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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Apr 19. 2023

거대한 우주

인터뷰어 여월, 칠칠 / 포토그래퍼 풀잎



나영 과의 인터뷰입니다.






오래 마음과 시간을 쓴 활동이 있나요?

    올해 초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단체를 졸업했어요. 무려 650일간의 긴 여정을 함께 했던 ‘선플 기자단’이라는 곳인데, 제가 성인이 되고 첫 리더를 맡았던 곳이기도 했거든요. 21살부터 23살까지의 치열하고 다정한 생각들이 잔뜩 묻어있는 정말 애정하는 곳이에요. 


    초반에는 활동이 너무 정적이었어요. 코로나 때여서 서로 교류가 없으니까 다들 기계적으로 일만 하고 저도 열심히 할 의지가 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난 후 임원진이 돼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분위기부터 갖고 오는 거였어요. 이 기자단을 단순히 스펙 쌓는 것보다는 우리가 여기서 무언가를 같이 만들려면 나만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도 다 여기에 진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과 하는 회의도 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의미 있는 걸 만든다는 분위기로 바꿨어요. 그러고 나니까 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기 쉽고 사람들하고도 더 끈끈해졌어요. 


    먼 목표지만, 올해 안에 ‘선플 기자단’에서 한 뉴스레터 ‘밤그릇 식당’을 처음 만들었던 친구들과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미니 전시회처럼요. 사람들을 불러서 우리의 밤그릇 식당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사람이란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마다 각자 쓰는 말이 있고 생각하는 방향이 있다 보니 얘기를 하다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뭔가 배우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실제로 주변을 많이 닮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의 어떤 점이 좋다고 하면 ‘나도 저렇게 해볼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해요. 영감을 주고받는 거죠. 그래서 내 우주도 있고, 저 사람의 우주도 있고 우리가 계속 이렇게 부딪히고 결국에 같이 사는 느낌이 들어요. 


    이전까지는 내 우주는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하고 다른 사람들의 별은 얼마나 크고 빛나는지 보기 바빴거든요. 근데 이제는 내 우주는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떤 걸로 채워나가고 싶은지 끊임없이 탐색하며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과 함께 일에 완전히 몰입해서 멋지게 해냈을 때, 그리고 그 경험들이 짙은 잔상으로 남아있을 때 저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함께 도전하고 그 결과를 이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끔은 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는 제 안에 가득한 열정과 애정을 더 나은 방향으로 쓰는 일이 참 소중해요. 


    제 좌우명도 “지도 없는 항해일지라도 심장이 벅차게 뛴다면 떠나보자, 주저 말고 근사하게”이거든요.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 ‘스타트업’에 나오는 말이에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저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많고 워낙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확신이 없으면 출발을 안 해요. ‘이것저것 찔러보고 되는 거 하나 하자.’가 아니라 엄청나게 고민한 후 딱 하나 하는 사람이라서 ‘지도 없는 항해를 어떻게 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못 할 것 같거든요. 그 끝에 무지개만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후 학교에 다니면서 그 말을 몸소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확실함만 가지고 출발하는 거 말고, 조금은 불안함이나 모호함을 가지고 해도 괜찮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마주하다 보니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을 느꼈어요. 그 후로 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쓰게 됐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영감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큰 생각이 있어요. 제 롤모델이 했던 말에 저도 열심히 살기 시작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한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내가 나만의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치지 말고 나를 믿고 끝까지 전진했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흔히 말하는 노잼 시기가 엄청 크게 왔었어요. 그거에 휘둘리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할 것도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스스로를 단단하게 안 잡아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최근에 어떤 친구가 “네가 단단한 사람이라서 좋아.”라고 했는데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제가 수년간 만들고 싶었던 나였어요. 저는 워낙 불안정한 사람이어서 여기저기 기대기도 하고 내 주체가 선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데 나를 아는 누군가가 옆에서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서 좋다고 하니까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정도로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을 위해 해주는 것이 있나요?


    다른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오래, 깊이 좋아하질 못해요. 제가 생각보다 쉽게 질려하거든요. 그 대신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는 못 가도 한 번씩 꼭 가서 엽서를 모아요. 그리고 베이킹하는 걸 좋아해요. 베이킹을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 줬을 때 맛있게 먹어주면 너무 뿌듯해요. 


    그러다 한 번은 질문을 받았어요. 왜 그렇게 퍼 주냐고. 저로서는 그것도 저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뭔가를 나누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그래서 그 방식은 매번 바뀌지만 내가 나를 위해서 해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계속 환기해 주는 것. 






인터뷰어 여월, 칠칠 / 포토그래퍼 풀잎

2023.04.08 나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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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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