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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un 28. 2023

지금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무언가

인터뷰어 칠칠 / 포토그래퍼 밤





김인태 과의 인터뷰입니다.





남극이 삶 속에 녹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문득문득 그냥 느껴져요. 일상 속 비교 대상이 되는 것처럼요. 어디에서 봤던 것만큼 아름답다든가 이것만큼 춥다든가.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남극에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행복은 미래에 특정한 걸 이루어서 느끼는 게 아니라 현재 그래야 된다’는 깨달음이에요. 이렇게 말해도 사실 일상을 살면 불평불만하고 행동하고 고생하다가 어느 순간 그게 떠오르죠. 내가 이랬었지, 이런 생각을 했었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돼요. 내가 지금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무언가, 하면서.





하고 싶은 걸 찾는 동안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저는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굉장히 낙관적인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제 MBTI가 ENFP인데 이게 근본적으로 낙관적인 유형이래요. 그리고 저희 학교 학생이라면 졸업해서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사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해보고 싶은 거 하다 안 돼도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도 입버릇처럼 말해요. 나 서른 두 살까지 하고 싶은 거 하다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공무원 같은 거 할 거라고. (웃음) 어떻게 보면 보험을 들어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사람이 많진 않은 것 같아요. 대부분은 12년 동안 대학에 오려고 공부하고, 저처럼 남자인 애들은 학교 1, 2년 다니고 군대 가고, 교환학생도 거의 안 가고 4년 정도 다니다 졸업해서 취직하고 죽을 때까지 일하잖아요. 그러니까 친구 중 한 명이 그러더라고요. 일찍 취업해서 시작해봤자 죽기 전까지 그 일하는 기간이 더 길어질 뿐이라고요. 요즘 아무리 이직 많이 한다 하더라고 30년 이상은 일하게 될 텐데, 어떤 일을 하는 게 가장 재미있나라는 생각, 내가 뭘 할 때 적어도 후회가 없나라는 생각으로 하게 돼요. 그 업종에서 대단할 걸 이룬 사람들조차도 ‘내가 과연 이 길을 선택하는 게 맞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되게 많더라고요.


    대부분 사람들이 아예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생각이요. 하지만 그게 나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죠. 저도 남들 다 좋다는 드라마는 안 보다가 나중에 보면서 너무 재밌다고 하거든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스페인 가서 봤어요. 스페인어 공부하겠다고 스페인 더빙으로 듣고 한국어 자막으로 봤어요. 물론 지금 기억나는 단어는 변호사밖에 없지만요. (웃음)





미술학과가 재미있는지

    저는 너무 너무 재밌고 진짜 진짜 재밌어요. 이번 학기에 교수님 전원이 다 과제를 내주셨는데 제가 바빠서 많이 못 했던 때가 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너 이거 과제라서 하는 거는 하지 마라’ 하시는 거예요. 억지로 할 거 하지 말고 그냥 재밌어야 한다고, 재밌게 하라고.


    근데 누가 그런 얘기를 해요. 과제니까 하는 거지. 레포트도, 문제 풀이도 그렇고 과제니까 하는 거지. 근데 미술학과에서는 ‘너 이거 하는 거 정말 재밌어서 해야 해, 아니면 의미가 없어‘라고 말해요.


    그래서 재밌다는 표현은 극찬이에요. 그 극찬을 듣는 게 저한테 딱 맞는 것 같아요.


    졸전 작품은 지금도 생각 중이에요. 제가 복전 신청하면서 포트폴리오로 냈던 작품이 ’현재의 두께‘라는 작품이에요. 제 일기장을 튀긴 거예요. 진짜로 일기장을 복사해서 찢어서 밀가루랑 계란, 빵가루 묻혀서 튀겼어요. (칠칠: 세상에, 계란말이를… 밤: 층이 살아 있네요? (웃음)) 원래 제목은 황현산 작가의 글에서 따왔어요. ’개인의 감수성은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는 글이에요. 공감에 대한 글이에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니까, 저도 일기장이라는 과거를 요리하면서 현재의 재해석을 통해서 시간의 두께를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자르기 전에는 평면인데 위에서 봤을 때 비로소 두께가 드러나는 것처럼, 나도 역경이나 어려움이 왔을 때 내가 쌓아온 인생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이걸 발전시켜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법전 같은 걸 튀겨봤죠. 법에도 역사성이 있잖아요. 법전을 튀기려고 남이 쓰던 법전을 받아오니까 그 사람의 기록이나 메모가 법전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런 걸 생각해보다 현재로서는 ‘슬픔도 튀기면 맛있다’로 만들고 있어요. 일기장도 아무거나 튀기는 게 아니라 특정한 시기나 감정이 담긴 일기장을 튀기는 거요.





내가 갖고 태어나 잘 갈고 닦은 무언가

전 항상 고민해요. 내가 뭘 잘하지?

