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향기를 품듯 사람은 자신을 품는다

by 낙유

초록빛으로 물든 세상에 풍덩 빠지고 싶어서 산책을 나선다.

저 멀리 나뭇잎이 춤을 추는 것이 보인다.

곧이어 나에게도 바람이 온다.

춤바람.


초록색 세상에 초록빛을 더 멀리까지 흩날리는 춤바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이 깊고 또 깊다. 초록빛 세상과 파란색 하늘이 나를 감싸고 마음을 가득 채우니 무엇 하나 막힌 것 없이 뻥 뚫려 자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다. 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다 이따금 길게 불어올 때면 으스스 춥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어 잠시 떨기도 한다. 어쩌면 나뭇잎도 생각보다 추운 바람에 덜덜 떠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은 여기저기 인사할 곳이 많아 긴 꼬리를 빠르게 내달리니 의도치 않게 차가운 인사를 건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5월에 부는 바람은 춤바람이다.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준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하천에 우아하게 노니는 물고기와 오리들이 눈에 띈다. 하천의 주인공인 물고기와 오리들을 관람하는 관객이 되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양팔을 크게 벌려 깊은숨을 쉬어 본다. 청량한 물소리는 귀를 통해 내 몸을 흐른다. 영혼에 깃든 근심과 걱정, 작은 상처까지도 씻어내 주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이 개운하다.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눈과 귀가 즐겁다. 하천을 따라 걸어가니 어두운 지하를 만났다.


보이지 않아 어둡기만 한 물소리와 겨우 길을 밝히는 노란 불빛들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딘 것처럼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보이지 않는 물소리는 더욱더 깊고 청량해서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영혼을 울려댄다. 물 흐르는 소리와 노란 불빛만이 존재하는 이곳은 어떤 꾸밈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 그 자체다. 햇빛이 들지 않고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아 시간에 관계없이 계절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 쉽게 변하지 않는 곳, 마치 영혼의 깊은 내면을 마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노란 불빛 사이로 여러 개의 큰 기둥들이 보인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을 받치는 강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기둥이 잘 버티고 있다면 지상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금방 복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기둥이 부족하거나, 단단하지 못하거나, 점점 약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기둥 위에 쌓아 올려진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 기둥을 더 만들거나 유지 보수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내 마음은 어떨까.

쉽게 보이지 않아 수고롭게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깊은 내면에는 어떤 기둥들이 버티고 있을까 고민한다. 내가 믿는 진리가, 내가 믿는 대 원칙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부족하거나 닳고 닳아 약해져서 위태롭게 된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저 멀리 깊고 깊은 어두운 어느 곳에 잊고 있었던 기둥 하나를 발견한다. 까만 통로를 한참 걸어간 후에야 만난 기둥에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문구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무언가를 받치는 수많은 기둥들, 사진은 밝은 화면으로 보시면 더 좋습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은 무엇일까 고민한다.

'일체유심조'라 하듯, 생각의 방향에 따라 마음이 변화한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생각에 따라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지, 어떤 생각과 마음이 나를 움직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어서 그러한 생각과 마음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올바른 방향이 맞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이 과정 자체가 내 마음을 조금의 틈도 없이 가득 채운다. 작은 상념도 허락하지 않는다.


행복은 마음을 가득 채워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물욕은 끝이 없기에 물욕으로 채운 마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이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를 살피는 동안은 내 마음을 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운다. 나에 대한 확인, 새로운 발견, 위로와 고백, 다짐 등으로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행동들이 또 다른 생각과 마음을 이끌어 깊은 내면에 큰 기둥들을 만들어 낸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면에 흔들림 없이 나를 지탱하는 큰 기둥을 세우는 것과도 같다. 타인으로 인해서 혹은 물질적인 무엇인가로 마음을 부족함 없이 가득 채우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뒤따르기 때문에 내가 아닌 그 외의 것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나 외에 다른 존재에 의존할 필요 없이 내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결정할 수 있다. 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행복은 내 안에 있듯 내 마음을 나로 가득 채운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밖에서 보기엔 한없이 잔잔한 호수. 그러나 그 밑에 잊고 있었던 응축된 무언가를 다시 발견했다. 그 무언가에서 터져 나온 에너지는 호수를 가득 채워 더 이상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틈에서 무의미한 자극만을 찾아 헤매며 중요한 것을 잊고 있던 때에, 마음의 공허함을 쉬이 채울 수 없어 방황하고 있던 나를 잠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어두운 산책로를 따라 또 걷다 보면 지상으로 나가게 된다. 내면 깊은 곳에 닿은 이 순간도 발걸음을 옮기면 잊게 될 것이다. 쉽게 잊지 않기 위해서, 쉬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을 마음에 담고자 눈을 감는다.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때 깊은 내면에 다시 들어올 것이다. 편히 눈을 감는 것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다.


첫 번째로 발견한 기둥은 나를 살피는 기둥이다. 내 안에 내가 들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나를 알아야만 쉬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버티고 설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둥 하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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