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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Dec 27. 2023

나는 교수가 아닙니다

인터뷰어 경청 / 포토 밤



*  과의 인터뷰입니다.




오늘은 12월의 첫날이네요.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일이나 기분이 있나요?

 대부분 기분에 대해서 잘 묻지 않아서 그동안 기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제가 어떤 기분으로 한 해를 보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학기 내내 수업을 준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요. 수업을 준비하는 기분을 표현하자면 항상 긴장되고 두근대는 기분인 것 같아요. 이런 초조함 같은 기분이 방학을 제외하고는 항상 있어요. 아직 수업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수업이 쉽지 않은 걸 수도 있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때도 강의를 준비할 때 어려운 점들에 대해 나누게 돼요. 

 한 번은 어떤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써서 제게 보낸 메시지를 보고 너무 놀란 적이 있어요. 내가 선생님이라니. 저는 아직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건 낯설고,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건 부끄럽더라고요. 제가 위계가 없는 편인지, 학생들과 대화할 때는 그저 한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제가 만난 학생들이 다 좋았어요. 덕분에 여러 걱정이 조금 덜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수업을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학생들이 다 기억에 남아요. 지난 학기에는 대학원 수업을 맡았어요. 대학원 수업은 더욱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대학원에서 제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께서, 수업 과제로 제출했던 발표문을 논문 공모전에 냈는데 상을 받았다고 연락을 주셨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 일처럼 크게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까지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하나하나 기억에 남아 있어요. 또 대학원에 유학생들이 정말 많은데, 한국말이 서툰데도 불구하고 어떤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서 저에게 연락을 줬을 때는 뭉클하고 고마운 기분을 느껴요.



 

 

학생에서 강사가 되신 입장에서 학교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제가 작년 8월에 졸업했는데 운 좋게도 9월에 바로 강의를 하게 되어서, 이제 강의를 한 지 딱 1년 정도가 됐어요. 강단에 선 이후로는 학교에 올 때 옷매무새를 신경 쓰게 된 것 같아요. 전에 졸업 논문을 쓸 때는 오래된 책을 보관하는 학교 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책을 많이 빌려야 했어요. 왜냐하면 7, 80년대 추리소설들을 읽어야 했거든요. 한 번은 그렇게 지하 서고에서 책을 대출해서 나오는데, 도서관 출구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잡혀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필 빌린 책도 옛날 추리 소설이다 보니까 책 표지가 에로 소설에 가까웠거든요. 너무 부끄러워서 친구한테 내가 브랜드 있는 트레이닝복이라도 입고 있었다면 덜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 후에는 브랜드 트레이닝복을 한 벌 사서 거의 1년 내내 입었어요. 그런데 강사가 되고 나서는 학교에서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마주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 사람답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수업을 준비하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을 쓴다는 점도 크게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저는 수업을 하는 강사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이기도 하거든요. 개인 논문도 써야 하고 개인 연구도 꾸준히 진행해야 해요. 그전에는 제 연구밖에 안 했다면, 지금은 학생들을 만나는 수업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서 제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기도 해요. 균형을 잘 맞춰야 좋은 연구자이자 선생님이 될 텐데, 아직은 헤매고 있는 시점인 것 같아요.

자고 일어나서 학교에 와서 논문을 쓰고 다시 집에 가고, 다시 자고 일어나면 학교에 와서 논문을 쓰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고립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롯이 혼자 노력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성취감도 분명히 있어요. 연구는 다른 사람과 나눠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고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도 충만감을 주거든요.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제 연구에도, 제가 살아가는 데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을 만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저에게는 중요해요. 





