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진스, 다윤 / 포토그래퍼 영랑
* 가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작년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파리에 있었잖아.
근데 올해 여행으로 다시 파리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뭐야?
솔직히 이번에는 ‘뭘 꼭 해야겠다.’, ‘뭘 보러 가야겠다.’ 이런 특별한 목적은 없었어. 그냥 ‘유럽에 다시 간다면 나는 무조건 파리다!’ 하는 확신이 있었던 거지. 전년도 기억이 좋았던 게 한몫하기도 했고. 이제는 친구들도 있잖아? 나한테 파리는 단순히 도시가 아니라 언젠간 다시 돌아가야 할 곳 같거든. 그러니까 유럽에 갔는데 파리를 안 가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때의 파리와 올해의 파리는 어떻게 다른 것 같아?
작년에는 파리에 사는 학생으로서 이것저것 경험하느라 바빴다면, 올해는 파리를 온전히 누리고 즐길 수 있었어. 재작년에도 파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긴 해. 하지만 교환학생 초반까지 파리가 그리 익숙하지는 않았어. 모든 게 낯설었지. 근데 이번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안내 방송이 들리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프랑스어가 적힌 표지판을 오랜만에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설레는 거 있지. 그리워하던 파리가 또다시 현실로 다가오니 되게 벅찼어. 교환학생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을 여행 중간중간에 다시 만난 것도 빼놓을 수 없지. 당연히 그때랑 인상 깊은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
맞다. 교환학생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이번에 프랑스어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더 나눠보려고 했지. 그러다 보니 숙소 앞 과일 가게 사장님께 예상치 못한 친절을 받기도 했고, 지하철역에서 현지 분의 도움을 받아 길을 무사히 찾은 적도 있어.
파리에서 자주 가던 본인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 있어?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 끝 쪽에 ‘베르갈랑 광장’이라고 있어. 거기가 한때 아지트였지. 작년에 우리 학교 교환학생 동생들이랑 생일 파티도 한 번 했었고 우연히 프러포즈하는 사람도 봤거든. 이번 여행 때 우리 언니도 데려갔었어. 거기서 둘이 막 얘기하다가 언니가 갑자기 감성에 확 젖은 거야. 그러고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면서 울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어. (웃음)
그렇게 벅차오르는 순간이 가끔 오잖아. 나는 그걸 일부러 더 느끼려고 해. 그런 순간이 오면 애써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말로 뱉으려고 하고. 그래야 그게 형체가 생기고 머리에 각인이 되더라. 그럼, 기억이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야.
교환학생 때 사귄 친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야?
슈레아라는 친구가 특히 기억에 남아. 우리나라로 치면 ‘정’이 넘치는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슈레아는 인도에서 대학원생으로 유학을 왔고 학교 OT 날 처음 만나서 친해졌어. 지금 그 친구 인스타그램 보면 파리의 추억이 담긴 하이라이트 메인 사진을 나랑 찍은 걸로 할 정도로 엄청나게 가까워졌지. 무엇보다 이번에 다시 만나서 논 게 아직도 생생해.
작년 내 생일 때는 미역국을 직접 만들어 텀블러에 담아와 주기도 했어. 알려준 적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생일에 미역국 먹는다는 걸 혼자서 찾아봤나 봐. 그 정성이 고마웠지. 그리고 코끼리 인형 키링도 선물로 줬어. 그러면서 이게 자기가 믿는 신이니깐, 들고 다니면서 모든 게 잘 풀리길 바란다고 하더라.
아! 내 생일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어. 그때 슈레아가 볼일이 있다면서 잠깐 자리를 비우더라고?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에서 영상 편지를 찍은 거야. 그러고 내가 아는 학교 사람들한테 연락해 영상 하나하나 다 받아서 생일 축하 영상을 만들어줬어. 정말 감동적이지 않아? 이렇게 소중한 친구를 하필 해외에서 만났다는 게 아쉬울 정도야.
교환학생 친구들과는 결국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잖아.
그게 힘들지는 않았어?
막상 친구들이랑 헤어질 때는 실감이 잘 안 나. 그러다 혼자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인스타그램으로 일상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다시 얼굴을 보는 건 기약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깐 슬프더라고. 다음에 한국에서 보자는 얘기를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걸 수도 있잖아. 그 생각에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혼자 펑펑 울었어.
며칠 전 파리에 쌍무지개가 떴대. 그걸 배경으로 슈레아랑 다른 친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거기에 너무 끼고 싶은 거야.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일상에서 이제 나만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 힘들더라. 다른 건 다 그대로인데 나만 180도 바뀐 거니깐.
애초에 그 친구들과 맺은 우정 자체가 기약이 없잖아. 그래서 오히려 먼 미래를 상상하며 ‘그다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 누군가 결혼할 때 그 친구 나라에서 다시 모이자는 식으로 말이야.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오면 꼭 함께하자고 했지. 그렇게 버텼어.
교환학생 전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잖아.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아?
우선, ‘나’를 정의하는 게 많이 바뀌었어. 이전까지 나는 혼자 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그래서 그전에 ‘나’는 늘 관계 속에서만 존재했어. 딸로서, 친구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당연했지. 그런데 교환학생으로 머나먼 타지에 가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을 겪다 보니, 독립된 ‘나’의 비중이 저절로 커지더라고.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고 어떤 사람인지를 더 되돌아보게 됐지.
그리고 각자 나이마다 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고들 하잖아. 나도 그걸 따라야만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 ‘칼 졸업’, ‘칼 취업’ 같은 걸 충실히 따라가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이라 생각했지.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어쩌면 그동안 어디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걸 굳이 잘 안 지켜도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지. 그렇게 성취하고 달성해야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냥 행복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
정리하자면, 마음을 내려놓고 내 삶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 ‘나’를 재발견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공간은 생각보다 한정적이고 세상은 훨씬 넓다는 걸 깨달은 것도 커.
지금 시점에서 본인에게 파리란 뭐라고 생각해?
옛날에는 나한테 ‘장소’였고 이제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최근 한 국제 커플 릴스에서 본 문장이 있는데, 그게 “당신에게 집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일 때”였어. 그 문장을 보니 파리가 이런 느낌으로 나한테 다가오는구나 싶었거든. 파리는 집처럼 매번 생각나고 그리운 곳.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지.
그래서 파리가 어떤 도시나 수도로 기억되기보다 그곳에 사는 내 친구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된 것 같아. 그리고 이번 여행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니깐 친구가 “Welcome to your old stomping ground!”라고 답장을 보내줬거든? 이걸 직역하면 ‘네가 발을 구르고 다닌 곳으로 온 걸 환영해!’라는 뜻이야. ‘내가 활동하던 추억의 장소’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고. 그 말을 통해 파리가 내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는 걸 확실히 느꼈지.
인터뷰어 진스, 다윤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9. 15. 가은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