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가 비춘 오늘은

인터뷰어 백지 / 포토그래퍼 영랑

by 휴스꾸


* 주선 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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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면서 가장 원동력이 되는 생각이나 경험이 있어?
최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거.


AGI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AI는 다들 알 거고, 가운데 G가 들어가면 ‘제너럴’, 그러니까 범용 인공지능이지. 인간 이상의 AI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아. 기업 입장에서 신입사원을 완벽히 대체할 수도 있는 수준. 기존 AI는 수동적인 도구에 머물렀다면, AGI는 주체성을 지니는 거야.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사람이 <특이점이 온다>를 20년 전에 썼는데, 2029년에 AGI가 도래한다고 했거든. 당시에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욕을 엄청 먹었어. 그런 게 어떻게 20년 뒤에 바로 올 수 있냐고. 근데 오히려 지금은 그 사람이 욕을 먹고 있어. 너무 느리다고. 2026년, 2027년에는 올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늦게 예측했느냐는 거지.


그 정도로 빠르게 오고 있다는 거네.


그치. 그래서 나는 주변에 앞으로 취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다녀. 왜냐면 AGI는 주체성을 가지니까. 기존 도구들, 철도가 깔리고 전기가 생기고 컨베이어 벨트가 생기고, 이런 산업의 변화가 있었어도 그건 결국 도구의 진화였잖아. 지금까지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더 많은 일자리를 우리한테 줬지. 하지만 AGI는 근본적으로 도구가 아닌 주체성을 지닌 에이전트이기 때문에, 그 창조적 파괴라는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규모 실업이 생길 수 있어. 오히려 고용된 사람들이 잘려나가는 큰 사회적 불안이 올 거고.


근데 동시에 급진적인 풍요도 올 수 있어. 역설적이지. 인건비라는 게 거의 사라질 테니까.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인건비들이 레이어처럼 쌓여 있거든. 피자 한 판 먹는다 쳐봐. 피자가게 직원, 배달 운전기사, 밀가루 공장, 치즈 만드는 곳, 토마토 소스 생산지, 농부까지. 이 인건비 레이어들이 압도적으로 줄어든다면 물가가 떨어지게 되는 거지. 기존에는 물가가 계속 올라서 돈을 계속 모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면, 이제는 물가가 떨어지니까 점점 부자가 되는 형국이 되는 거야. 그리고 경제가 유지되려면 소비가 필수적이니까, 기본소득 같은 제도도 필연적으로 생길 거고. 국민들이 소비를 해야 기업들이 생산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네 삶의 기반이 되는 생각인 거네. 그 미래를 준비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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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을 갖고 난 이후에 일상이 어떻게 변했어?


생산성 강박에서 자유로워졌어. 25년도 2학기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뭐라도 잡으려고 했거든. 목표가 없으니까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어.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계속 플러스만 했지.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게 미래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고.


11월, 12월쯤 되니까 잠을 못 잤어. 어떻게 된 건지 돌아보면서 나 자신을 살펴보고 했는데, 놀랍게도 문제는 단순했어. 내가 가진 인지적 자원에 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냥 너무 많았던 거지. 그중에 대부분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도 안 맞는 잡일들이었어. 하고 싶은 거 많고, 해야 되는 거도 많은데 실제로는 못하게 되면 밤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도 못 자고, 잠을 못 자면 다음 날도 못 하고. 악순환이었지.


그리고 때맞춰, AGI 시나리오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AGI 시대가 완벽하게 오기까지 과도기가 한 10여 년 있을 텐데, 그 시기에 스펙으로는 안 돼. AI를 잘 활용하고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세상에 내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을 거야. “이런 결과를 냈어요”가 아니라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로 가야 하는 거지.


두 가지가 맞물린 거네.


그치. 몸은 잠도 못 자는 상황을 보여준 거고, 미래를 보면서는 스펙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걸 깨달은 거고. 두 가지가 같은 방향으로 가리키는 거였어. 그래서 뺄셈을 하기로 한 거야. 그렇게 하면서 더 이상 뒤처질 것 같다는 강박이 사라져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지. 그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만 하는 걸로 바뀌었어. 조직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만. 그게 능동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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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성이 새로운 기준이 됐다고 했는데, 실제로 어떻게 실천하고 있어?


시스템으로 일상을 관리해. LIFE OS라고 내가 이름 붙인 거야. 노션에 템플릿을 만들어서 쓰는 거지. 고등학교 때 가고 싶었던 학과가 산업공학과였어. 과학적 관리론에 되게 관심이 많았거든. 그거를 일상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었지.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 주관적으로 “오늘은 이랬던 것 같은데”로는 안 돼. 흐릿흐릿하니까. 객관적으로 딱딱 드러나는 지표들이 있어야 하는 거지. 수면 패턴이나,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이런 것들이 데이터로 남아야 돼.


