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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31. 2023

깊이 머무르는 시선 속에는

인터뷰어 아뵤 / 포토그래퍼 밤



*철연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근무하시면서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나요?


예전에 국제교류팀과 성균어학원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선발해서 동아리를 만들었고, 동아리 활동도 지원했었죠. 그때 같이 활동하던 학생들이 나중에 졸업하는 날 찾아와서 사진 찍자고 할 때, 그때가 정말 좋더라고요. 졸업식 날 졸업가운 입고, 꽃다발, 졸업장을 들고 정신없을 텐데. 가족들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을 텐데 일부러 찾아와 사진을 찍자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오래전엔 국제교류팀에서 I-House를 직접 관리했었고 제가 담당했었는데요, 외국인 교환학생들을 위한 전용 기숙사로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죠. 홍콩에서 온 교환학생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홍콩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시고 온 거예요.


그런데 뭔가 호텔 예약이 잘못되어 숙소를 못 잡았대요. 나한테 찾아 와 도움을 줄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러니 어떡해. 당시 비어있던 I-House의 게스트룸을 이용하시도록 해 드렸어요. 숙소를 구하자마자 퇴실하셨고요. 지금이야 엄격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기숙사 담당자의 재량이 조금 있었던 거죠.


이 학생이 교환학생을 끝내고 홍콩으로 돌아간 후에도 꽤 오랫동안 연하장을 보내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어머니께서 잊지 말고 SKKU의 미스터 전에게 인사하라고 말씀하신다고 하더군요. 그때 도움을 드린 게 너무 좋으셨나 봐요. 지금도 가끔씩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카톡을 해요. ‘헬로우 미스터 전,’ 하면서. 결혼해서 이제는 엄마가 되었더라고요.




당장 ‘내년에 뭐 하지, 다음 달에 뭐 하지?’하고 불안할 수도 있는데, 인생은 정말 길고도 다양한 것 같아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했던, 많이 들어왔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게 분명해요. 그걸 일찍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리고 그 틀을 깨느냐 못 깨느냐가 삶을 좀 다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내가 성대를 졸업했잖아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교직원도 됐고, 그래서 인사캠에서만 27년을 지냈어요. 군대 갔던 3년을 빼고는 93년부터 지금까지, 딱 30년을 여기서 지냈는데. 지겨운 것 같아요. 이 캠퍼스 안에 이렇게 오래 있을지 몰랐어요. 내 꿈도 원래는 이게 아니었거든요.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이라고 부러워하죠. 맞아요, 그래서 좋았던 것도 있어요. 그런데 인생을 꼭 이렇게만 살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젊었을 때, 조금 부침이 있더라도 뭔가를 더 경험해봤으면 어땠을까. 지금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내 인생 좀 다양하게 살아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들 계획이 있겠지만 조금은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마냥 놀러 다니기만 해도 안 되겠지만, ‘내가 언제까지 뭘 해야 돼’라는 건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요?

저희 아이가 제일 관심사예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 됐어요. 이제 슬슬 자기주장이 생겨요. 예전에는 ‘네’, ‘응’ 하던 애가 요즘은 ‘근데 난 말이야,’ 이러면서 의견을 내놓기 시작해요. 말하는 게 좀 달라졌네, 느끼고 있어요.

아이가 논리적이에요. 괜찮은 것 같아요. 내 교육의 목표는 우리 아이의 대학 입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대학을 갈지 안 갈지를 판단할 수 있는 주관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러려면 아이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있고, 그걸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수 있어야 될 것 같고요. 그냥 대학을 가고 나서 ‘내가 근데 대학을 왜 왔지?’ 생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이가 나름 자기만의 가치관을 세워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부모의 머릿속에 대학 입시가 있으면 우리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요. 학습지, 수학 학원, 영어 학원 같이. 입시라는 걸 일단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니까,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투자하게 돼요.

하고 싶어 하는 게 많아요. 작년에는 풋살도 했어요. 풋살이 왜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남자애들하고도 놀고 싶은데 다들 축구하러 가고 없다는 거예요. 자기도 축구를 좀 배워야겠대. 그래서 집 앞 문화센터에 풋살 수업이 있길래 거기라도 보내 봤더니, 남자애들하고 몸싸움하면 밀리고 어쩌다 공이 오면 한 번 뻥 차고 말아요. 그러면서도 신난다고 막 그래요. 학교에서는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애들이 좋아한다는 거예요. 남자애들이 축구하러 가자고 데리고 나가기도 한대요. 한번은 반 대항 축구시합이 벌어졌는데 우리 딸을 넣어줄지 말지를 고민했다는 거예요. 상대 반은 모두 남자애들인데, ‘여자는 빼!’라고 했대요. 그래서 우리 애가 가서 ‘너희들 바보 아냐? 내가 껴야 너희 반에 유리한 거잖아. 나를 왜 빼?’ 그렇게 얘기했대요. 애가 말하는 게 재밌죠. 그걸 듣고 애들이 껴줘서 같이 뛰었대요. 상대 반이 이기긴 했는데, 그 반 애들하고도 같은 반 애들하고도 다 재밌게 지낸 거예요.




오랫동안 이 학교와 함께하셨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나요?

학교 건물들이 거의 다 바뀌었어요. 경영관도 옛날에는 되게 오래된 건물이었거든요, 귀신 나올 것 같은. 600주년 기념관 자리에는 아주 오래된 유학대학 건물이 있었고. 지금 학생회관 건물, 거기가 예전에는 대학 본부였어요. 학생회관에 가면 소극장 있는 거 알아요? 거기서 전체 교수 회의도 하고 지금의 조병두홀 같은 역할을 했고, 그 옆에는 총장실이 있었어요. 법학관 자리에는 원래 테니스장이 있었어요. 코트 2개가 있었는데 그걸 없애고 산을 좀 깎아서 법학관을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에 성대를 다닌 졸업생들이 오면, 여기가 어디냐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성균관 돌담을 둘러싼 대성로예요. 옛날하고 거의 똑같은 모습이에요.

정문에서 탕평비를 등지고 비스듬하게 바라보는 대성로를 좋아해요. 대성전 은행나무하고 돌담이 어우러져서, 꽃 피는 봄에도, 한여름에 짙은 녹색도, 가을에 노란 은행잎도, 그리고 눈이 쌓여도 멋지죠. 계절마다 대비가 뚜렷해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훨씬 예전부터 그대로였겠죠. 이거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 아닐까요.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이 많아요. 이제는 의학이 발달해서 평균 수명이 3년마다 1년씩 늘어난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내가 소위 말하는 정년에 가까운 나이가 돼 가니까, 정년 이후에 ‘나 뭐 먹고 살지?’가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지금 여기서 하는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거든요. 다른 곳에 가서 이곳에서의 지식이나 경험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뭔가를 새로 배워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제 나이대만 하더라도 유연성이 좀 부족해요. 저를 포함한 예전 세대는 그냥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는 게 미덕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오래 사는 위험’이라는 표현도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앞으로 회사도, 직종도 몇 번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오래 사는 게 위험이 아니라,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만큼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살 테니까.






인터뷰어 아뵤 / 포토그래퍼 밤

2023.04.20. 철연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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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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