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인터뷰어 희주 / 포토그래퍼 영랑

by 휴스꾸


* 유림 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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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이곳 ‘어센딩 커피 웨이브’와의 깊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원래 저는 제기동 카페, ‘어센딩 커피 웨이브’의 손님이었어요. 그러다 사장님 두 분과 친해지면서 카페 앞에서 플리마켓을 함께 하게 됐는데, 그날 플리마켓이 생각보다 너무 잘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한 팀이 된다면 판을 더 키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그때 활용했던 공간을 아예 임차해서 가게로 꾸며 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작년 11월쯤부터 공사를 하기 시작해서 자재도 직접 고르고, 에폭시랑 페인트도 새로 하고···. 그렇게 넷이 힘을 모아 준비한 끝에 지난 3월, 카페 바로 옆 모퉁이에 ‘어센딩 코너 웨이브’라는 소품숍을 열었어요. 지금은 주말마다 소품숍에 나오고 있고요. 어쩌다 보니 손님과 카페 주인 관계에서 동업자가, 이곳에서의 일이 제 부업이 된 거죠.


손님으로 와서 동업까지 하게 되셨다니 친화력이 엄청 좋으신 것 같아요.


저요? 아니에요. 낯을 많이 가려서 어느 카페에 가서도 그렇게 하진 않아요. 제가 친화력이 좋다기보다 여기니까 가능했어요. 카페 사장님들과 취향이 비슷하거든요. 사장님들도 저도 옛날 물건을 좋아해요. 인테리어 소품이나 소품숍 진열품 중에도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얻거나 어딘가에서 가져온 옛날 물건이 많아요.


또, 제기동은 굉장히 노후화된 곳이라 근처에 이런 공간이 없거든요. ‘어센딩 커피 웨이브’ 말고는요. 그러다 보니 이 동네 젊은 사람들은 다 여기로 모이는 것도 재미있어요. 저기 앉아 계신 분도 원래 카페 손님이었는데···.


아,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 한 팀처럼 친해져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도와주세요. 여기가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보니까 다들 모이게 되고, 서로 비슷한 느낌을 좋아하는 게 확인되면 바로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진짜 친구, 가족처럼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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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센딩 웨이브’에서 또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소품숍 공간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다가 그 공간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게 됐어요. 카페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오거든요. ‘Humans of SKKU’의 모토처럼 카페 손님만 해도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분들이 많아서 ‘이 이야기들을 우리가 모을 수 없을까? 아카이빙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카페 손님으로 오시는 분이나 제 주변 지인을 섭외해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팟캐스트 콘텐츠를 찍고 있어요.


플리마켓 때 직접 요리한 음식을 팔아 보거나 식음료 메뉴에 의견을 내기도 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땐 주변에 있는 맛집에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냥 막 먹어 보고 싶어서요. (웃음)


부업을 하시면서 언제가 가장 즐거우세요?


그냥 여기 올 때요. 왜냐하면 주중에 직장에서는 마냥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어센딩 코너 웨이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제가 알아서 해요. 단적으로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가게가 닫히고, 제가 오면 가게가 열리는 거잖아요. 주중에 할 수 없는 일을 주말에 하니까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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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밖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본업 외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부업에 쓰고 있지만, 최근에 객원 에디터로서 뉴스레터 기고도 해 보고 주식 스터디도 하고 있어요. 취미로는 한창 실과 바늘에 빠져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자수와 미싱에 모두 쏟아붓기도 했어요. 그러다 지난주부터 카페 사장님 두 분이 운영하시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여가 시간을 운동에 쓸 것 같아요.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시느라 굉장히 바쁘실 듯해요.
그럼에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걱정보다는 일단 도전하는 편이신가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보통은 해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뒷심이 없어서 판을 벌여놓고, 수습이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거든요. (웃음) 하지만 하겠다고 말을 하면 어쨌든 해야 하잖아요. 일단은 해 보겠다고 하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면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있어요. 솔직히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무리인 걸 알면서도 하는 거죠.


해 보고 후회한 적은 없으신가요?


