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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ug 17. 2022

서로가 서로에게 포커스를 나눠주는 관계

인터뷰어 윪, 하치 / 포토 봄봄


* 8월 특집, 2인 인터뷰의 첫 번째 이야기. 성균관대학교 김혜린님 최가영님의 인터뷰입니다.



(왼쪽) 가영님 (오른쪽) 혜린님
두 분의 첫 만남은 언제인가요?


가영 | 사회학과 개강파티 때 처음 봤어요. 같은 과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어요, 근데 다들 이미 친해져 있는 상황이라 어색했어요. 그때 혜린 씨는 정말 인싸 같았죠. 그래서 절대 친해질 일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혜린 | 전 가영이가 빵모자 쓰고 들어오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웃음) 가영이가 예전의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저도 전공 예약생도 아니고 재수생이라 학과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거든요. 제가 학과에서 처음으로 밥을 사준 후배가 가영이에요. 기억하려나. 그때 제가 ‘신장군’ 마라탕 사줬거든요.


가영 | 기억하지. 근데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날은, 혜린 씨가 제가 사는 노량진에 놀러 온 날이었어요. 그전까지 다들 놀러 온다고 말만 하고 정작 온 사람은 없었거든요. 근데 혜린 씨가 처음이었어요. 그날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온 거예요. 나 지금 과외 끝나고 노량진 근처인데 놀러 가도 되냐고. 그때 즉흥으로 만나서 놀았어요.


혜린 | 제가 일 끝나고 맥주 한 잔 마시는 거 좋아해요. 즉흥적으로 부르면 응해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는데, 가영이는 흔쾌히 “좋아!”라고 해줬어요. 해 뜰 때까지 놀았어요. 그때 친해져서 방학 때도 거의 매일 봤죠.



혜린 | 20년도에 미국으로 교환 학생을 갔어요. 되게 외로웠는데, 가영이가 매번 시간 맞춰서 전화해줬어요. 그렇게 일 년 정도 보내고 돌아올 때쯤 같이 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전 돌아오면 2주 격리 때문에 바로 들어갈 집이 필요했어요. 근데 가영이가 정말 고맙게도 저 입국 전에 혼자 방 보러 다니고 집 계약까지 마쳤어요. 그리고 격리 해제되는 날 12시에, 방문 딱 열어서 환호해줬어요.


가영 | 그러고 보니 그날도 ‘신장군’에서 먹었네요. (웃음)


이제 막 친해졌을 시기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혜린 | 너 이거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친해질 때 충격 먹었던 적이 있어요. 처음부터 서로 되게 죽이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재밌는 거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 그니까 너도 하고 싶은 거 말해달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때 알게 된 지 한 달도 안 됐던 때인데, 저한테 학교 정문에서 수선관까지 삼보일배하면서 가보고 싶다는 거예요!


가영 | 그게 제 오랜 꿈이에요. 입시할 때, 붙여 주기만 한다면 진심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거든요.


혜린 | 그래서 “그래 다음에 꼭 하자”하고 넘기고 영원히 기억 속에서 잊어주길… (웃음)


지금 다시 삼보일배 같이 하자고 제안받는다면 어떨 것 같아요?


혜린 | 옆에는 있어줄 거 같아요. 같이는 못 해주고 구경하면서 인스타 라이브 하겠죠. (웃음)


해맑은 웃음을 소유하신 혜린님
두 분의 동거는 어땠나요?


혜린 | 저희 정말 다르게 생기지 않았어요? 가끔 같이 세수하러 들어가면,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생겼지”하고 놀라곤 했어요. 성격도 다른 편인 듯해요. 겉 이미지만 보면, 집에서 제가 막 활달하고, 가영이는 조용히 노래 듣고 일기 쓰고 있을 것 같은데 반대예요. 제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가영이가 강아지처럼 매번 “혜린 씨~!”하며 반겨줬어요. 저도 매번 반가웠고요.


가영 | 동거 초반에는 10분에 한 번씩 노크했어요. “나 하나만 더 말하면 안 돼?”하고.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거든요. 일상 얘기도 하고 사회 이슈 토론도 하고, 또 상상력 발휘하는 질문들 있잖아요, “우리가 갈라파고스에 떨어진다면?” 이런 거.

그리고 즉흥적으로 잘 놀았던 것 같아요. 계절별로 학교 가서 스냅사진 찍고, 종로 5가 가서 할아버지들이랑 국밥 먹고, 인천 가서 조개구이 먹고, 핼로윈 파티도 열고. 서로 닮았다기보단 서로 달라서 더 죽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누구보다 따뜻한 웃음을 소유하신 가영님


가영 | 크게 싸운 적은 없고, 대화를 진지하게 한 적은 있어요. 같이 살다 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사소한 게 쌓이다 터지곤 하잖아요. 사실 저는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라, 이번에도 그럴 수 있었지만, 이 관계에서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 혼자 결론짓고 마무리 짓기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거든요. 8장 정도 되는 편지를 써서 거실 냉장고에 붙여뒀어요. 사실 편지를 쓰면서 무서웠어요. 장문의 편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근데 두 배 가까이 되는 양의 답장을 받았어요.


