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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Feb 28. 2024

내가 그리는 꿈의 도면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달래



원재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건축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 중에서
원재 님이 하려는 건축과
가장 맞닿아 있는 말은 무엇인가요?

    해결하다. 건축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시작되고, 클라이언트는 어떠한 필요가 있으니까 건축가를 찾아요. 건축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해요. 저는 저를 찾은 클라이언트에게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건축학과 하면 짓다, 시공하다, 만들다 이런 말만 생각했거든요. 길진 않지만 3년간 건축학과 생활을 해보니까 제가 하고 싶어서 설계에 넣는 건 100중에 한 2-30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아요. 나머지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들. 법적 제한 사항도 있고 교수님이 원하시는 것도 있고. 지금 학생들에게 클라이언트는 교수님이니까요. 그래서 그냥 이건 해결사다, 교수님 피드백 풀어내고 법적인 거 잘 녹여주는 해결사.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해결하다’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필드에 나가서도 어쨌든 돈을 주고 저한테 의뢰를 맡기는 건 클라이언트니까요. 해결한다는 게, 제가 열심히 해서 남에게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뭔가를 해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에서 만족감을 얻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뭔가를 해결해 주는 게 저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그렇게 풀어가는 과정이 재밌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건축이 그렇게 낯선 개념이 아니었어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만들 때 아빠가 현장에 계셨거든요. 구경도 몇 번 다녀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독서실 갈 때, 문제집도 가져갔지만 스케치북을 꼭 챙겼어요. 공부보다 그림이나 도면 그리는 걸 더 좋아했거든요. 건축이라는 게 평면도부터 시작되잖아요. 평면도는 동선이 중요한데 그런 동선을 생각하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어떤 공간에 사람이 들어갔을 때 여기를 먼저 보게 되네, 그럼 이 부분이 중요하니까 예쁘게 꾸며줘야겠다, 사용자 입장에서 복도가 기니까 좀 줄여주면 좋겠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근데 건축학과 가면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니까. 질리도록 할 수 있는 거니까. 






건축학과에서 3년을 지내보셨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가끔 싫을 때도 있는데 재밌는 게 아직은 더 큰 거 같아요. 건축학과가 학기 중에는 자주 밤도 새우고 설계하느라 다른 걸 아예 할 수 없을 만큼 바쁜데, 이게 안 맞는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게 보여요. 울면서 설계하고, 하기도 싫은데 억지로 밤새우면서 앉아 있으면 그거 자체가 고통이잖아요. 저도 그런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재밌어요.


    제가 막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건축적으로 천재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도 있고 대인관계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대인관계, 건축학과에서 중요한 부분이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고. 근데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저는 딱히 대단히 잘하는 게 없는 거예요.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나 슬펐던 것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건축이 좋은 거 같아요. 좀 재밌어요.






요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세요?

    비우려는 마음. 


비워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전역하고 나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챙기면서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12월에 종강하고도 1월 중반까지 공모전을 계속 준비했거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학기 중에는 설계하느라 밤새우고, 학기 최종 발표하자마자 공모전 때문에 또 밤새우고. 아까 재밌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건축이 밤새우는 거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어요. 


    제가 다른 사람하고 하루 종일 어울려 있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거든요. 근데 건축을 하다 보면 대부분 팀으로 활동해요. 사람들하고 부딪혀야 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생기니까 말을 너무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거기서 감정적으로 많이 쏟아내니까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모전 제출하고 나서는 그렇게 쌓여 있던 것들을 좀 밖으로 내보내려는, 비우려는 마음으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3학년이 또 힘들었던 게, 군대를 갔다 오니까 건축학과 1학년보다 더 못하는 애가 돼서 나온 거예요. 리셋이 되어버리니까. 쭉 이어오는 친구들은 프로그램도 능숙하게 다루는데 저는 다 까먹은 상태잖아요. 남들은 설계하고 있을 때, 저는 프로그램 익히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진도를 맞추려면 제가 더 빨리 움직여야 하다 보니까 그런 부담감이나 압박감이 1년 동안 계속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상이 있나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단순히 음식 조리가 아니라 구입할 식재료 리스트를 작성하고, 좋은 식재료를 구경하면서 고르고, 음식과 맞는 식기류를 고민하고, 요리한 후에 깔끔하게 뒷정리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 전체를 좋아하고 즐겨요. 






