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열에서 직관하는 은색의 장비는 왠지 어제보다 더 반짝이는 것만 같다. 포장마차에서 한발 떨어져 서 계신 분들은 주문이 끝난 것 같았고 할아버지 정면에서 돈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신 분은 방금 오신 분 같았다. 오픈 시간에 잘 맞춰 왔는지 두 번째 대기 자리를 차지한 나는 아이와 함께 쾌재를 불렀다. 잔뜩 들뜬 마음에 아이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맛있겠다는 감탄을 연발하는데 반해, 손님이 왔는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할아버지는 오직 장비에만 온 신경을 쏟고 계신다. 주문을 하고 싶은데 앞에 계신 손님도 돈을 들고 계시니 뭐라고 말을 하기가 민망한 분위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날씨도 추운 데다 얼른 한 봉지 가득 사들고 나서 아침 일찍 운동하러 간 아내의 마중을 가야 하기에 마음이 급해 앞에 계신 손님을 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아이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마땅히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맛있는 거 먹으려면 원래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인다. 뒤 이어 오는 손님들에 점점 길어지는 줄에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신 앞에 계신 손님이 팥 9개를 달라며 돈을 내민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꾸 없이 반죽에 팥과 슈크림으로 속을 채우자 손님은 돈을 든 민망한 손을 거둔다. 이를 지켜본 나와 아이는 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에 서로 눈을 마주치며 걱정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급한 마음인데 불안함까지 더해지고 말았다.
얼마 후 이 손님은 다시 한번 할아버지에게 팥 9개를 주문하며 돈을 내밀자 고개를 든 할아버지는 먼저 오신 손님들부터 드리고 난 다음에 만들어 드릴 테니까 기다리시라는 말로 응대를 한다. 먼저 오신 손님들은 조급한 손님을 보며 미소를 지으시는데, 불과 몇 분 전의 본인의 모습이 그랬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조금은 쌀쌀맞게 느껴질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와 아이의 동동 구르던 발은 흔들림 없이 제 자리를 찾았다. 손님들의 다급함에 할아버지도 서두르실 법 한데 시종일관 개의치 않은 모습에 나의 급했던 마음이 여유를 찾는 순간이 느껴졌다.
줄어들지 않는 긴 줄에 상황을 파악하고 주문하는 방법을 묻기 위에 앞으로 오는 손님들을 나무라는 듯한 할아버지의 응대에 우리의 바로 뒤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맛있는 거 먹으려면 혼이 나기도 한다면서 기대에 찬 얼굴로 웃으며 말씀하신다. 며칠 전에 지나가면서 볼 때와 달리 최첨단으로 보이는 은색의 빛나는 장비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세 번째 순서의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께서는 여기가 더 비싸긴 한데 팥과 슈크림 들어가는 양을 보니 맛은 있겠다고 하시며 갑자기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신다. 나이를 들으시고는 아이를 보고 조카를 데리고 나온 줄 알았다 하신다. 아주머니 큰아들이 서른셋이라 비슷한 나이로 보여서 말을 걸어봤는데 굉장히 어려 보인다고 칭찬을 해 주신다. 사실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그렇지 옆머리에 흰 눈이 쌓이기 시작한 지 오래라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본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 이어서 아들이 경찰 공무원이고 내년 2월에 결혼을 하고 둘째 아들도 얼마 전에 경찰이 되었다며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까지 보여주셨다. 칭찬을 들었으니 마땅히 돌려드려야 하기에 아드님들을 훌륭하게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했다. 그러자 아들들이 떠오르셨는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머니의 미소를 지으시며 아이와 눈인사를 나누신다. 따님도 예쁘고 야무지게 생겼다며 잘 클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조금 더 대화를 주고받았다. 앞에 계신 손님이 팥 9개를 주문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최첨단 장비가 한 번 더 일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팥 1개 슈크림 2개가 담긴 봉투를 받았다. 분명히 두 번째 순서였는데 시간은 20분가량이 지나 있었다. 세 번째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봉투를 들고서 아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잔뜩 기대하는 아이는 슈크림을 먹겠다며 호시탐탐 벼르지만 너무 뜨거운 나머지 제대로 먹기가 어렵다.
급한 마음에 초조했던 감정이 할아버지의 흔들림 없는 장인 정신과 호통 아닌 호통으로, 서로 다르게 흐르던 시간이 포장마차 할아버지의 시간에 맞춰지는 것이었다. 내가 여유를 되찾은 순간에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만 가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고 좁게만 보이던 시야가 확 트임을 느꼈다.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사람을 대하는 태도, 스스로를 돌보는 성찰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낼 수 있는 것이다. 가을과 안녕해야 하고 코 끝이 시려오는 겨울을 느끼기 시작하는 때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소중한 순간을 선물 받은 것만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느꼈던 그 겨울의 감정을 지금 내 아이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추위는 온 데 간데 없이 마음이 따듯해진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