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서두르지 않으니까

인터뷰어 림 / 포토그래퍼 진, 영랑

by 휴스꾸


* 정훈 과의 인터뷰입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복수전공을 시작했다고 들었어.

원전공인 심리학은 응용학문 성격이 세거든. 항상 더 원론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어. 지난 학기에 국어국문학과 수업을 들어봤는데, 배운 걸 내 걸로 만들기까지 고민하면서 그 갈증이 확실히 해소되더라. 그거 하나만으로 복수전공을 할 이유는 충분했어.


가장 기대했던 수업은 비평론. 수업 듣기 전까지만 해도 문학 비평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어. 근데 항상 책을 읽고 나면 책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 낯설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이제 2주 차를 지나는데, 기대와 다르거나 힘든 점은 없어?


해석 방법처럼 앞선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더라고. 앞으로 혼자 더 공부할 것도 많겠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고학년이니까 진로 고민도 있지. 현실적인 고려보다도 그냥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취업이랑 관련이 없는데 왜 했냐”고 한다면 “생각이 짧아서 그랬다”고 할 수밖에. (웃음)






사진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부서 개편이나 동방 리모델링 같은 숙원 사업을 여럿 해결했잖아.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아.


임기가 끝난 지금 돌아보면 용기 있었던 게 아니라 무모했어. 앞으로 얼마나 힘들지라거나 그 일을 하는 동안 놓치게 될 다른 것들 생각은 안 들었어. 뭐든지 하나에 꽂히면 다른 생각은 잘 못 해. 그리고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못 하지 않았을까? 물론 확신도 있었지. 나 혼자서는 절대 못 할 텐데 같이 해줄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동아리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어?


아무래도 사진전이지. 겨울에 안국에서 했던 사진전이 기억나. 액자 위치를 잡으려는데 한옥 갤러리라서 천장 높이가 균일하지 않았거든. 자로 재는 게 의미가 없더라. 다들 액자를 들어서 눈대중으로 맞추고 못을 박았어. 갤러리 사장님까지 나서서 도와주시고. 준비를 마치고 한 바퀴 둘러보는데 ‘자식 낳아서 대학까지 보내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 오래 고생한 만큼 감동이 컸어.






세 번의 사진전에서 자취방 침대 사진을 걸었다고. 어떤 사진을 찍는 게 좋아?

주변에 오래 머물러 온 걸 찍는 게 좋아. 근데 이건 사진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야. 뭐든지 낯설고 새로운 것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서 새로운 걸 찾는 게 더 좋아.


요즘은 캠코더 영상을 즐겨 찍는다며.


6mm 테이프로 1시간 정도 찍을 수 있거든. 경주랑 여수 장기 촬영도 이 캠코더 하나 들고 갔어. 사진 찍을 때의 아쉬움이 영상에서 채워지더라. 목소리나 생동감, 더 내면에 있는 것들도 담기잖아. 원래 인물 사진은 잘 안 찍는데 영상은 찍다 보니 부원들도 담고 싶어지더라고. 사실 사진은 혼자 찍을 때가 더 좋거든? 그럼에도 같이 찍으러 다녔던 건 찍는 사람들이 좋아서였으니까.






<노르웨이의 숲>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잖아. 소설의 어떤 점이 좋아?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정도라고 여겼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지.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 필체는 내 안에 있지만 나조차 몰랐던,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추상적인 것들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게 놀랍더라. 여태 6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져.


좋아하는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드는 방법이 있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 이전에 읽은 게 더 잘 이해 되기도 해. 방학 동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재해석 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다시 읽었어. 전에 안 보이던 부분도 보이고 두 작품 사이에 작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기도 하더라.


음악에 소설을 담아보기도 했어.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1번부터 6번까지 있거든.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을 때는 1번부터 3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을 때는 4번부터 6번을 들어. 두 소설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번갈아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수렴하는데, 그게 협주곡의 구성이랑 잘 어울리더라. 관현악의 아련한 분위기도 그렇고.


이제는 그 곡을 듣기만 해도 소설을 떠올리게 돼. 한양 도성 성곽길도 책 속 ‘도시의 벽’과 비슷하잖아. 흥인지문 쪽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데 꼭 소설 속 세계를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어.






말도 느리게 하고 글도 느리게 쓰고, 뭐든 천천히 하는 편인 것 같아.


시간 아까울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일에 시간제한을 안 두려 해. 빨리 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잖아. 특히 밥 먹는 게 엄청 느려. 혼자 있을 때는 한 끼를 한 시간 동안 먹기도 하거든. 워낙 느리다 보니 나 스스로로부터 인내심이 길러지는 구조야.


필름이나 옛날 영화처럼 느린 시대의 산물도 좋아한다며.

느림에서 진심이 느껴지잖아. 편지로 연락하던 시절처럼 그만큼 더 고민했구나 싶고. 당장에 딱딱 떨어지는 게 편하기는 해도 정 없어 보일 때가 있으니까.


정훈에게 ‘정’은 어떤 의미야?


변하지 않는 거. 훅 가까워지고 훅 식어버리는 것보다는 오랜 시간 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정인 거 같아. 결국 시간이 증명하는 걸 더 믿으려고 하는 편이야. 순간적인 행동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





우리 삶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름다움이랑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둘 다 너무 막연해서 당장 손에 쥐어지지 않는 거야. 그런 와중에 최근에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이야기’의 의미를 떠올리게 됐어. 이제야 땅에 닿아있는 우리가 좀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은 거지.


탄생이 시작, 죽음이 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시작과 끝은 우리가 정의하기 나름이잖아. 수능 끝나기만 기다리다가 막상 대학 오고서 길 잃는 경험을 많이들 하는데, 그것도 시작과 끝을 잘 규정 짓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같아. 이 허구와 같은 개념을 현실 세계에서 잘 다루는 방법 중 하나가 이야기 짓는 거라고 생각해. 영화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휴스꾸에서 나누는 대화도 그렇고. 우리 삶이 수많은 이야기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게 되네.





인터뷰어 림 / 포토그래퍼 진, 영랑

2025. 3. 12. 정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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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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