모든 일을 그렇게 후회하고 있어요. (웃음) 예를 들면 스터디도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매달 후회하거든요? ‘진짜 나 이거 왜 한다고 했지?’, ‘그냥 다음 달부터는 스터디 못한다고, 탈퇴한다고 할까?’ 하면서요. 스터디 자료는 남들과 공유해야 하니까 너무 대충 할 수 없잖아요. 엄청 잘 만들어 가고 싶어요. 늘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일을 미루게 되고 3일 전에 몰아치듯이 준비하면서 ‘진짜 나 민폐다.’ 생각하죠.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가서 발표해 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원하는 건 완벽한 자료와 엄청난 인사이트가 아니에요. 내가 남한테 거창한 걸 바라지 않듯이, 남들도 ‘내가 그냥 이 자리에 나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길 원하는구나’를 느껴요. 이렇게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후회하지만, 막상 일을 해 보면 사람들은 나한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배워요. 그래서 자신이 없어도 일단은 이것저것 해 보자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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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에서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통하나요?


당연하죠. 저는 기업 내부에서 일하는 인하우스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데, 보고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팀장님, 실장님, 본부장님, 부사장님, 사장님 이렇게 점점 직급을 높여 가면서 같은 내용으로 네다섯 번 정도 해요. 그런데 할 때마다 미칠 것 같거든요, 너무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멋지게 잘하고 싶은 나머지 너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 발표하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잘하고 싶으니까 하기 싫어지고, 잘하고 싶으면 연습을 하면 되는데 연습을 안 하면 내가 또 싫어지고···. (웃음)


그런데 막상 발표를 해 보면 항상 내가 염려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게 마무리돼요. 그때도 느껴요. 내 보고를 들으러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정말 완벽한 피칭을 원하나? 그건 아니거든요. 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내용이니까 저한테 시키는 거잖아요, 한번 해 보라고. 스스로가 보잘것없게 느껴질지라도 내가 말하는 내용은 보잘것없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걸 그냥 말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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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십세들’이라는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셨잖아요.
발표를 두려워하시는데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으셨나요?


그건 달라요. 발표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이렇게 잘한다’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유튜브 PD님들은 다 아는 사람들이었고, 카메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를 보게 될 테지만 아직 누군지 모르고···. 앞에 앉아 있지 않잖아요? 일단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저랑 아는 사람들이니까, 발표와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조회수가 많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못 하고 출연하셨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채널 시작했을 때 구독자가 천 명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게 두렵지는 않으신지 궁금해요.


정말 무서운 점이에요. 제가 모르는 어떤 시점에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이십세들 이후에 했던 일들에서도 유튜브에 출연할 기회가 계속 있었거든요. 방송국에서 일할 때도 직접 스피커로서 출연한 경우가 많았고, 샌드박스 네트워크에 다닐 때도 크리에이터 채널에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광고주로 유튜브에 출연할 일이 종종 생겨요. 그럴 때마다 댓글에서 사람들이 저를 많이 기억해 주시는 거예요. ‘이십세들에서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직장인이 됐구나.’ 하는 식의 댓글을 볼 때마다 너무 놀랍죠. 깜짝 놀라요. 맨날 우스갯소리로 디지털 장의사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사람 생각이라는 게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잖아요.
과거 출연한 영상을 다시 보셨을 때, ‘내가 왜 저렇게 말했었지?’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 이상한 말을 많이 해서 이제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해요. (웃음) ‘왜 그런 말을 했지?’라기보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는 영상에 나와서 어떻게 내 생각은 이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지? 참 용감했던 것 같아요. 어려서 가질 수 있었던,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고민 상담 콘텐츠를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해요. 내가 뭐라고 남의 고민에 내 생각은 이러하니 어떻게 하시라, 얘기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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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꿈꾸던 미래의 모습이 있었나요?


20대 초반에는 그냥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나만의 멋의 기준을 가지고 그걸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요.


지금 유림 님에게 ‘멋’은 뭔가요?


덜 피곤해 보이는 사람. 그러니까 미친 듯이 멋있지 않아도 덜 지쳐 보이고 덜 지겨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지금은 그런 거 없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하루하루가 무탈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저 사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정도면 더할 나위 없어요.


SNS에도 소소하게 웃은 걸 많이 올리거든요. 오늘 재미있었던 거, 오늘 맛있게 먹은 거, 아니면 오늘 본 귀여운 거. 홈런보다는 롱런이니까, 영광스러운 잠깐보다 사사로운 것에 울고 시답잖은 것에 자주 웃고, 그러고 싶어요.






인터뷰어 희주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7. 6. 유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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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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