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말은 여기 두고: 휴스꾸 대나무숲(아쉬움 편)

대나무숲팀 백지, 수수, 영랑, 조아

by 휴스꾸


휴스꾸의 여름방학 특집 인터뷰, 그 첫 번째 주제입니다.

어느새 2025년의 계절을 두 번 보내고 우리는 지금 8월에 와 있습니다.

1주차에는, 그동안 여러분의 마음에 남은 크고 작은 ‘아쉬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미처 내려놓지 못한 아쉬움은 여기 두고 남은 여름은 새로운 시작과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답변 나눠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두 편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있습니다. 모쪼록 끝까지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예강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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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 지금 생각해도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산 거요. 예전엔 일기나 블로그를 쓰며 마음을 정리하곤 했는데, 이번 상반기엔 그런 습관마저 회피하고 말았네요.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강님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시나요?


요즘은 아이폰 기본 메모장을 가장 많이 이용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 종이 일기장도 써 보고, 노션이나 일기 앱도 써 봤는데, 결국엔 제일 편하고 익숙한 걸 쓰게 되더라고요. 메모장을 보면 '24', '25' 이런 제목의 글이 있는데, 그 안에 날짜별로 일기가 쭉쭉 적혀 있어요. 가끔은 감명 깊게 본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도 막 적어 뒀고요. 아무렇게나 쓰는 것 같아도 저에겐 중요한 기록들이에요.


혼자 기록하는 것 말고,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고 싶을 때는 블로그를 씁니다. 제가 투머치토커라… 일주일 치의 일상만 적어도 사진이 50장은 족히 들어가더라고요.


아날로그 일기장도 매년 써요. 색깔을 고를 땐 꽤 신중해져요. 올해엔 새빨간 색을 골랐어요. 종이에 글을 매일 적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가장 솔직한 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손이 가고요.


예강님께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록을 시작했던 계기도 궁금합니다.


저한테 ‘기록’은 쓰레기통 같은 존재예요.


처음엔 그냥 다들 일기 쓰는 게 좋다니까 시작했어요. 아이디어 떠오르면 바로 적어두는 게 좋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일기장을 사고 보니 매일 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어서요. (웃음)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적을 말이 있을 때만 일기를 쓰게 됐고, 그때부터 일기장은 제 사념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지저분하기만 한 건 아니고, 저를 더 알아가게 해주는 조각들이기도 해요. 말하자면 '예쁜 쓰레기'인 거죠.


언젠가 “너는 우울할 때 어떻게 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종이 일기 써”라고 대답했어요. 진심 어린 대답은 아니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젠 기록이 저한테 없어서는 안 될 쓰레기통이 되었거든요.


일기나 블로그조차 회피하셨다고 하셨어요.
기록을 '회피'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저는 하루가 너무 힘들면 집에 오는 길에 에어팟을 귀에 꽂기만 하고 아무 노래도 못 듣는데, 지난 한 학기를 그렇게 보냈어요. 3학년까지 쉴 틈 없이 달리다 보니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즐거운 순간도 많았겠지만, 매일매일을 정신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상반기를 마무리했어요.


그러다 종강하고 2주쯤 지나 조금 여유가 생겼을 무렵,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한 편 썼어요. 글을 쓰며 한 학기를 돌아보니까 저는 그저 '정신없이 살고 싶었던 것' 같더라고요. 한 치 앞도 모르겠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블로그도, 일기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 같아요.



여유를 의식적으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나를 알아가는 일은 평생 이어지는 숙제 같은 거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스무 살이 넘고 나서부터는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이게 나만 그런 건가?’ 싶은 적도 많았는데, 알고 보니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나를 알아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는 '순간순간 알게 되는 나’를 차분히 기록하고 있어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조각들이 언젠가는 결국 온전한 내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아직은 엉성하고 불완전하더라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게티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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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 지금 생각해도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율전에 '짱식당'이라는 1인 보쌈 가게가 있어요. 새내기 때부터 자주 방문했던 좋아하는 식당인데, 지난겨울부터 가게 문을 닫으시더니 사장님 건강 문제로 더는 장사를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아쉬웠습니다. 부디 사장님 건강 꼭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짱식당을 처음 알게 된 계기나,
새내기 시절 방문했던 추억을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가게들에 처음 갔을 때처럼 별생각 없이 우연히 들어갔어요. 어머님과 아드님이 함께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고, 벽면 가득 빼곡히 적혀 있던 학생들의 메시지들이 인상 깊었고요. 밥이랑 국을 몇 번씩 리필해 가며 우걱우걱 먹었는데 생각보다 든든해서 첫 방문만에 만족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짱식당에 특히 많이 방문했던 이유,
다른 식당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식당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집밥 같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짱식당은 그런 측면에서 가장 잘 맞는 곳이었어요. 밑반찬의 맛도 그렇고, 리필해서 먹는 것도 마치 집에서 어머니가 더 먹으라고 퍼주시던 순간처럼 느껴졌거든요. 보쌈이라는 메뉴가 특별하지 않아도 든든하게 한 끼를 채워주는 식당이어서 가장 집밥 같았어요.


여담이지만,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집이 꽤 멀어서 주말에만 본가에 갈 수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어머니가 도시락으로 보쌈을 싸 오신 거예요. 캄캄한 학교 주차장에서 보쌈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본가에 내려가서 가장 먼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게 늘 보쌈이에요. 그게 짱식당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아닐까요? 물론 싸고 맛있어서 좋아한 것도 있고요. (웃음)


명륜도 율전도 정든 가게가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등
주변 동네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주 갔던 가게가 사라질 때 드는 생각이 궁금해요.


저는 새내기 때부터 선배들이 “○○식당 원래 1층에 있다가 2층으로 옮긴 거 알아?”, “△△가게가 예전엔 밥약 국룰이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는 걸 들었어요. 지금은 그 말을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학교 근처 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그 가게를 다녔던 시절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율전동 골목을 걷다 보면 '저 가게에서는 개강 총회를 했었지', '이 가게에서는 엘씨 친구들이랑 밥을 먹었지', 하면서 하나하나 추억할 수 있었는데, 그런 기억을 떠올릴 구실이 점점 사라지는 거니까요.


학교 주변, 짱식당 외에도 아끼는 가게가 있다면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소상공인을 좋아해요. (웃음) 부모님께서 자영업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점심이나 저녁 식사 피크 시간대에 가게가 비어 있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쓰여요. 왠지 휑한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학교 근처의 다른 가게 중에서는 '모범 닭발'이라는 식당에 자주 가요. 제 ‘또간집’이라고 할 수 있는, 율전동 닭발집 원탑이에요. 닭발도 물론 맛있지만 사이드 메뉴가 특히 맛있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참 친절하세요. 식사를 마치고도 따뜻함이 오래 남는 곳이에요.



대나무숲팀 백지, 수수, 영랑, 조아

2025. 07. 29. 예강, 게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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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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