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수수 / 포토그래퍼 림
* 성균어학원에서 근무하시는 한국어 교사 희연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10년부터 성균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온 서희연입니다.
성균어학원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지금 속해있는 성균어학원은 성균관대학교 부설 기관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학원처럼 등록해서 돈을 내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에요. 시험을 봐서 한국어 급수를 따야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기본 대상이죠.
초반에 제가 성균어학원에 왔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특정 급을 맡으면 해당 급의 책임 선생님께서 도제식으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시스템이었어요. 수업 도입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주제에 대해 학생들의 이목을 끌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 문법에 해당하는 예시는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죠. 이때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고 다른 선생님의 비법들을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던 게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이 시스템이 사라져 버렸지만요.
어떤 계기로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신 건가요?
학부 전공은 영어였고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영어 선생님으로서는 완벽해질 수 없겠다는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와중에 좋은 기회로 체코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가게 됐고요. 거기서 체코어를 배웠는데 선생님께서 체코어로 체코어를 가르쳐주시는 모습이, 그 직업 자체가 저한테는 유레카였어요. 당시에는 영어가 가장 보편적인 제2외국어였다 보니까 당연히 나도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체코 원어민 선생님을 보면서 ‘저런 원어민 선생님이 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한국어는 내가 제일 잘하는 언어니까 자신감 있게 가르칠 수 있잖아요. 세세한 뉘앙스까지도 가르쳐 줄 수 있을 거고요. 체코 유학 생활을 길게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확실한 꿈을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죠.
어학 수업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어학 수업은 정말 재미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보고 듣고 쓰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하고 게임하고 대화하는 게 수업의 주요 내용이거든요. 토론하기도 하고 시장 활동도 하고… 시장 활동을 할 때는 종이돈을 만들고 진짜 물건과 주고받아요. 이게 유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거든요. 예전에 일본에서 교환 교수로 오셨던 부부가 1급 수업을 들으셨었는데 이런 시장 활동을 너무 재미있게 하셨어요. 또 학생들이 많이 안 온 날에는 커피숍에 있는 것처럼 동그랗게 모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끔 해보기도 해요. 이런 활동들을 보면 한국어 교육이 정말 많이 발달했다고 생각해요. 얼마든지 재밌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교육 방식이잖아요.
오랜 시간 한국어를 가르치며 느끼게 된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한국어는 문법 안에 자기의 감정을 녹여낼 수 있는 발달한 언어인 것 같아요. 과거형 표현을 할 때도 ‘내가 세븐틴 보러 갔는데 멋있었어’라고 이야기하면 감정적 동요가 덜 담기게 되고, ‘세븐틴 보러 갔는데 멋있더라’라고 하면 느낌이 강하게 들어가게 되잖아요. 이렇게 한국어는 문법적인 요소만으로 감정 처리를 할 수 있어요. 되게 섬세한 언어고 그래서 가르치기도 되게 어렵죠. 가르칠수록, 배울수록 어려운 언어다.
섬세하고 어려운 한국어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 무엇에 가장 신경 쓰시나요?
예문을 구성하는데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고 있어요. 가장 전형적인 예문을 제시해야 학생들이 혼란해하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비가 올지도 몰라’라는 말은 ‘비가 올 거야’보다 비가 올 확률이 낮을 때 쓰잖아요. ‘~일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은 낮은 가능성을 내포하는데, 이 말이 얼마나 낮은 가능성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문을 잘 제시해야 해요. 어떤 남자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면 ‘저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있어.’라고 이야기하고 여자 친구가 없을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을 때 ‘저 남자는 여자 친구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말을 하게 된다는 식의 복잡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더 해서 학생들의 이해를 도우려고 하죠. 예문이 설명해야 하는 표현과 안 어울리거나 전형적이지 않거나 또 너무 특수하면 안 되니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튜브에서 딱 좋은 전형적인 예문이 자막으로 나오면 캡처해 두곤 해요. (웃음)
동기부여가 된 학생들에 대한 일화나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을까요?
동기부여가 되는 학생들은 매 학기 있죠. 사실 학생들이 특별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집중해서 들어 주고 열심히 수업을 따라오려 해주면 그 자체로 동기 부여죠. 그래도 한 체코 남학생은 기억에 남아요. 체코 지역은 크리스마스 행사가 한국에 비해 더 성대하잖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자기 돈으로 트리랑 오너먼트를 사 온 거예요. 그 덕에 크리스마스 재즈를 틀어놓고 다른 학생들이랑 다 같이 트리를 꾸몄죠. 그때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교실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교실 밖에서의 모습에 차이가 큰 편이신가요?
확실히 차이가 큰 것 같아요. 평소의 저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학생들은 저를 엄청 활발한 선생님으로 알고 있죠. 원래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수업에서는 제가 조용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학생들에게서 무언가를 끌어내야 하니까 바뀌어야죠. 교실 안에 들어가면 스위치가 딱 켜진 것처럼 변해요. 일종의 배우 같은 느낌. 말만으로 안되는 게 있으면 배우처럼 연기로 표현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수업에서의 체력 소모가 정말 커요. 수업이 3시에 모두 끝나는데 수업 끝나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이 헉헉거리고 계세요.
교실 밖 희연 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나 취미 생활이 있을까요?
음악을 좋아해요. 친구가 밴드를 소개해 줘서 최근엔 작은 직장인 밴드에 들었어요. 한 달 정도 됐나? 한 번도 공연을 한 적 없지만요. (웃음) 건반이 없어서 건반을 맡게 됐어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여서 합주를 하고 나머지 시간엔 개인 연습곡을 정해서 개인 연습을 해요. 지금은 윤하의 기다리다라는 곡을 맹연습 중이에요. 빨리 잘 쳐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성균어학원 한국어 교사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선생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지 여쭤보고 싶어요.
되게 많이 고민했던 문제인데 성균어학원 교사라는 이 명함이 제 인생에 거의 90%가 아닌가 싶어요. ‘이 명함이 없어지는 순간 나는 뭘까’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은퇴하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어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못 했지만요. 포용적이고 품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저를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균어학원 교사라는 선생님의 오랜 명함이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들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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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생들이 가끔 한국어의 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해요. 귀여운 단어가 많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미지가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오케이라는 영어를 일상에서 많이 쓰잖아요. 그것처럼 요즘은 ‘괜찮아’ 같은 한국어를 그냥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쓴대요. 한국어가 아니면 표현되지 않는 대체할 수 없는 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필리핀이나 베트남에도 한국의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우리 노래 가사에 영어가 쓰이는 것처럼 랩에 한국어 가사가 많이 쓰였대요. 이렇게 예쁜 언어, 대체할 수 없는 언어로 조금씩 조금씩 한국어가 널리 퍼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어 수수 / 포토그래퍼 림
2025. 06. 19. 한국어 교사 희연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모토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균관 공동체 속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