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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03. 2023

무엇 하나에 빠져드는 마음

인터뷰어 랑 / 포토그래퍼 구름




* 학내 미화원 과의 인터뷰입니다.






            일상


    성대 오기 전에는 베이비시터를 했지. 스물넷에 결혼하고 이웃집 애기 봐주다가니, 베이비시터를 해봐야겠다 싶더라고. 그 길로 면접을 보고 교육받고 한 거지. 그러다가 다쳐가지고 못하게 됐어. 산에 다니다 인대가 파열됐거든. 2년 동안 쉬다가 낫고 나서 일 다시 해보려고 고용보험센터에 가니, 여기 성대에 청소하는 자리가 나왔다고 가보라더라고요. 청소는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른다 하니까, 사모님들은 다 하시지 못할 게 있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오게 됐어. 흘러가다 보니까 여기 온 지도 5년이 넘었어요. 쓰레기통 정리하고 하는 게 처음에는 창피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름 재미가 있어요. 내가 할 일이니까 내가 즐겁게 하는 거지.   


    학교에 5시 안 돼서 나와야 하니 밤에는 8시에 자고 3시쯤 일어나. 남들 잘 때 일어나야 되잖아. 남들 안 잘 때 우리는 자고. 평일날은 그렇게 일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거나 여행을 다니지. 여행이고 산행이고 못 갔다 그러면 영화관에 가. 이거 안 본 거네, 하면서 새로 나온 거 보고. 아니면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술도 한잔 하고, 노래방도 가고. 그렇게 충전하는 거지. 바깥에 가서 좋은 거 보고 하면 충전돼서 기분이 좋잖아. 집에 있어봤자 축 쳐지고 뭐 없어요. 마음 가는 대로 그냥 사는 거예요.       




 


            산행


   처음에는 남편이랑 집에 있으면 뭐하냐, 산이라도 갔다 오자 했지. 그러다 이웃집 사람들이랑도 가고, 산악회도 가입하고, 이제는 산에 다닌 지도 10년이 넘었어요. 백두대간은 거의 다 갔어. 산에 가서 쑥도 캐고, 냉이도 캐고, 나물 뜯어다가 해 먹고, 더덕 같은 것도 캐고, 계곡 가서 발 담그고. 그 재미로 다니는 거지. 한 번은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을 다 날려버렸어. 아무 생각 없이 호주머니에 넣고 옷 입은 채로 냇가 들어간 거야.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런 게 기억에 남아요. 옛날에 놀러 다니다 핸드폰도 해 먹었다, 이렇게 나오는 거지. 그런 게 재미있는 거지. 


    산은 오를 때 앞을 보고 가면 안 돼. 발밑에만 보고서 올라가야지. 저만큼 남은 걸 보면은 지루해. 쉴 때 한 번 위에 보고 저만큼 남았구나, 한 시간이면 가겠다 하는 거지. 앞을 보면 멀고 힘드니까 정상까지 언제가, 이렇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거를 보지 말고 한 걸음씩 앞만 보고 가다 쉴 때 한 번 위를 쳐다보고서는 얼마큼 남았구나, 이렇게 혼자 생각을 하는 거지. 



산을 왜 사랑하시나요?

    힘들게 뭘 올라가냐고 사람들이 그러지. 근데 오르면 달라. 올라가서 뒤를 바라봐. 얼마나 멋있어. 가슴이 확 트여. 이 우에는 우리뿐이 없는 거야. 아래를 보면은 다 내 세상이야. 아무것도 없어. 설악산 갔을 때는 구름이 내 밑에 있으니까 저팔계 같은 느낌이 들고 그랬었어. 올라가면 아무 걱정이 없는 게 산이야. 내 시선 앞에 그게 단데, 머릿속에 다른 거 있을 새가 어딨어. 그러니까 산이 즐겁고 좋은 거지. 


    그리고 산은 한 번 가면 되지도 않아. 봉은 하나래도 가는 길이 다 틀리니까. 이쪽은 숲길, 이쪽은 흙길, 이쪽은 바위 타는 길, 이쪽은 계단 있는 길, 봉우리 하나 가지고도 열몇 군데에서 갈 수가 있어. 다른 쪽으로 가면 또 새로와. 그래서 산은 한 산이래도 여러 번 가봐야 해. 다 틀려가지고 좋은 거예요, 한 산이라도. 