- 옛날에 공부를 그래도 좀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인이 100이면 저는 한 120 정도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고등학교랑 대학교에 와서 200인 사람이 있고, 500인 사람, 1000인 사람을 만났죠. 그때 나는 이쪽은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 요리? 그렇다고 해서 요리도 아닌 것 같아요. 요리보다 차라리 공부가 나은 것 같아요. 공부랑 요리랑 비교했을 때 요리는 시간 투자 대비 효용이 훨씬 낮아요. 그나마 공부가 제일 효용이 좋은 것 같아요.

- 미술은,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교수님들한테 항상 생각이랑 발상만큼은 아주 흥미롭고 톡톡 튄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뭐 완성도는 아직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요. 남다른 생각을 한다는 강점인 것 같아요.

- 사람 만나는 거요. 작년인가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후배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람을 항상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다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그럼 난 안 만난다고 했어요. 저는 약간 정말로 내가 진심으로 그러니까 만나는 그 순간에는 정말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아요.

- 저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요. 저도 엄청 오랫동안 스승의 날에 초등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이제 설날이랑 추석에 연락을 드리거든요. 한 서른 분 좀 넘게?
 - 미각? 그러니까 능력인지 모르겠는데 입이 좀 까다로워요. 맛없는 거 아주 싫어하고 없는 거 먹으니까 굶는 게 낫다.

- 글 쓰는 거. 이것도 사실 인제야 조금 그 작가 소리가 익숙해졌어요. 책을 낸 지 이제 3년 차니까. 작년까지는 너무 어색했는데 이제 조금 나아요. 엄청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요리하는 사람치고는 그래도 좀 글을 쓰는 편이라는 거. 미술 같은 경우도 작가 노트를 쓸 때 그래도 좀 좋은 피드백을 받았어요. 글 자체를 엄청 잘 쓰는 건 모르겠지만 요리 쪽 관련 글을 쓴다, 미술 쪽 관련 쓴다는 것처럼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조금은 강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 친구들이 맨날 말해주는 능력도 있어요. 예고편만 보고도 영화를 다 본 것 같이 얘기하는 능력. (웃음) 맨날 밥 먹을 때 영화 얘기하거든요, 그럼 친구들이 그 영화 언제 봤냐고 물어봐요. 그럼 예고편만 봤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10년째 듣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 아름다운 걸 볼 때요. 자연이든 뭐든.

- 작년엔 야외 수업 나와서 막걸리 마셨을 때. 뒷산에서 마셨어요.

- 음악도 그래요. 장르는 다양하게 듣는데 주로 인디나 인디를 많이 들어요. 메인 스트림은 듣는 노래만 들어요. ‘언니네 이발관’ 혹시 아시나요?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제가 남극에서 진짜 진짜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딱 그 노래 하나 들으면 저는 아주 아주 구체적으로 헬스장 생각이 나요. 제가 헬스할 때 들었거든요.

- 에버랜드 갔을 때도 엄청 행복했어요. 작년에 에버랜드 두 번 갔거든요. 한 번 혼자 갔고. 보통 놀이기구에 세 명이 오면 한 자리가 남잖아요. 그러면 혼자 간 사람이 먼저 탈 수 있어요. 그렇게 티 익스프레스를 하루에 일곱 번인가 여섯 번 탔어요.

- 작년에 전시했을 때. 작년에 3학년 과제 전시가 있었는데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내가 이제 약간 미술 학과의 일원이 됐구나. 그 전과 후가 되게 달랐어요.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책을 썼을 때보다 훨씬 더 약간 큰 기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이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리고 지금 미술을 이제 회화를 그리면서 비로소 내가 미대생이라는 거에 부끄럽지 않은? 남들이 약간 미대생이라고 하면 저는 ‘아 저는 그냥 미술을 복전하는 경제대생이에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미대생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정도.

- 제 작품을 칭찬받을 때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특히나 칭찬 잘 안 해주는 친구 있거든요. ‘뭐만 하면 이거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 친구가 ‘이런 이건 진짜 좋다’, ‘너는 작가를 해야 된다’라고 칭찬 받으면 엄청 좋죠. 그 친구가 그런 얘기도 해줬어요. ‘일단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한다.’ 왜냐, 그래야 이제 다시는 직장생활에 대한 후회와 미련 없이 작가 생활할 수 있을 거래요. 얼마나 밥 벌어 먹고사는 게 힘든지 그리고 얼마나 네가 그 생에 대한 의지, 자유에 대한 의지가 큰지를 깨달을 수 있을 거라면서요. 그 친구가 회계법인에서 일하거든요. 이해가 가죠.

