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으로 그리는 나의 초상

인터뷰어 진스 / 포토그래퍼 영랑

by 휴스꾸


* 나현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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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뭐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웬만하면 다 지적 허영심에서 시작된 것 같아. 남들이 많이 안 하고, 봤을 때 ‘저 사람 좀 있어 보인다.’ 싶은 것들을 좇았거든. 드라마광이나 웹툰광이라고 하면 왠지 백수 같지 않아? 근데 독서광이나 영화광이라고 하면 괜히 멋있어 보이고.


‘힙스터’도 이렇게 시작된다고 봐. 어찌 보면 난 이미 ‘텍스트힙’을 체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웃음)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주니 친구들 사이에서 얼떨결에 내가 다독가가 됐더라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책을 더 열심히 읽은 것도 있어.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척을 하다 보면 결국 진짜로 좋아하게 된다고 믿거든. 결과적으로는 진짜 내 취향이 되는 ‘착한 허영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게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랄까. 사회에 악이 되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는 이런 게 고깝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러면 ‘아, 나 이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야?


관련된 콘텐츠를 미친 듯이 파고들 때? 뭔갈 좋아하면 도장 깨기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거든. 무엇보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걸 깨달을 때 확신해. 난 도서관 분류 기호를 따로 공부한 적도 없는데, 자주 가는 도서관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이 어디 꽂혀 있는지 몸이 기억하더라고. 여기쯤 있겠거니 하고 갔는데, 정말 거기서 찾았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이 있어.


그리고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게 될 때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면 마치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내가 다 슬프더라.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걸 자각하는 순간, 사랑에 빠진 걸 깨닫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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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들 숏폼에 빠져 있는데, 넌 여전히 긴 호흡의 텍스트를 고집하잖아.
텍스트만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빠르고 자극적인 쇼츠나 릴스 같은 것만 도파민이라고 생각하잖아. 사실 텍스트야말로 엄청난 도파민 덩어리거든. 영상은 주어지는 시각적, 청각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텍스트는 상상의 나래를 무한대로 펼칠 수 있게 하잖아. 실제로 구현하기 힘든 SF나 판타지조차 내 머릿속에서 무한하게 만들어내는 힘이 텍스트에 있어. 감정적으로도 훨씬 깊게 몰입해서 울고 웃게 만드는 걸 영상물이 따라올 수 없다고 봐.


사실 글 읽는 게 좀 더 있어 보이지 않나? 그런 매력도 있어. (웃음) 그리고 내가 읽는 책으로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거나,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거든. 텍스트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어렸을 땐 책 읽는 내 모습이 마냥 좋았고.



그 무한한 텍스트의 세계에서 특히 너를 자극하는 건 어떤 이야기야?


사랑 이야기!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다 좋지만, 특히 프랑스 문학 특유의 미묘한 감정선이 담긴 이야기들이 나랑 그렇게 잘 맞더라고. 대표적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아니 에르노 같은 작가들이 있지. 특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그 문체의 매력에 빠져서 《마음의 파수꾼》, 《패배의 신호》 같은 책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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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과 책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들었어.


응.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평을 넓혀가는 독서를 좋아해. 어떤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 작가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를 언급하면 그 사람 책을 찾아보거나,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그 개념을 설명하는 책을 발췌해서 읽는 식이지. 맨땅에 헤딩하듯 철학책을 읽으려고 하면 흥미가 안 생기잖아. 근데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책 속에 등장해서 연결고리가 생기면 훨씬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더라고.



책이 내 삶이나 다른 책과 연결될 때의 쾌감, 그게 바로 나현에게 ‘독서의 맛’ 아닐까?


맞아! 마치 내 삶에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는 걸 발견하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는데 주인공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 거야. 그럼 ‘어? 나도 그 소설 아는데!’ 하면서 괜히 반갑더라고.


또 한번은 이전에 독후감 쓰면서 인용했던 시가 있었는데, 이번 학기 ‘문예영어’ 중간고사에 딱 그 시를 분석하는 문제가 나온 거야! 책과 내 일상이 이렇게 깜짝선물처럼 연결될 때 희열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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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독서를 둘러싼 주변 활동들도 좋아한다면서.


