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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Nov 22. 2023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지은



* 혜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눈으로 봤을 때 예쁘고 즐거운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7, 8살쯤부터 비즈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어서 끼고 다니고, 종이에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그려서 만화책도 만들어 보고. 나만의 캐릭터를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이클레이로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상상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저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패션 디자인은 어렵다고 느껴져서 괜히 그냥 계속 미뤄왔어요. 그러다가 내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그럼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학원에 다녔고, 다니면서 처음으로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구체적으로 배웠어요. 콜라주도 하고, 디자인 발상도 해보고, 또 그걸 구현 가능하게 다듬어 보고. 그때 약간 재미를 느낀 거 같아요. 내가 더 해볼 수 있는 디자인은 뭐가 있을까, 새로운 디자인은 없을까, 그때부터 찾아보게 됐고요.





    

    학원 다니기 전까지 디자인을 망설였던 이유도 내가 못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쪽에 뛰어들 정도로 잘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였거든요. 근데 어쨌든 제대로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잖아요. 그래서 확인도 해볼 겸 다녔고, 선생님께서 칭찬이나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거긴 대부분 유학 준비생이고 선생님도 해외 하우스에서 일하신 분이니까 그분은 잘한 걸 얼마나 많이 보셨겠어요. 근데 그런 분께 칭찬을 들으니까 너무 좋고,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이쪽으로 가도 괜찮을 거 같다, 마음을 먹었죠. 생각보다 이 일을 했을 때 내가 즐거움을 더 잘 느끼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꽂히면 이것저것 만들어봐요. 집에서 프린팅 한 작업물을 어디서 봤는데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집에 있는 프린터로 해본 거예요. 여기서 어떻게 좀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찾아보다가, 패치워크랑 비즈로 해봐도 예쁠 거 같아서 동대문에서 비즈 사서 옷 만들고 남은 걸로 액세서리를 만들었어요. 이 안에 들어있는 아트워크도 다 포토샵으로 만든 거예요. 흑백 버전이랑 색감 더 쨍한 버전으로 여러 개 해보는 과정이나 실제로 인쇄되어서 나오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결과물이 내가 상상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지면 되게 기분 좋아요.






삶에서 무엇을 사랑하나요?

    삶에서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삶에서 무엇이 빠질 수 없을까, 내가 행복한 순간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여유’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목적을 잃은 여유가 아니라 순간순간 찾아오는 그 여유. 할 일을 끝내 놓은 상태에서 찾아온 여유를 사랑하는 거 같아요.


    가끔 인상 깊은 순간이 있으면 일기 쓰는 것처럼 영상으로 남겨요. 보통 우울하거나 행복할 때 영상을 남기는데, 행복할 때 영상을 남기는 경우는 상황이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날 좋은 날 창문 열어놓고, 불어오는 바람을 아무 생각 없이 맞으면서 날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 놓았을 때. 제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할 때예요. 영상 속에서도, 글로 쓰는 일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어요. 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고. 이런 순간들도 결국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고 멋져 보이는데 저는 그걸 못 따라 하겠더라고요. 성향상 무조건 여유랑 느림이 있어야 해요.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안 그러면 지쳐요.


그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게 멋져요.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안했던 적은 없나요?


    불안한 건 당연히 있어요. 에너지 많고, 잠도 별로 없고, 오랫동안 밖에 있어도 괜찮은 사람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나도 그 사람들 같으면 뭐든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왜 그럴 만큼의 에너지는 없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건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제가 대충 살지 않거든요. 나름대로 내 페이스에 맞춰서 활동하고, 하고 싶은 거 찾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제 부럽지는 않고 내 페이스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너무 즉흥적인 사람이라 계획이 좀 없기는 한데(웃음). 그래도 해야 할 거 있을 때,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그때그때 알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탐색전. 학교에 다닐 줄 알았던 계획과는 다르게,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인턴 같이 일을 하고 있어요. 매일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서 갖고 있던 가치관들이 흔들리고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인 거 같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전 너무 또렷했어요. 완전 낭만파. 낭만, 꿈 이런 걸 좋아했거든요.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게 훨씬 중요하고, 매일 반복되는 삶보단 변화를 추구할 줄 아는 사람, 무모하더라도 꿈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회사를 다녀보니 어차피 회사에 소속돼서 회사의 가치에 맞는 걸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게 정도만 다를 뿐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다면,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우선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나중에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걸 즐기고 살기 위해서 차라리 돈을 많이 버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원래는 이런 말을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조금씩 이해가 가는 것 같아요.


탐색전을 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어때요?


    부모님께 한번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돈 잘 버는 게 최고인가, 이런 말을 했더니 부모님이 그렇지, 일을 해보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듣고 조금 그렇더라고요. 맞는 말이고 이해도 되는데 갑자기 뭔가 진 느낌, 내가 결국 세상에 굴복했구나(웃음).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솔직히 아직은 예전의 가치관을 지켜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더 힘들지 몰라도 원래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지키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겠죠.






생각하는 다음 스텝이 있나요?

    나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누구는 퇴근하고 자기 계발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한다는데 저는 그럴 힘이 아직은 없어요. 회사 생활이 아직 낯선 걸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하면 거기다 에너지를 다 쏟는 스타일이기도 해요. 집에 오면 완전히 방전되어서 누워만 있거나, 다음날이 불안해서 디자인 레퍼런스를 계속 찾아보기만 해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 진짜 취업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취업 준비도 같이 해야 하는데 이제까지는 그럴 에너지도 의욕도 안 생겼어요. 회사에 지금 딱 두 달 있었는데 한 달 차까지는 적응 기간이라 쳐도 이제부터는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뭔지 헷갈리는데, 이걸 바로잡아야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찾을 수 있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시간을 못 가지니까 이 탐색전이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도, 진짜 다음을 위해서도, 우선 저에게 필요한 건 그 단계인 거 같아요.






 마음에 새기는 말

    작년까지 계속 새기던 말이 있어요. 후회하지 말자, Seize the day, Carpe Diem 같은 말이요. 어딘가에 뭔가 써야 할 게 있으면 이 말을 항상 쓰긴 해요. 누가 물어봐도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바로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작년까지는, 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정말 그 말을 유념하면서 사나? 이걸 갑자기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걸 해도 되는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거든요. 이 말을 정말 모토로 삼는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은데 그것보다는 제가 덜 열심히 사는, 그러니까 좀 더 여유를 챙기면서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순간순간에 충실하다는 게 행동으로 이어졌거든요. 열심히 살고, 무언가를 실천하고, 도전하고. 요즘은 좀 더 감정에 충실한 쪽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여유를 느끼는 것도 그 순간에 갖고 싶은 감정이듯이. 이렇게 사는 편이 저랑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제목은 아이유의 <unlucky> 속 가사에서 빌려왔습니다.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지은

2023.11.12 혜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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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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