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범범 / 포토그래퍼 모아이
* 헌상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헌상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나는 ‘좋은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고 생각해. 너무 상대적이고, 너무 주관적이고. 근데 그럼에도 내 기준에서 좋은 사람을 떠올리면, 결국 제일 밑단에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 왜냐하면 책임감 하위에 희생, 근면, 진솔함, 존중 등의 요소들이 다 따라온다고 생각하거든.
그렇다면 헌상이 생각하는 책임감이란 어떤 거야?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은 한 단어로 뭉갤 수 있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 몇 가지 층위가 있다고 보는데, 나는 크게 세 가지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해.
첫 번째는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 내 삶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로 두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로서 내 삶을 감당하겠다는 거. 쉽게 말하면 1인분 이상은 해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다짐 같은 거야. 어떤 주체성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지.
두 번째는 일에 대한 책임감. 사람은 결국 일을 하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 받고 하는 일만 일이 아니잖아. 어떤 일이든 내 역할이 주어졌을 때 그걸 얼마나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지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세 번째는 관계에 대한 책임감. 관계에서는 호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말 가볍게 말하면 기브 앤 테이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 최소한 내가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그 이상도 기꺼이 주려고 하는 마음도 책임감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사람이 받기만 할 줄 알고 감사함을 모르면 호혜성에 대한 인식이 희미하고, 관계에 대한 책임감도 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말이 좀 길었는데 결국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은 “하기 싫어도 할 줄 알고, 하고 싶어도 하지 않을 줄 아는 것.”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
헌상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해온 것 같아. 그냥 나이만 드는 어른 말고, 말 그대로 좋은 어른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돌아보면, 꽤 오래전부터 '주변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하나의 목표였던 것 같아. 근데 여기서 말하는 존경은, 지위나 명예 같은 데서 오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가 생각하는 존경은 본인의 인품이나 태도, 그러니까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에 가까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 그래서 성숙함이라는 것도 하나의 대단한 성취라기보다는 조금씩 쌓여가는 상태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왔는지가 쌓여서 나중에는 그게 나라는 사람을 설명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헌상은 ‘좋은 사람’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되고 싶은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이 둘은 헌상에게 다른 개념이야?
나는 그 둘을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조금 막연하긴 해도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에 가깝다고 느껴. 책임감 같은 기준을 지키면서 살다 보면, 어느 정도는 닿을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반면에 ‘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죽기 전까지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는 목표에 더 가까운 것 같아. 결과가 분명한 목표라기보다는, 계속해서 추구하게 되는 이상점 같은 느낌이랄까. 완전히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과정 자체가 나를 계속 발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감정을 꺼내서 볼 줄 아는 힘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처럼,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한번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봐. 나는 내면의 고통이나 응어리를 가끔 ‘심연’ 같은 거라고 생각해. 너무 까맣고 뿌예서 도망치고 싶은 그런 존재인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아픔을 그냥 회피하고 지나치기만 하면 나에게 너무 손해라는 느낌이 들었어. 아픔이라는 사건이 생겼는데, 아프기만 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결국 마이너스잖아. 그래서 나는 아픈 경험에서 최소한 하나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약간 오답 노트 쓰듯이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거기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정리하려고 했던 것 같아.
군대에 있을 때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좀 더 정리됐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책이 김찬호 작가님의 ‘모멸감’이었어. 그 책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게 “감정과 자아를 분리해서 보라”는 거였거든.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모멸감이나 불쾌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상황 자체가 꼭 나를 공격하려고 만들어진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특히 우리나라처럼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도 내가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잖아.
그래서 나는 어떤 자극이 왔을 때 이게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감정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느껴.
헌상은 삶에서의 원칙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원칙들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어?
당연히 항상 완벽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을 진짜 싫어해서, 내가 말한 걸 내가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좀 강하거든. 밥 한번 먹자처럼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말도, 지킬 생각이 없으면 애초에 안 하는 게 맞다고 느껴.
그래서 남들이 나를 봤을 때 “저 사람은 저렇게 안 살면서 왜 말만 앞서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 행동이 잘못된 모습은 아닌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내 삶의 원칙들이 그냥 말로만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삶에 배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의 진짜 삶에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바탕으로 이른바 삶의 준칙 같은 걸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것도 있어서, 억지로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물론 살다 보면 내가 세워둔 기준에서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잖아. 그럴 때마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생각한 것들에 맞게 잘 살고 있나?”하고 돌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걸 아예 잊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지켜나가고자 했던 삶을 나 스스로가 저버리고 있다는 뜻일 것 같아.
요즘 사진 찍는 거에 맛 들였다고 하던데, 어떻게 빠지게 된 거야?
나는 취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이라는 건 어쨌든 평생 해야 하는 거고, 피할 수 없는 영역이잖아. 그래서 삶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일의 반대편에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 근데 막상 취미를 찾으려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운동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예약도 해야 하고, 레슨도 받아야 하고…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느낌이 있었어.
그러다가 사진이랑 딱 연결이 됐어. 사진을 조금 신경 써서 찍기 시작한 건 파리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때부터였어.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데, 그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그냥 지나가게 두고 싶지 않았거든. 나중에 분명히 아쉬워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남겨두고, 내가 원할 때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그렇다고 해서 그때부터 사진을 취미라고 생각했던 건 또 아닌 것 같아. 괜히 아저씨들의 취미나 전문가의 영역 같다는 이미지가 있었거든. “나 아직 아저씨 아닌데”라는 생각에 그림도 그려보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걸 굳이 취미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더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게 됐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자연스럽게 오래 붙잡고 갈 수 있는 취미였던 것 같아.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즐거움을 느껴?
사진에 대해 생각을 좀 더 해볼수록, 이게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행위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같은 대상, 같은 상황이라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나 태도에 따라 정말 무수한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
내가 사진에 대해 느끼던 감정들이랑 맞닿아 있던 게, 한 심리학 교수님이 쓴 ‘Awe’라는 책이었어. 그 책에서는 행복이라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외심’을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리고 경외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의식적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주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어. 예를 들면 매번 같은 출근길이라도 5분 일찍 나와서 다른 길로 가본다든지, 이런 작은 변화들 말이야.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진은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에 되게 잘 맞는 도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보는 사진 유튜버들만 봐도, 사진을 찍는 장소들이 엄청 특별한 곳은 아니거든. 그냥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골목 풍경일 뿐이야. 근데 그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물들의 배치나 빛이 떨어지는 방향, 빛의 온도, 빛을 받는 면 같은 걸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되게 재밌어 보였어. 실제로 내가 사진을 찍을 때도 어떻게 하면 이 프레임을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지, 어떤 빛에 놓여 있을 때 찍어야 더 보기 좋고 기억에 남을지 이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 이 과정 자체가 새로운 렌즈를 끼고 일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
인터뷰어 범범 / 포토그래퍼 모아이
2025. 12. 09. 헌상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