요리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요리를 많이 했는데 그게 또 싫지 않아서 이건 내가 좋아하는구나, 알았던 거 같아요. 요리할 때 제가 편안함을 느끼니까. 요리해서 누나를 주고, 엄마 도시락을 싸주고, 아빠가 집에 오셨을 때 저녁을 맛있게 차려드리고. 이런 부분에서 뿌듯하고 그 과정이 과제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 혼자 즐기는 게 아니라 깔끔하게 잘 만들어서 상대방이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볼 때 제가 만족감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꿈도 있어요. 음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한테 가격으로든 맛으로든 만족감을 주고 싶고 또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 과정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계가 있다면?


    요리하기 전에 뭔가를 찾아보고 사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살 때도 아무거나 사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비교해 봐요. 이 프라이팬이 내가 쓰기가 편한가, 우리 집에 적합한가. 그러면서 집을 되돌아보게 되잖아요. 상상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집을 생각하면서 필요한 걸 사는 게 가장 좋아요. 






만들어 보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있어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건물을 하나 짓고 싶어요. 몇 층은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몇 층은 가족이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거죠. 큰누나는 외국인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여행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작은누나는 밖보다는 안에서 뭐 해주는 거 좋아하고. 아빠는 운전처럼 데려다주는 걸 좋아하는데 깊은 관계를 맺는 건 부담스러워하니까 외국인들이 편하게 놀 수 있게 운전기사 해주고. 엄마는 카운터에서 손님 받고, 이모가 꽃 가꾸는 거 좋아하니까 마당 가꾸고,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쿠킹 클래스 오픈해서 요리 알려주고. 어릴 때부터 이런 거 해보자고 이야기했었어요. 


그 공간을 직접 설계하실 건가요?


    그럼 좋죠. 중학생 때 독서실에서 스케치북에다 샤워실을 어떻게 할까, 그림도 그려봤었어요. 수지 타산도 맞아야 하잖아요. 손님이 오면 얼마를 받을까, 침대를 몇 개 놓아야 수익이 얼마가 되겠구나, 그런 것도 생각해 보고.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가고. 그런 생각에 빠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데 이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지? 이런 거. 재밌지 않아요? 그런 생각 하다 보면? 아니에요? 나만 그런가?


    게스트하우스를 딱 열었을 때 어떤 노래를 틀까, 그거까지도 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옛날에 죽기 전에 꼭 이룰 100가지 같은 걸 적는 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게스트하우스 열어서 ‘Bruno Mars의 Just The Way You Are 틀어놓기’였어요.






무엇이 원재 님을 움직이게 하나요?


    주변 사람들한테 계산하지 않고 베풀고 싶은 마음. 그렇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뭔가 시스템을 갖춰 놓고 싶은 거 같아요. 그 시스템이라는 게 가게를 차리는 걸 수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걸 수도 있겠죠. 제가 안정적이어야 또 베풀 수 있는 거니까 빨리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그게 저를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아빠가 축구 보는 걸 좋아하시는데 빨리 돈 벌어서 다음 아시안컵은 아빠 모시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직접 보게 해드리고 싶다, 이런 꿈들이 있어요.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돈 같은 거 계산하지 않고 이런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움직이게 해요.


그런 생각이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으신가 봐요.


    그런 걸 상상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생각만 해도 뿌듯해요. 내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이 있잖아요. 성실히 살겠구나, 책임을 다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인터뷰어 해수 / 포토그래퍼 달래

2024.02.07 원재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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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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