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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Oct 20. 2022

당신의, 모든 순간

인터뷰어 은빛 / 포토 윤슬



* 성균관대학교 교내 주차원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성대 오기 전에 기계 제조 회사를 오래 다녔어요. 일반 무역을 담당하다 보니 근무하면서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 그때 경험한 것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충북 영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로 직장을 옮기게 됐어요. 내가 대학에서 사회복지 쪽을 공부했거든. 그때는 관련 개념도 없던 터라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마음이 이끄는 걸 어떡해요. 돌고 돌아 90년대 들어와서야 사회복지사로 자리 잡고 근무하게 된 거죠. 작년에 그곳을 정년퇴직하고 나서, 종일 집에만 있었어요. 젊을 적부터 내 일같이 해오던 직장 생활을 모두 끝내고 집에서만 생활하니까, 생각보다 되게 답답하고 힘들더라고. 그러다가 아는 지인이 소개를 해줘서 이렇게 성대와 인연이 된 거예요. 근무할수록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젊을 때부터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뭐든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도 많이 했고, 참 많이 울고 웃기도 했는데. 지금은요, 그냥 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나도 모르게 여유로워지는 게 있어. 이제 몸도 마음도 여유롭게 지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여행을 다시 다니고 있어요. 내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어디든 잘 갔거든. 무역 일 할 당시에는 해외 20여 개국을 다녔을 정도예요. 국내도 뭐, 안 간 데가 없어. 이제는 서해안 쪽을 가보려고요. 가만히 머물러 있기엔 세상이 너무 넓어요. 새롭게 보고 들으면서 계속 배워가야죠.






    무역 일 할 당시에 다양한 나라들을 참 많이 가봤어요. 하나하나가 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중동 오만에 갔던 때가 이따금씩 떠오르고 그래요. 오만이 사우디 옆에 있는데 그곳 수도가 무스카트예요. 무스카트에 우리 회사가 일회용 주사기 생산 라인을 처음 수출했어. 워낙 낯선 공간이라 어려움이 컸지만, 그만큼 더 배웠어요. 무스카트에 갔을 때 우리 사장이 술탄 왕의 수행 비서관이었거든. 얼마나 새로워. (웃음) 옆에서 보고 들으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더라고. 그리고 그때 무스카트를 같이 간 파트너가 나랑 나이가 같았어요. 금방 친해지고 얘기도 참 많이 했지. 왜, 동갑끼리 주고받는 편안함이 있잖아. 그 외에도 아프리카 쪽 나이지리아와 카메론이 기억에 남아요. 거기서 한 달 동안 무역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 만났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때 주로 홍콩까지 왔어요. 아는 사람이 홍콩에서 바이오 관련 일을 하면서 우리 회사 측에 연락을 줘요. 우린 중계 무역을 하는 거죠. 


회사 다닐 때 가장 많이 얻은 건 사람인 것 같아. 좋은 사람들 정말 많이 만났어요.






    내가 나이가 좀 많아요. 그래도 나이가 들면 좋은 게 있더라고. 손녀딸한테 할아버지 소리 듣는 거. 우리 손녀가 지금 9살이에요. 초등학생이라고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어찌나 예쁘고 기특한지. 지금 그 애 때문에 살아요. 나랑 눈이 마주치면 쪼르르 달려와서 안기고 그래요. 웃는 것만 봐도 피곤이 싹 달아나. 나이 먹은 사람이 밖에서 일하고 과자 하나라도 사줄 수 있으니까 기분 좋죠. 내가 집에서 놀기만 하면 뭐해요. 할아버지 노릇하며 사는 게 행복이죠.


    내리사랑이 참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아들이나 며느리보다도 손녀딸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웃음) 손녀딸을 생각하면 한없이 예쁜데, 서른여덟 먹은 우리 아들에게는 그냥 애틋함이 들어요. 아들을 키울 때 내가 좀 무서운 아버지였어요. 나한테 무섭다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진 않았는데, 왜 느낌이란 게 있잖아. 마냥 스스럼없이 나에게 와서 말 거는 애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아버지는요, 항상 자식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해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럴 거예요. 나도 아들 녀석과 가까워져 보겠다고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강원도 고성에 갔던 기억이 유독 선명해요. 동해안 해안가를 따라 최북단 항구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했는데, 그 기억이 아직 아들한테 있더라고요. 그때 여행 가서 좋았다고, 고맙다고 하더라고. 다 큰 애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 좋지. 자기도 애를 낳아보니까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는 것 같아요.






성대에서 내가 이 공간을 참 좋아해요.


    이곳에서 근무하면 편하기도 하고, 유독 알게 되는 인연이 많거든. 그중 터키 학생이 기억나요. ‘미스터 D’라고 부르던 친구였는데, 여기 벤치 앞에서 우연히 만났죠. 외국인 학생인데도 인사를 싹싹하게 잘했어요. 처음에 영어로 길을 물어보길래 나도 영어로 답해주며 얘기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졌지. 그다음부터는 내가 잘 있나 찾아오고 그러더라고. 나이 많은 사람 기억해 주는 학생들이 늘 고맙죠.


    이렇게 서서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내 20대가 그렇게 생각나요. 우리 때는 캠퍼스가 늘 시끌시끌했어요. 놀러 나온 사람들, 시위하는 학생들로 학교가 꽉 찼거든. 근데 지금은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가끔 늦은 시간에 도서관을 나서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싶어. 충분히 쉬면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 우리 때와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조언해 줄 수가 없거든요. 사회가 많이 변했고 또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대학시절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려요. 대학생만이 갖는 젊음은 그렇게 길지가 않아. 그래서 무모해도 좋으니 뭐든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냥 배낭 하나 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라고요. 발을 뗐다는 그 자체로 참 좋은 사회 경험이거든. 학생들은 젊으니까요, 뭐든 마음만 먹으면 잘 해낼 거예요.






    물론 근무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지요. 저쪽 공간은 기사들이 주차하면 안 되는 공간이거든요. 근데 주차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번 반복해서 말을 해도 개선이 되지 않을 때, 그럴 때가 근무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학생들도 대부분 제가 안내해주는 곳으로 잘 가주는데, 가끔 지나가면 안 되는 통로로 가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리고 좀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니면 무례하다거나. 근데 지금 말한 경우들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참 살갑고 좋은 분들이 많아요. 늘 고맙게 생각해요.


    인연이 되어 친해진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어요. 성균지의 기자로 있던 학생인데, 그분 하고 한 3년 전인가 인터뷰를 했었죠. 그러고 보니 그때도 지금 학생들처럼 사진을 찍었어요. 내 뒷모습만 나온 사진이 기억나네. 근데 그 인터뷰했던 학생이 어느 날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1년 만에 온다고 하더니 통 보지를 못했어요. 하필 또 코로나가 겹쳐서... 이 녀석이 참 착실했었는데, 소식이 괜히 궁금하더라고.



-      희도 꼭 기억해주세요.

 

그럼요, 어떻게 잊어요. 고마워서라도 못 잊죠. 언제든 맥주 생각날 때 꼭 연락해요. (웃음)










인터뷰어 은빛 / 포토그래퍼 윤슬

2022. 09. 26.  교내 주차원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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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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