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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un 07. 2023

포기란 없다. 환승 뿐.

인터뷰어 칠칠 / 포토그래퍼 윤슬






* 나래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스스로가 완전히 변했다고 생각한 이유

   사실 제가 이 질문을 딱 받았을 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 스스로는 그때 제가 지금이랑 너무 달라진 게 많은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은 달라진 게 없이 한결같다고 말해서요. 그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해 보니까 그들이 저를 옛날이랑 똑같은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제가 좋게도 변했고 나쁘게 변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그냥 제 성격이나 생각이나 이런 게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20살 때의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추억하면서 그 모습 그대로를 약간 봐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좋아요.




스물과 스물다섯을 비교할 때 차이점

   제일 작으면서도 제일 큰 차이점은 계획적으로 변했다는 점이에요. 옛날에는 진짜 계획 없이 사는 스타일이었고 그런 걸 되게 좋아했는데, 최근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대학 생활을 되돌아보니까 변한 점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석사 생활 동안 제가 내려야 하는 결정적인 선택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대학생 때는 솔직히 오늘 뭐 먹을까 정도로 가벼운 생각만 했는데, 대학원에 오니까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제가 해야 할 선택이 하나하나 중요해서 부담되더라고요.


   그리고 옛날에는 얇고 넓은 인간관계가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점도 차이점이에요. 지금은 대학생 때부터 만나서 민낯 다 보여줄 수 있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랑은 억지로 시간 내서 만나는 상황이라 더 소중해진 것 같아요.




미화된 감정만 느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너무 좋은데요? (웃음) 힘든 일을 지금은 웃으면서 말해도 그때 당시에는 제 눈앞에 보이는 일 때문에 굉장히 화가 나고 그랬겠죠. 그렇지만 그 일을 잊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그 기억에 대한 본질은 똑같은 것 같아요.


   과거를 일종의 상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내가 상자 안에 있는 거니까 그 상자 안만 보면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상자에서 나왔으니까 그 상자를 어떻게 기억할 건지가 더 중요해진 거죠.


   제가 예전에 읽은 책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과거를 미화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과거에 내가 나온 상자를 감싸는 포장지를 잘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과거의 모습이라고 상자에 싸둔 포장지만 보고 다음 상자는 외면하면 안 되잖아요.




선택하게 만들 때의 분위기

   어떤 선택을 할 때 분위기라던가 저를 둘러싼 환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뭔가를 그만뒀으면 별로 돌아보지 않거든요. 뭔가 그만둔다거나 중간에 포기할 때 항상 다음 단계를 세워서 그래요. 무작정 그만두지는 않죠. 예를 들면 내가 이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 때 ‘그럼 나 이제 뭐 하지, 내가 이런 것까지 해볼 수 있겠다’는 것까지 다 고려해 봐요. 당장 계획이 안 나오면 일단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한 선택들은 포기라기보다는 옮겨가는 환승인 것 같아요.




확신이 드는 순간

   환경이 갖춰진 채로 나한테 주어졌을 때인 것 같아요. 뭔가 내가 이걸 하겠다고만 하면 되겠구나 싶은 환경이요. 제가 이때까지 a라는 걸 하고 있는데 b라는 것에 도전을 해보고 싶을 수 있지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근데 내가 b를 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이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 확신이 들어요. 그런 기회들이 올 때가 가끔 있더라고요. 제가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도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했을 때 딱 학석 연계가 열렸어요. 그때 내가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가 이 길을 가면 이게 다 풀릴 것 같은 그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

   가족과의 시간이요.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해요. 밖에 나가서 놀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저 혼자 쉬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해요. 그렇지만 저는 유학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니까 부모님을 언제까지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피곤해도 혼자 쉬기보다는 엄마 한 번 더 보러 가요.


   그렇지만 제가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잘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무언갈 포기함으로써 제가 잃는 걸 잘 생각 안 해요. 예를 들면 제가 방금 가족을 보러 가는 상황에서 저는 이 가족을 보러 가는 것 때문에 쉬지 못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가족에게 가면 이런 행복이 있고 이런 안정감이 있고 이런 것만 생각해요. 항상 그런 것 같아요.

결국은 아까 말한 환승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냥 4호선을 타다가 1호선을 탄 거지  4호선을 포기한 게 아니잖아요. 타다가 안 되겠으면 다시 4호선을 타도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걸어가도 되고,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후회도 포기도 없어요. 그냥 이래서 산 거지. 포기란 없다. 내 인생은 환승뿐.





인터뷰어 칠칠 / 포토그래퍼 윤슬

2023. 06. 07 나래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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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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