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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취미

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영랑

by 휴스꾸


* 의균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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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균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10대 때는 딱히 삶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과니까 공대에 들어가서 프로그래머가 되어야지 정도의 막연한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첫 수능을 망쳐버린 거예요. 급한 대로 문과 쪽으로 대학을 알아보고, 첫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게 됐어요. 그 후 한 번 더 수능을 보게 됐고, 지금 대학에 다니게 됐어요. 하지만 코로나 시기라 학교도 안 나가고, 그냥 강의 듣고 대충 과제 내고, 그런 삶의 반복이었어요. 그 일련의 과정에서 저 자신에게 계속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지금 이런 삶은 아닌 거 같은데' 혼란스러웠죠. 그런데 오히려 의문을 가지고 고개를 드니, 시야가 넓어지고,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세상에 재밌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거예요. 그때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게 저에게는 여러 가지 취미였어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작고 소박한 취미들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기억하며 즐기려는 사람이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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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을 취미로 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유치원생 정도였을 때, 집에 요리책이 한 권 있었어요. 간단한 디저트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모양이라든가, 색깔이라든가 너무 신기하고, 예뻐 보였어요. 그래서 막 돌려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이후로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잡은 거 같은데, 제가 원하는 취미를 찾는 과정에서 바로 생각이 났어요. 계속 TV나 유튜브로 만드는 영상을 찾아보며 관심이 커지다가, 어느 날 이 정도면 만들만하겠다 싶어서 한번 만들어봤어요. 에그타르트였는데, 그땐 조리 도구가 하나도 없을 때라 종이컵으로 틀을 만들고, 계량하며 만들었어요. 거의 맨땅에 헤딩하듯이 했죠. 그런데 그마저도 너무 재밌는 거예요. 결과물이 실제 사진이랑 비슷한 거도 신기했고요. 그 이후 점점 조리 도구도 하나씩 구매하고, 어려운 것들도 도전해 봤어요. 케이크, 초코머핀, 스콘, 각종 쿠키, 애플파이 등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 봤네요. 결과물이 사진과 비슷하게 나오면 너무 기뻤고, 그렇지 않아도 맛있게 먹으면 되니까 괜찮았어요.


애써서 만든 디저트가 많이 남아버리면 어떡해요?


어느 날에는 너무 많이 만들어서 가족과 나누어 먹고도 많이 남아버린 거예요.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그래서 어차피 많이 만들 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또 남에게 만들어준다 생각하면 좀 더 신경 써서 만들게 되니까 실력이 더 늘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드디어 저의 취미를 공유하는 시간이 다가온 거죠. 그 친구가 이걸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좋아할까, 맛있어 할까 이런 걱정이나 기대를 하면서 만들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공유하게 되니까 더 설렜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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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걸 원래 좋아하지 않으셨다고요?


네, 맞아요. 원래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인물은 물론 풍경을 담는 것도 저에게는 너무 귀찮은 일로 여겨졌어요. 그냥 내가 보고 기억하는 게 중요하지 굳이 카메라 들고 사진까지 찍어야 하나 싶었죠. 그저 의문이었어요.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이 그렇게 좋은가?'


사진이 취미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런데 어느 날 오사카 여행을 계획 중에 집에서 예전에 어머니께서 사놓으셨던 디카를 발견하게 됐어요. 충전기를 잃어버려서 계속 방치되고 있던 건데,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쉽게 충전기를 구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의문과 궁금증에 디카를 여행 때 가져가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처음 사진을 찍는데, 너무나도 선명한 거예요. 폰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확대를 하면 자글자글 화질이 깨지는데, 이건 그러지도 않고 깨끗하게 선명했어요.그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막 찍기 시작했어요. 물론 배경 구도도, 카메라 설정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요. 그래도 즐거웠어요. 묘하게 화질이 흐릿하게 나온 거는 필름 사진 느낌이 나서 좋았고, 아무거나 찍어도 선명하니까 보기 좋았고요. 그때 사람들이 왜 사진을 찍는지 이해했던 것 같아요. 순간을 선명하게 담아낸다는 것,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와닿았어요. '보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으면 더 좋겠구나' 그 이후로 조금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사진 동아리도 들어가고, 조리개 설정도 조작해 보고, 배경 구도도 연습하고, 보정까지 해보게 됐어요. 의문으로 시작했던 일이 이젠 진심인 취미가 됐네요.






기타와 밴드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셨나요?


옛날부터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주변 친구들이 밴드를 하는 것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땐 저 자신을 믿지 못해서, 밴드는 내 이야기가 아니겠다 생각하며, 그저 밴드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부러웠죠. 그렇게 그냥 넘겼던 시간이 있었어요. 근데 작년에 밴드를 하던 친구가 한 번 같이 해보자고 권유를 해줬어요. 그때 딱 들었던 생각이 '정말 마지막이겠다. 지금 아니면 정말 내가 원하는 걸 못하겠다' 였어요. 바로 당근 마켓에서 중고로 기타를 사고 무작정 시작했죠.


어렵지 않으셨나요?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거예요. 심지어 초보인데 첫 공연에서 너무 많은 곡을 맡아버렸어요. 그래서 합주할 때 다른 친구들이 연주하는 동안 혼자만 거의 연주를 못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거였으니까, 그리고 친구들이 나를 믿고 같이 하자고 손 내밀어 줬으니까, 하루에 4시간, 5시간 이어폰 꽂고 연습에만 매진했어요. 조금은 강하게 키워진 거죠. 그래도 즐거웠어요.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취미를 다 같이 공유한다는 점이 제가 초반에 느꼈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이제는 이펙터도 잘 사용하고, 무대에서 어느 정도 여유 있게 퍼포먼스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됐네요. 제 개인 연습도 연습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면 지금 수준까지 오지 못했을 거 같아요. 이 취미를 갖게 해주고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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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계신 취미가 모두 노력이 필요한 취미인데, 처음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처음엔 다 엉성하게 시작했던 거 같아요. 종이컵으로 만든 에그타르트도, 구도도 잡지 않고 막 찍은 사진도, 마디 하나도 제대로 못 쳤던 기타도요.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기쁨뿐이었어요. 나름 맛있었고, 선명했고, 쨍하고 소리가 났고! 그 당시에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뭐 아무것도 모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엉성하기에 더 발전하고 개선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전보다 더 나아지려고 공부하고, 노력했어요. '이번엔 이렇게 해볼까?' '이런 시도들을 더 많이 해보는 게 좋겠다' 생각하며 경험이 쌓이고 결국 초보티는 다 벗어나게 된 거 같아요. 그렇지만 또 언젠가 돌아보면 이것도 엉성해 보이겠죠. 그런데 취미는 원래 그런 거잖아요. 엉성하니까 취미인 거죠. 그런 취미가 저를 구성하고, 지탱해 주는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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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올해 가장 공을 많이 들였던 밴드 공연이 아닐까 싶어요. 신기하게도 세션으로 참여한 게 기억에 많이 남기보단, 임원진으로서 공연 전반을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해 나간 과정이 기억에 남아요. 엉성하기만 했던 제가 이번엔 임원진까지 맡아 처음부터 공연을 구성해나간다니, 기대가 됐어요. 새로 들어온 신입 부원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합주마다 가서 피드백을 남겨주기도 하고, 여러 공연장을 알아보며 예약하기도 하고, 거의 모든 곳에 제 손이 닿다 보니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처음 합주했을 때 엉성해 보였던 팀이 성장해서 멋있게 무대를 마치는 걸 보면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경험이 어딘가에 꼭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06. 25. 의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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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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