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아소 / 포토그래퍼 림
* 건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성대에서 일한 지는 햇수로 4년째 돼 가네요. 처음에는 유학대에서 조교 일을 했었고, 지금은 경영대 행정실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직장이 대학이다 보니 학생들 만날 일이 많잖아요. 젊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저 스스로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일이라, 근무 환경이 익숙하다는 것도 한몫 하고요. 큰 뜻 없이 물 흐르듯 시작한 일인데, 대학만의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경영대에서 특수대학원 실무를 맡고 있는데, 원우분들 나이대가 일반대학원에 비하면 정말 다양해요. 어느 정도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신 분들이 주로 오시다 보니, 적게는 30대부터 5-60대 이상까지 다양한 분들이 들어오시거든요.
원우분들이 학교 생활을 무척 활발하게 하세요. 과잠도 맞춰 입으시고, 동호회도 만들어 활동하시고, 운동회나 MT도 가시고요. 처음에는 되게 신선했죠. 제 아버지 또래인 분들이 여타 20대 대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지내시니까요. 젊을 때 재밌는 건 평생 재밌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웃음) 그런 모습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지금은 저희 대학원만의 특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는 특수대학원 업무는 보통 두 명이 함께 맡는데, 저랑 같이 일하시는 분이 두 번 바뀌었어요. 이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사람이 저 밖에 안 남게 된 거죠. 교직원은 인사 이동이 잦다 보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긴 한데, 문제는 저도 일한 지 1년 조금 넘은 신입이었다는 거였어요. 제 생각에 저는 아직 뭘 도맡을 레벨이 아닌 것 같은데, 업무를 주도해서 처리해야 된다니 막막함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다양한 일을 해내면서 우여곡절이 꽤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대부분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해외 출장도 종종 가는데, 갈 때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생겨서 기억에 남아요. 작년 10월에 중국에 한 번, 올해 1월에 베트남에 한 번 다녀왔는데요. 중국 태산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했어야 하는데,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다 못 탄 상태에서 하산 시기를 놓쳐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같이 계단으로 직접 걸어 내려왔던 기억도 나고요. 베트남에서는 늘 행사 오면 하던 대로 현수막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데, 공안이 와서 저지하더니 현수막을 빼앗아가려 하기도 했고요. 매번 다양한 일을 많이 겪고 오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제가 경영대에서 그리 중책을 맡고 있진 않은데, 이런 출장에 항상 동행하게 되는 것도 좀 신기하고요. (웃음) 의아할 때도 있지만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취미로 드럼을 쳐요. 좀 오래 됐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밴드부 활동을 하고, 지금은 마음 맞는 대학 때 친구들과 함께 락밴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프로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실력은 동아리 수준인 그런 밴드인데요. (웃음) 대중적인 것보다는 강렬하고, 빠르고, 마이너한 곡들을 주로 하는데,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는 말 그대로 머리 흔들면서 즐길 수 있는 노래들을 지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저희부터가 남부럽지 않게 재밌게 즐기고 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첫 공연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저는 남고를 나왔는데, 저 때만 해도 두발 자유화가 아니었어요. 모든 남고생들이 머리 빡빡 밀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앞에 쫙 깔린 곳에서 공연을 했던 게 되게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첫 공연을 해봤다는 생각 때문인지 임팩트가 컸나 봐요. 그 후로 대학에 와서도, 또 지금 활동하는 밴드 결성 후에도 많은 공연들을 해 왔지만, 역시 그날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대학 다닐 때 그렇게 튀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공부하고, 놀러 다니고, 과생활이나 동아리 활동 조금 하고 그랬죠. 학과에서도 존재감이 크진 않았고요. 그냥 자잘하게 힘쓰는 일에는 좀 불려 다니는 정도. (웃음) 큰 굴곡 없이 유야무야 흘러간 것 같아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뭘 하나 진득하게 해보지 않은 게 조금 후회되죠.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대외활동을 큰 거 하나 해볼 걸, 아니면 아예 놀아버릴 걸. 이곳저곳에 발 걸치고 애매하게 지냈던 기억뿐이라, 무엇 하나에 몰두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게 좀 아쉽더라고요. 대학생활에 있어 그런 응어리가 살짝 남아 있었는데, 교직원 일을 시작하고 풋풋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게 조금은 해소된 것 같아요.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할까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추억이 있다면.
저는 지브리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VOD나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비디오방 같은 곳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와서 보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제 기억에 그때 저희 집이 아주 여유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상-하편으로 나눠진 비디오 테이프를 구워 오셨더라고요. 당연히 너무 기뻤죠. 일어나서 다시 잘 때까지 계속 그것만 돌려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우연한 계기로 최근에 그 영화를 다시 한번 돌려봤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좀 뭉클하더라고요. 제게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해 주는 영화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에 일본의 마쓰야마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 가게 된 이유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서였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간이역에 노을 진 시간에 갔는데, 바닷길에 나 있는 철길 풍경이 인상 깊었어요. 그것도 사진에 담아서 종종 꺼내 보고 있습니다. 추억에서 나온 추억인 셈이네요.
이제 막 서른에 접어든 시점에서 바라는 건, 30대의 제가 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 하나로 책임감을 갖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훗날 있을 배우자가 됐든, 저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단단한 버팀목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책임감이 필요하잖아요. 아직까지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리거든요. 생각하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요. 그래서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제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어 아소 / 포토그래퍼 림
2025.02.27. 건휘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