때 또 가려고요. 어떨 때는 학생들한테 고마워서 눈물도 나고 그래요. 나를 서울 엄마라고 불러주는 애들도 많거든요. 미술학과 졸업 전시할 때는 학교에도 갔었어요.
오뎅바가 학생들한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요?
집처럼 편안한 곳이요. 와서 마음 편하게 한 잔이라도 할 수 있는 곳. 물론 그렇게 되려면 내가 잘해야 되겠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성대 앞에 잊히지 않는 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 주면 좋겠네요.
옛날에는 교육학과 교수님들도 많이 왔거든요. 그때는 시간강사였던 분들이 지금은 다 교수님이 돼서 다른 학교로 갔는데, 지금까지도 저와 연락이 닿아요. 그분들은 이 동네 오면 우리 가게 꼭 오더라고요. 지금은 여기저기로 다 흩어졌지만, 그땐 우리 집이 다 아지트였어요.
인터뷰어 경청 / 포토그래퍼 구름, 달래
2023.10.03 오뎅바 사장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