- 혹시 진달래 문학회라고 아시나요? 진달래 문학회라고 철학과 소속 문학회가 있는데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있는 엄청 오래된 동아리예요. 전 1학년 때 가서 이제 아직도 단체 톡방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 잊지 못해요. 처음 초대받고 본 메시지가 환영하는 인사가 아니에요. ‘오늘 참 책 읽기 좋은 날씨네요.’ 그때 간 엠티도 회장 누나 할머니네 집으로 갔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숨겨놓은 꽃술을 천장에서 꺼내서 마시고, 아침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토란국으로 먹었어요. 술 게임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5분 동안 시 쓰기 이런 거 하고.저는 거기서 이제 만난 사람들, 특히 선배 한 명이 있어요. 영상 영화 쪽에서 일하세요. 그 사람이 제 성인 이후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인 것 같아요. 전 제가 가장 이상한 사람이 아닌 집단을 좋아하거든요. 거기서는 제가 신입생 때 갔을 때 28살인 형이 있었어요. 국문학과인데 뭐 딴 일 하다가 왔나 아무튼 그런 사람도 있고. 학교 오래 다니시는 분들, 철학과인데 영상 복전하는 사람, 미술학과인데 컴퓨터 공학과 복전하는 사람… 거기 구성원들이 다양해요.
    아무튼 이런 사람들을 보고 ‘굳이 남들 다 하는 대로 빠르게 취직하고 이러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선배 중 한 명은 갑자기 100일 출가하고 그랬거든요. 언제나 절 보면 사람들이 되게 엄청 재밌고 다양하게 산다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난 아주 평범하거든요. 그 사람들에 비하면 이런 생각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철학과 가신 친구랑은 아직 연락이 닿으시나요?

    그 친구가 아까 말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친구예요. (웃음) 여전히 친구는 고민해요. 그러니까 내가 회계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뭘까. 차라리 변호사였으면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 같은데 아쉽다. 만나면 그런 얘기도 해요. 나는 대학교 때 분명히 훨씬 더 넓은 세계에 살았는데 직장인이 되니까 그 세계가 너무너무 좁아졌고 널 만날 때마다 약간 그런 걸 다시 생각하게 되고 느끼는 것 같다고.

    친구들이랑도 입학 전에 나눈 큰 이야기들은 아직도 종종 하죠. 옛날만큼 막 엄청 열과 성을 다해서 하진 않지만 그런 친구들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아침 조회나 야자 반대한다고 한겨레랑 인터뷰한 친구도 있어요. 교육청에다 소를 제기한 그런 친구도 있고.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당시에 오큐파이 운동이라고 월스트리트에서 했던 운동이 한국에도 넘어와서 서강대에서 한 간담회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얘기도 하고. 그랬던 친한 친구들이랑 지금도 종종 만나면 여러 가지 얘기해요. 사회에서 뭘 해야 좋은 사람인지.





여러 가지 다음들

    일단 취직을 하겠죠, 아마. 그게 맞는 것 같아요. 합리적인 것 같아요. 제가 이제 예전에 잠깐 알바했던 적이 있어요. 몸 쓰는 것부터 사무직까지. 그걸 하면서 느낀 게 나는 진짜 사무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긴 했거든요. 왜냐면 모든 사람이 다 원화를 채굴하기 위해서 오는 거예요. 당시에 주식과 코인이 엄청 인기였거든요? 여기서 이제 8시간 동안 몸을 맡겨서 돈을 얻어내고 30, 40대 미만은 다 싹 다 주식이랑 코인에, 40대 이상은 싹 다 부동산에 투자해요. 당연히 일하면서도 그런 얘기밖에 안 하더라고요. 솔직히 워라벨이 좋고 밥도 맛있고 사람들도 엄청 좋았어요. 근데 인생에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인데 저는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물론 거기서 의미를 찾는 분이 있겠지만 저는 쉽지 않겠더라고요.


    거기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도 하시니까 고민이 돼요. 어떤 사람이 작가가 돼야 하나. 작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작가가 돼야 합니다가 아니라, 작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작가가 돼야 한대요. 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지 말라는 게 결론이었어요.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교수님이고, 제가 제일 좋아하고, 가장 많은 걸 배웠고 이번 학기에 만난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나는 그러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만약에 기업에 갔는데 할 만해, 이거 이렇게 평생 먹고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면 이제 베스트라고 해야 하나? 입사했는데 너무 좋아, 나쁘지 않아, 괜찮아. 돈 많이 받으면서, 9to6로 일하고. 그것도 너무 좋은 삶이긴 하죠. 근데 과연 내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친구 중에 한 명도 그러더라고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학교 끝나고 바로 대학원 가면 힘들어하는데 직장 다니다 대학원 가면 아주 행복하게 다닌다고. 또 다른 친구는 반대로 얘기해요. 직장 다니다 대학원은 절대 못 간다.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이 얼만데 그거 통장에 꽂히는 거 거부하고 가는 거 거의 불가능하다고. 모르죠, 뭐.


    아무튼 저는 행복한 게 최대 목표에요. 저는 뭐든 게 다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지금 당장 고통스러운 것도 결국엔 행복을 위한 거로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고시 공부를 한다, 지금 힘들잖아요. 아니면 환경이든 뭐든 거대한 운동에 투신을 하거나. 다 그런 걸 했을 때 더 나은 사람이라고, 더 세상을 낫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전 미래에 뭐가 됐든 행복하고 재밌게 살고 있지 않을까.






인터뷰어 칠칠 / 포토그래퍼 밤

2023.06.28 김인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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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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