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희주, 조아 / 포토그래퍼 유민
* 민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삶에서 전환점이 된 순간이 있어?
약 1년 반 전, 3학년 2학기 재학 중에 크게 무너진 적이 있어. 원전공인 통계학에서는 주로 앉아서 분석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내 성향과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도 전공이니까 스터디, 공모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좋아해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열정을 가지고 깊게 파고드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전공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와중에 학교 밖에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 남해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계신 대표님, 색다른 사진관을 운영하는 작가님 등 각양각색의 사람에게 무작정 DM을 보내고 찾아갔어.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정말 좁은 세상에 사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를 크게 깨달았던 것 같아. 그동안은 남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 목표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 줄 알고 그 길을 걸었던 거지.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아 탐색'이라는 게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알게 됐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깊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재미를 느낀다는 걸 깨달았어. 이때부터 대다수의 사람이 중시하고 따르는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자유로워졌어.
‘자아 탐색’을 위해 추가적으로 해본 게 있다면?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올해의 키워드를 설정해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어. 재작년에는 ‘도전’이었고 작년에는 ‘자유’였어. 이렇게 키워드를 정하고 보니까 실제로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정말 그 키워드에 맞는 해였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2023년의 키워드를 ‘도전’이라고 설정해서 도전의 해가 된 건지, 돌이켜 보니 그 키워드로 수렴이 된 건지 선후 관계가 헷갈릴 정도로 매년 설정하는 키워드에 맞춰 삶의 테마가 정해지는 것 같아. 또 신기한 게, ‘도전’이라는 키워드는 2023년만의 것이 아니라 이제 나의 기반으로 장착되었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나. 핵심 기억을 바탕으로 ‘도전’이라는 새 섬이 생긴 것 같네.
맞아. 예를 들어 평소에 해보고 싶었는데 망설였던 것들을 ‘올해의 키워드는 도전이니까’ 하고 핑계를 대면서 실제로 도전해 보는 한 해를 보냈어. 그랬더니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처럼 예전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 이제는 적은 에너지를 써도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어. 이렇게 디폴트 값이 생긴 것 같아.
올해의 키워드는 뭐야?
올해는 ‘창작’이야.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 생각해 둔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제로 추진하는 데에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월간 회고 모임 주최’, ‘북클럽 결성’, ‘산불 피해 지역 기부를 위한 플리마켓 개최’, ‘로컬 여행 책자 제작’ 등 한번 다 해보려고 작정한 상태야.
어떨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궁금해.
작게는 듣고 있는 노래가 좋을 때, 에너지를 쓰고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때부터 크게는 창조성을 발휘할 때 살아있음을 느껴. 내 손으로 직접 기획한 것이 성공적으로 진행했을 때 말이야.
학교에 다니면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3학년 1학기에 처음 SeTA(Social Entrepreneurship Team Academy) 활동을 마치고 학교 언덕길을 내려오던 순간이야. 그전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이런 통통 튀는 분위기 너무 재밌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것처럼 벅찼던 게 기억나.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정말 살아있다는 게 진하게 느껴졌어.
다음 학기에 의류 교환 행사를 열었을 때도 사람들이 재미있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니까 집에 가는 길에 신이 나서 “막 진짜 너무”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1월 회고 모임이 끝났을 때도 그랬고. 요즘은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공고만 올려도 사람들의 반응에서 짜릿함을 느껴. 살아있다는 감정은 하고 싶은 게 뭔지 끊임없이 탐구했을 때 얻는 보상 같아. ‘무엇이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지’처럼 무시할 수도 있는 질문에 정면 돌파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거지.
준비한 프로젝트 개시를 앞두고
기대감과 불안감 중 어떤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와?
기대감이 훨씬 더 큰 것 같아. 불안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압도될 만큼 크게 느끼지는 않는 편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해결하면 되고,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면 걱정해 봤자니까 마음을 비우면 돼. 작은 성공들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이, 결국 나에게 추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 같아.
팀을 이뤄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라면 팀원들을 믿어.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같이 회의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딱 찾는 순간이 있어. 그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데 그때의 희열은 나 혼자만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걸 항상 느껴. ‘이게 일하는 맛이지. 이거지, 이거지!’ 하면서 말이야. 지난달에는 받아줄지 아닐지도 모르면서 일단 제안서를 들고 경기도청에 찾아간 적이 있어. 아직 뭔가를 이룬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렇게 셋이 같이 간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1층에서 방방 뛰었어. 혼자였으면 애초에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을 거고 설령 간다고 한들 그렇게 기쁘지도 않았을 텐데, 함께 하니까 기쁨이 증폭된 것 같아.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팀은 그저 일을 같이 하는 조직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서 모두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생명체 같은 조직이라는 점이야. 그래서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팀 학습 이론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
일로 시작한 관계가 ‘찐친’이 된 경우도 있어?
너무 많아. 내가 앙트레프레너십연계전공에 와서 크게 얻은 것 중 하나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인연들이 정말 많아. 서로 짜릿한 순간을 공유한다는 게 참 특별하고, 일이 잘 풀렸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또 다른 종류의 감정인 것 같아. 또 고난이 있거나 실패를 해도 함께 경험하면 사이가 더 끈끈해지기도 하잖아. 그런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
앙트레에서는 주로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면서 활동하거든. 내 닉네임은 ‘카도’인데 대학 와서 생긴 인간관계 중에 절반은 나를 ‘민지’라고 부르고 절반은 나를 ‘카도’라고 불러. 나는 둘 다 좋아.
이야기만 들어도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아.
맞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항상 감사해. 요즘 특히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다가도 혼자 속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앞으로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인생이라고 하면 너무 넓어서 올해로 축소해도 될까? (웃음) 올해 개인전을 여는 게 목표야. 규모와 상관없이 내가 그간 해왔던 것과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한곳에 모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걸 단순히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전하고 싶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게 목표야. 올해 키워드가 ‘창작’인 만큼 한 해를 잘 갈무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지 않을까 싶어.
인터뷰어 희주, 조아 / 포토그래퍼 유민
2025. 04. 29. 민지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