어쩔 땐 책을 찾아보고,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만들고, 책을 사는 행위 그 자체가 더 좋을 때가 있어. 독립 서점에 들르는 것도 좋아해. ‘이 책들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잘 느껴진달까. 책이 단순히 작가 이름순으로 정리된 게 아니라 전시된 느낌이잖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그래도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게 최고긴 해. ‘아니, 이런 책까지 있어?’ 싶을 정도로 희귀한 자료도 구경할 수 있거든. 무엇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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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테일러 스위프트’잖아.
어쩌다 그렇게 빠지게 된 거야?


어렸을 때 원 디렉션을 좋아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시절 팝의 중심에 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까지 듣게 됐어. 처음엔 멜로디가 좋은 히트곡 위주로 듣다가, ‘Lover’ 앨범을 기점으로 확 꽂히기 시작했지.


테일러는 10대 땐 10대다운 노래를, 지금은 30대로서 하는 생각들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나도 그 시기를 함께 지나오다 보니 그때마다 나와 맞닿는 노래들이 하나씩 있더라고. 테일러의 노래가 마치 내 인생의 배경음악 같아서 매번 공감하고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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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가 너무 좋아서 ‘나 이것까지 해봤다!’ 싶은 거 있어?


오직 ‘The Eras Tour’ 하나 보려고 도쿄까지 날아간 거! 내가 닳도록 들은 ‘1989’, ‘Reputation’, ‘Lover’를 한 번에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무조건 가야만 했어. 때마침 그때 여행 중인 친구를 꼬셔서 현지에서 직접 현금으로 결제하고…. 과정은 참 험난했지.


그런데 콘서트장 입장해서 카운트다운 끝나고 오프닝 무대가 딱 펼쳐지는데, 그간의 고생이 싹 잊히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오더라. 재밌는 건, 옆을 보니까 별 기대 없다던 친구가 분위기에 압도돼서 나보다 더 오열하고 있는 거야. (웃음) 그때 ‘아, 진짜 오길 잘했다!’ 싶었어.



3시간이 넘는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You Belong With Me’ 부를 때! 내겐 추억을 형상화한 명곡이나 다름없거든. 친구랑 손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니, 내 학창 시절 기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느낌이었어. 다 같이 뛰면서 떼창을 하니깐 관객 모두가 하나가 된 기분이었지.


이건 여담인데, 도쿄돔 옆 놀이공원 관람차에서 친구랑 테일러 노래, ‘Call Me Maybe’ 같은 추억의 팝송을 열창했던 것도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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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롭게 정착한 취미는 있어?


소비하는 것만 좋아하던 내가 요즘 생산적인 취미에 빠졌어. 바로 뜨개질이랑 베이킹이야. 우선, 뜨개질은 그 행위 자체가 주는 미학이 있거든. 바늘도 예쁘고, 실이 꼬여서 편물이 되는 과정도 예뻐 보여.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니깐 또 범상치 않아 보인달까? 한번 시작하면 ‘이것만 뜨고 자야지.’ 하다가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몰입하게 돼.


베이킹은 솔직히 설거지 지옥이라 몸이 너무 힘들어. 한번은 정신없이 하다가 맨손으로 뜨거운 오븐 트레이를 잡아서 화상을 입은 적도 있어. 그때 서럽고 짜증 나서 부엌에서 울었는데, 어찌저찌 다 완성해 내게 되더라고.


소비할 땐 몰랐던, 내 손으로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효능감이 엄청나서 멈출 수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최근에 이런 취미를 즐기는 편이야.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피곤하진 않아?


돈이며 에너지며, 다 많이 들긴 하지. 하지만 덕분에 삶이 꽤 풍요로워. 좋아하는 것들에도 사이클이 있어서, 하나가 시들해지면 다른 하나가 올라오거든. 그래서 내 삶엔 심심할 틈이 없어.


비록 업으로 삼을 만큼의 재능은 없어서 동경만 할 뿐이지만, 취미라서 더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허영심이든 진심이든, 무언가를 끊임없이 좋아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네.






인터뷰어 진스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11. 4. 나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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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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