혜린 | 가영이는 미안하다는 감정이 담긴 편지를, 저는 해결 방안에 대한 편지를 썼어요.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서로 달라요. 어떻게 보면, 가영이는 제가 자꾸 변명만 하는 것처럼 느끼고, 저는 가영이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둘 다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화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서로를 위한 마음이었으니까.



재밌었던 동거 에피소드가 있다면?


혜린 | 핼로윈 이틀 전이었어요. 저희 외국인 친구 중에 벨라라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핼로윈에 홍대에서 코스튬을 맞춰 입고 논다는 거예요. 원래 핼로윈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뭔가 하고 싶더라고요. 근데 사람들 많은 곳은 가기 싫고 하니까, 우리끼리 핼로윈 파티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영이한테 얘기했더니 바로 좋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초대장 만들고, 핼로윈 소품 떨이로 사 오고, 근처 가게에서 미니 당구대, 다트 같은 거 빌려와서 꾸몄어요. 당일에 저희 학과 사람들 10명 정도 온 거 같아요.


가영 | 코스튬이 입장 필수 조건이었어요. 저는 길은지 분장했고, 오징어 게임 패러디한 친구들도 있었죠. 혜린 씨는 남자 친구랑 커플 드라큘라하고. 이렇게 즉흥적으로 놀고 여행 가고 한 기억들이 많아요.


서로가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가영 | 저는 다른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서 보통 이야기를 듣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이야기는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 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사람과 있고 싶곤 해요. 혜린 씨가 저에겐 그런 존재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포커스를 나눠주는 사이. 혜린 씨랑 만나기 전에는, 친구들 사진은 많이 찍어줘도 제 사진이 찍히는 건 좋아하진 않았어요. 근데 혜린 씨랑 학교에서 계절별로 스냅사진 찍으면서, 사진 찍는 걸 즐기게 됐어요. 몰랐지? (몰랐어.)

혜린 씨는 엄청 명료한 사람이라 자기 삶의 결정을 내릴 때 본인의 영역을 잘 알아요. 전 그런 부분에서 서툰 편인데, 옆에 이렇게 명료한 사람이 있어서 저도 점차 명료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혜린 | 저는 가영이가 그 반대라서 좋아요. 가영이는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라 제가 편안함을 느껴요. 대화할 때, 평가당하는 기분이 들면 불편하잖아요, 근데 가영이는 정말 있는 그대로 들어줘요.


바쁜 일상에서 서로를 위한 마음과 시간을 쏟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가영 | 저는 혜린 씨가 제가 해주는 것만큼 저에게 해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내가 힘들 때 그걸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아니라는 것. 본인에게 필요한 우선순위가 모두 끝난다면, 다음엔 꼭 날 챙겨줄 사람이에요. 헌신은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시간이 나고 여유가 있을 때 서로를 돌봐줄 수 있는 게 건강한 관계니까.

그리고 혜린 씨에게 이건 나만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지금 먹고 싶은 음식 맞추기.’ (웃음) 전에 혜린 씨 남자 친구랑 같이 만난 적이 있어요. 남자 친구가 혜린 씨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봐서, 빨갛고 자극적이고 자작자작한 국물 류 좋아한다고 답해줬거든요. 근데 혜린 씨도 놀라더라고요. 본인이 딱 그런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새로 나온 걸그룹 노래 불러주기.’ 이것도 남자 친구는 못 해주죠.



혜린 | 난 뭐 해줄 수 있으려나. 저는, 갑자기 여행 가자면 같이 가주기. 핑계지만 일 그만둘 생각으로요. 근데 막상 안 해줄 수도 있고. (웃음)



기억에 남는 감동 모멘트 소개해주세요.


혜린 | 제가 전에 조개 잘못 먹고 노로바이러스 걸려서 많이 아팠던 적이 있어요. 그때 가영이가 생닭이랑 인삼, 대추 등 재료 다 사 와서 백숙 끓여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나한테 감동받은 거 뭐 없어?


가영 | 잊고 있었는데 얘기 들으니 생각났어요. 제가 한때 개인적인 일들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혜린 씨한테 그냥 하는 말로 “나 좀 힘들어”하고 공부하러 나갔죠. 공부하고 있는데 혜린 씨가 ‘가영아, 많이 힘들지? 옆 빵집에서 빵들 주문해뒀으니까 가서 먹어’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공부하는 곳 옆에 제가 엄청 좋아하는 빵집이 있는데, 가게 이름은 알려준 적 없거든요. 어떻게 안 건지 거기를 찾아서 미리 빵을 준비해뒀더라고요. 이걸 까먹고 있었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워요.





인터뷰어 윪, 하치 / 포토그래퍼 봄봄

2022. 08. 09. 영원한 단짝 김혜린님, 최가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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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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