전체 구조는 세 가지야. 계획, 실행, 평가. 첫 번째 칸은 현재 상황을 가시화하는 거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으면 불안이 잠재워지거든. 두 번째 칸은 실행. 할 일, 루틴, 규칙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거고. 세 번째는 평가. 통계를 보면 얼마나 잘 해왔는지가 보이는 거지. 그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다시 계획, 실행, 평가. 피드백 루프를 만든 거지.


하나 특이한 건 도파민 토큰. 할 일을 끝내면 토큰을 얻고,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보고 싶을 때 그 토큰을 쓰는 거야. 심리학에서 말하는 오퍼런트 러닝(Operant Learning)을 적용한 거지. 주식창에서 숫자가 떨어지면 공황이 올 정도로 싫어하잖아. 주식과 아무 물리적 관계가 없는데도 2차적으로 학습된 거니까.


근데 일상마저 관리하는 게 비인간적인 것 같지는 않아?


목적성이 중요한 것 같아. 나 같은 경우에는 더 자유로워지려고였거든. 지난 학기에 문해컴을 B+을 맞아서 4.5를 못 맞았는데, 그게 지각 제출 때문이었더라고. 지각 제출만 안 했으면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근데 평소에 그런 거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 다른 일상은 못 살잖아. 그래서 기존에 비효율적으로 내 리소스를 잡아먹던 방식들을 압축해서 줄이고, 그 덕분에 자유 시간을 확보한 거지. 시간만이 아니라 인지적, 정서적 자원도 포함되는 거야. 쉽게 비유하면은 놀 땐 놀고 쉴 땐 쉬는 거지. 아, 뭐야, 말이 안 되는데. (웃음) 공부할 땐 꽉 차게 공부하고, 쉴 땐 꽉 차게 쉬는 거야. 더 높은 밀도로 삶을 향유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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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종종 루틴이 깨지기도 한다며.


맞아. 자기 전에 너무 틀에 박힌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해서. 애초에 자극 추구형 인간이기도 하고, 성격 기질 자체가 무언가 새로운 걸 좋아해.


내가 사는 송도가 간척지잖아. 간척 중인 지역에 물바다 사이로 흙길이 나 있었는데, 라이트만 끼고 한 1km 타고 들어간 거야. 지도를 딱 켰는데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섭네. 어떻게 보면 운 좋게 살아남은 거지.


내가 반골 기질이 좀 셌어. 누군가가 A라고 하면 “그거 아닌 거 같은데” 하고. 근데 그게 단순히 반대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맞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거든. 비판받으면 감정은 상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걸 수도 있으니까.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올바른 괴짜들이 아닐까?


올바른 괴짜는 어떤 일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해.


절대적이지 않겠지만 내가 주관적으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건, 누군가의 자유를 증진하는 일이야. 나의 자유만이 아니라 모두의 자유.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인 진보를 좋아해.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2019년부터 스페이스 엑스를 정말 엄청 좋아했어. 가슴을 뛰게 하는 기술들로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곳.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은 거야. 나도 세상에 가치를 제공해서 남들을 더 편하고 이롭게 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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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인터뷰에서 여자 친구가 너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는 말을 했잖아.
그건 무슨 말이야?


알다시피 내가 평소에 누군가와 “에겐남이냐, 테토냠이냐” 하는 논쟁이나 MBTI와 같은 대화를 나누진 않잖아. 근데 여자 친구랑 있으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돼.


아, 약간 ‘대학생’다운?


그치. 내가 싫어하는 대화 양상이면서도 오히려 이게 특별한 거야. 내가 두쫀쿠를 먹을 사람이냐고. (웃음) 내가 현재는 내팽개쳐 두고 미래만 생각하잖아. 미래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잠도 잘 안 오고 강박증 같은 성격을 보일 수 있는데, 여자 친구랑 있으면 그런 걸 좀 내려 놓고 현재에 머물 수 있어. 현재만을 생각하게 해 주는 안정제이자, 내가 고독해지는 것을 막아 주는 안전 장치 같은 느낌.


그럼 네가 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은 누구와 주로 나누는 편이야?


아빠랑도 나누고 이렇게 친구랑. (웃음)


서로 의견을 나눌 때, 반대되는 부분도 많아. 나는 그런 의견의 차이는 관계에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 중요한 건 유연성. 상대의 말을 듣고서는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는가, 아니면 감정적으로 단절하는가. “그 점은 좀 그렇네요.”하면서 내 의견을 수정할 수도 있고, 상대도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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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견이 달라도 유연하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잖아.
그게 너한테는 사랑의 정의랑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어쩌면 사랑이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감정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책임 있게 다가가려는 행위가 아닐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낯설어하고, 때로는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잖아. 그런데 동시에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 본능을 넘어서 더 건강한 방향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거지.


결국 사랑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형태라고 생각해. 우리는 인간이니까, 그래도 성장하는 존재잖아. 앞으로 더 사랑하는 쪽으로 나가가야 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인류가 지혜로워질수록, 그러니까 지식이 축적되고 AI와 같은 기술이 우리의 사고를 확장할수록 사람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더 깊은 이해와 신뢰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 거라고 봐.






인터뷰어 백지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1. 30. 주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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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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