 


            여행


   다리를 다치고 나니 산행을 못 하잖아. 대신에 여행을 시작한 거지. 여행 다닌 지도 5년이 됐어요. 하도 많이 다녀서 갈 데가 없어. (웃음) 여행은 혼자도 많이 다녔어요. 누구하고 뭐 해서 같이 가자, 언제 가자, 이러면 여행을 못 다녀. 미련 없이 떠나야 되는 거야, 사람은. 내 자신을 내가 즐겁게 할래면. 그러니까 나는 그냥 훌쩍훌쩍 떠나는 거야. 통일 전망대도 있지, 강화도도 있지, 인천 대부도도 있지, 놀러 다닐 곳이 천지야 천지.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짧으니까 즐겁게 살다 가야지. 


    산이랑 여행은 또 틀려요. 산은 올라가면 시선이 확 트여가지고 아래를 보면은 다 내 세상이야. 여행은 옆에서 보는 거지. 바닷가를 거닐면 확 트이죠. 풍경도 다르고. 산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고, 여행은 여행대로 오가면서 생각하는 것도 있고 들려오는 게 있어.






    여행사 버스 타면 자리가 없으니까 혼자 온 사람들끼리 같이 앉게 되잖아. 처음 본 사람인데, 그날은 친구가 되는 거야. 나이 많고 어리고 상관없이. 나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니 부담 갈 것도 없고. 오늘 하루는 즐겁게 같이 가자고, 하루 짝이 된 거지. 음식 주면은 또 서로 주고받고. 얘기도 하고, 꽃도 보고 사진도 서로가 찍어주고 그런 식이지. 그게 그렇게 좋은 거래니까. 고때는 서로가 좋아요. 혼자 놀러 오셨어요, 바람 쐬러 왔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그렇게 이어오신 인연도 있나요?

    그날 하루만 서로 인연이 돼서 돌아다니고 만나는 거지, 집에 돌아오면 끝나는 거야. 자연스럽게. 오늘 즐거웠어요, 서로가 인사하고 헤어지는 거지. 다음에 또 만나요, 그러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만나면 안 되지. 하루 일행으로 만난 사람이지, 인연으로 맞은 사람이 아니니까 연락 그런 건 안 해. 그런 재미로 다니는 거지.     





            행복



    크게 크게 꿈을 가질 필요 없이 즐겁게 살면 되는 거예요. 자연적으로 크게 되면 모를까, 그런 거는 바라지 않아. 그냥 즐겁게 사는 거지. 엊그저께도 예당에 가서 출렁다리도 들르고, 야경도 보고, 민들레도 뜯고 씀바귀도 뜯고 해서 맛있게 무쳐 먹었어요. 그러고 돌아다니는 게 행복한 거지. 새로운 데 가면 또 새로운 거 보잖아요. 행복이 뭐 별거야. 뭐 하나에 빠져드는 게 행복이지. 나중에 행복하려고 지금 좀 덜 행복해야 된다, 그런 게 어딨어. 지금도 행복하고 나중에도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살 필요가 없어. 인생은. 내 인생 누가 살아줄 것도 아닌데. 가끔은 옛날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는 고향 생각이 나. 그래도 옛날이 좋았었는데 그립네, 그러고서 또 지나가는 거지 그거에 매여 있지 않아요. 지금을 사는 거지.


지금은 무엇을 도전해보고 싶으신가요?

    이제는 드럼을 한번 배우고 싶어. 마구잡이로 뚜드려 패면서 신이 나잖아요. 즐겁잖아. 젊어지잖아. 우울하다 하면 가서 뚜드리고 속이 확 트이잖아. 되는 대로, 그때그때 정해지는 대로 사는 거지. 계획하고 할 것도 없어. 되지도 않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뭐든 즐겁게 살면 되는 거지.   






인터뷰어 랑 / 포토그래퍼 구름

2023.04.04 학내 미화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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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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