학부생 시절 욘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부생 때 저는 멍때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의외로 목표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한 번은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나중에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어떤 의미를 두고 참여한 게 아니었는데, 예상외로 대학원에 가게 된 계기로 작용한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대학원을 갈 생각이 없었고, 교직 이수를 했었어요. 그런데 교생 실습을 나간 첫날부터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한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선생님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원에 가게 된 거예요. 아마 석사 과정까지도 막연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박사 과정을 밟기까지는 되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 사이에 직장을 다녔던 기간이 있거든요.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는 일을 했었어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강의 공간을 관리하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요. 그래서 그때 유명한 작가분들을 실제로 뵌 적이 많아요. 제가 사실 김연수 작가님의 팬이에요. 그래서 매해 12월 31일이 되면,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저만의 루틴이 있곤 했어요. 지금은 안 하지만 여전히 저는 김연수 작가의 문장과 내용을 너무 좋아해요. 그렇게 일을 하다가 김연수 작가님을 실제로 뵈게 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직원이다 보니까 팬이라고 말을 못 했었어요. 사인도 못 받고요. 비록 순탄치 않았지만 되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저는 이렇게 인터뷰를 꾸준히 연재하는 일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잖아요. 이런 게 너무 좋아 보여요. 저는 언제나 지금을 가장 좋아해요. “과거로 돌아가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같은 질문 자체를 안 좋아하거든요. 과거에 나는 너무나 미숙했고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조금 더 완성된 지금이 낫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에 학부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가 하는 어떤 일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더욱 생각하며 살 것 같아요. 과거의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 싶어요. 

요즘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조심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한 발만 더 내디딘다면 좋겠는데 거기까지는 안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과 경험들이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연애의 경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발만 더 내디뎌 보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요. 물론 그러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지만요. 





저는 아직 종잡을 수 없는 제 상태가 좋아요.

 언제까지도 종잡을 수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티가 나요. 학교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제 나이는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면 팀장급, 과장급이 되는 나이예요. 실제로 그런 위치에 있는 친구들, 다들 말하는 일반적인 코스를 잘 밟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내 삶을 비교해 보면 나는 비정규직이고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거예요. 제 친구들한테 고마운 점은 저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같은 말들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너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같은 식의 조언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저를 인정해 주는 게 고마워요. 언제까지고 망설이며 살아도 된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좀 더 행복한 방향으로 살 수 있다면 나이가 어떻든 종잡을 수 없이 사는 거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시니컬한 편이었어요. 제자신 말고는 주변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럴 만한 여유와 환경도 안 됐고요. 저는 지금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거든요. 제 삶이 너무 팍팍해서 주변을 돌아보거나 관심을 두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싫어하곤 했는데, 사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나와 관련 없는 아이들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 필요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작년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너무 놀라서 제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혹시나 주변에 힘든 일이 있고 누군가가 떠나갔다면, 학교 상담센터나 저도 좋으니까 도움을 요청하고 마음을 잘 다독이라고요. 혹시라도 답장이 안 오는 학생이 있을까 정말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몇 년 뒤, 혹은 몇 달 뒤 기대되는 것들이 있으시다면요?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건 공부를 업으로 삼겠다는 뜻이거든요. 2년간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나이가 어느 정도 들게 되고, 그러면 새로운 분야에 취업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져요. 그래서 석사 과정 때는 박사 과정을 밟을지가 되게 큰 고민이었는데, 한 번은 지도 교수님께서 저한테 롤모델인 여성 연구자가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지금은 대학원에 가느냐 마느냐가 가장 큰 고민 같겠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학계에 여성 연구자가 정말 적다는 거, 그리고 교내에서 여성이 연구자로서 자리 잡기가 정말 힘들다는 게 정말 큰 고민이 될 거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전 지금 그걸 정말 많이 느껴요. 

 저는 여성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대중문학 전공자이기도 하잖아요. 제 미래를 안락하고 희망적으로 꿈꾸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그걸 감안하고 전공을 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잘 버티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요. 제가 잘 버텨서 누군가가 나중에 대학원에 와서 저를 보고, 그래도 저 선배가 저렇게 버티면서 먹고 사는 걸 보니 나도 괜찮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근데 그렇게 버티는 것도 쉽지 않죠. 국문과 석사 과정까지도 여자가 훨씬 많은데, 박사 과정에 들어서면 성비가 뒤집혀요. 이게 학계의 현실이다 보니까, 비정규직의 삶이더라도 잘 버텨서 나중에는 누군가와 함께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소심해서 뭔가를 지르는 것도 못 해요. 그래도 같이 버텨가는 존재로 있고 싶어요. 학생들에게도 다정하고 싶고요. 





인터뷰어 경청 / 포토그래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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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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